어떻게 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드높은 천장 아래로 드리운 곡선. 그 곡선이 이루어내는 면들에 촘촘히 새겨진 것들은 자체로 성스럽고 아름답다. 태초의 빛이 건너와 도달하는 창문에는 형형색색의 기하학적 문양과 위대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스테인드 글라스가 세상만큼이나 다채로운 이야기를 건내고, 성인들의 벽화는 인간으로서 더 고양되고자 하는 거룩한 의지를 전한다. 그 아래 선 젊은 남녀, 그리고 드리워진 예복의 사제. 그렇게 명동성당의 혼인 성사가 시작되었다.
혼인 성사는 기본적으로 두 타인이 신부의 집전 하에 혼인 계약(실제로 계약이란 용어를 쓴다)을 맺고 이를 신에게 고하여 허락받는 형식을 띈다. 본디 한 몸이었던 이들이 다시금 이 성사를 토대로 한 몸이 되어 신을 향한 삶을 지향한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자체로 단순 계약이 아닌 신의 빛을 향하고 신을 닮아가고자 하는 종교적 길의 일환이며, 한편으로는 그 길에서 크게 나아가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시초를 수많은 이들이 배석해 증명하며 축복한다. 또한 성체를 받아들임으로 동참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벤트가 공동체, 인류애적으로 나아가는 의식이 아닐 수 없다. 아름답고도 성스럽다.
이러한 결혼의 장을 수없이 목도한 입장에서 그 자리에 선 두 당사자의 표정을 살피는 것은 소소한 재미와 모종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비단 멋진 자리에서 서서 주인공이 되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양된 행복의 표정은 결국 사랑의 결실을 확인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다. 그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랑.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과 예술이 유사한 것은 그 무한한 잠재력과, 신비함, 그리고 인간 삶에서의 높은 우선순위로 하여금 어떠한 언어적 정의도 그 개념을 한정하고 제약한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쉽사리 정의될 수 없고, 그 특성들로 하여금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사랑의 근원은 이끌림이다. 물리적 심리적인 거리감을 줄여 함께 있고자 하는 이끌림. 사랑의 가장 원초적인 현상이다. 마치 우주의 물질들이 각자의 질량에 부여된 중력으로 이끌려 덩어리가 되고, 융합을 이루어 별이 되는 것과 같이 이 이끌림의 끝에는 결국에는 합일이 있을 것이다. 혼인 성사에서 이야기하는 성경 구절은 태초의 한 몸이던 두 존재가 하나가 됨을 이야기 한다. 인간은 하나가 되고자 이끌린다.
이 이끌림의 동기는 로맨틱함을 거두어 내면, 협력을 통한 생존이라는 전략과 DNA의 계승을 통한 재생산이라는 종 차원의 자기 보존 원리에 기인할 것이다. 두 요소에서 인간은 상호 이끌리고, 특히 후자의 원리에서 남여간의 사랑이 주로 기원했을 것이다. 개별자들이 각자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이끌림과 합일을 통해 통합하여 세계관의 영역을 압도적으로 확장하여 생존과 발전에 효율을 비약적으로 늘리게 되었을 것이다. 즉 현대의 ‘당연한’ 사랑에 대한 추구는 이 전략의 유효성을 강하게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끌림의 극한은 합일이다. 합일이 의미하는 바는 타인을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 동일시의 경지에서 진정한 사랑이 가능하다. 단순한 사랑에 기인한 선행에는 사랑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집착, 혹은 교리나 윤리에 충실한 자신에 대한 애정의 지분이 있다. 즉, 타인을 위하나 결국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타인을 자신으로 삼아, 자신을 사랑하듯 베푸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즉 아가페적 사랑이다.
이 아가페적 사랑은 자체로 크리스트교적 사랑이면서, 타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부모를 해한 원수에게 연민을 느끼며 구원하고자 하는 사랑을 행한 보살의 이야기가 있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 이야기 한다. 세속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모두가 내 신체라 하면 이해할 수 있다. 잘못 휘두른 손에 다른쪽 팔에 생채기가 나도 손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손에 난 상처를 성심성의껏 보살핀다. 모두가 나 자신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고, 이유를 찾을 이유도 없다.
불교는 더 직접적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었음을 이야기 한다. 연기법이다. 지극히 나의 주관적이고 신성모독적인 해석으로 성체의식을 보았을때, 수권받은 사제의 축성된 성체를 영함으로 성자와 합일하고, 삼위일체의 원리에 따라 신과 합일하는 과정이다. 비약일 수 있지만, 닮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은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인간은 이끌려 태초의 하나로 모이고자 한다. 사랑은 그 증거이다.
그래서 사랑은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가장 본능적이면서도 가장 이성적이다. 증오와 혐오가 만연한 시대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사랑이라는 이끌림을 잃지 못하기에, 희망을 가진다. 맑고 선선한 날, 눈 시리게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결혼 성사의 공간. 그 안의 무한한 평화는 그 희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