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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봉봉 Jul 29. 2019

내 몸값이 똥값이구나.

똥값보다 못한 내 연봉에 대한 중얼거림.

 세상의 모든 일이는 대가가 따른다. 대가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대가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직장인으로서 우리가 매일 하는 일에 대한 대가, 바로 연봉, 속된말로 몸값이다. 그런데 이 몸값이 언제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이놈의 몸값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번째 이야기. 

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다들 엄청난 연봉을 받는 줄 알았다. 게다가 평생을 공무원 사회에 계셨던 나의 부모님은 신문을 통해서 접하는 <대기업 대졸 초임 평균 연봉>이 마치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대학 졸업자들의 연봉이라고 믿고 계셨다. 하지만 내가 대학 졸업 이후 처음 발을 담군 직장에서의 연봉은 상상 이상으로 짰다. 미디어에서 보던 숫자와 내 계약서 앞에 적힌 숫자, 그 엄청난 산술적 차이는 나에게 충격과 패배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어쨌거나 나는 그곳에서 한달 남짓 일을 하고 연봉에 의거하여 첫 월급을 받았다. 새로 만든 월급통장에 처음으로 찍힌 급여. 그것을 본 순간 내 마음을 가득 채운 감정은 정확하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기쁨, 또 하나는 죄송스러움. 

나는 그날 퇴근 길에 부모님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고, 그 주 주말에는 가족끼리 모여서 외식을 하면서 내가 처음으로 우리 가족을 위한 턱을 냈다. 이것이 기쁨이다.


하지만 가족끼리 식사를 하던 그 날,


“그래서 너 연봉은 얼만데? 3600만원 정도 돼?”


라고 물어본 우리 엄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엄마한테 괜한 짜증만 내버렸다. 이것이 죄송스러움이다. 


아마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내가 그 당시 그래도 <대기업 대졸 초임 평균 연봉>이나 그것을 약간 밑도는 수준의 연봉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계실 것이다. 아마 구직 시장에 직접 몸을 담고 있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추측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추측을 향해 한마디 하자면,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대기업 대졸 초임 평균 연봉은 모든 대한민국 대졸 초임 연봉이 아니다. 그것은 그 회사의 연봉일 뿐, 대한민국 표준 월급테이블이 아니다. 이 세상의 대졸 초임 연봉에는 오직 <대기업 대졸 초임 평균 연봉>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외의 연봉도 존재한다. 그것도 매우 많이. 

아무튼 내 통장에 찍힌 월급과 <대기업 대졸 평균 월급>의 산술적 차이는 꽤나 컸다. 그리고 정확히 그 금액적 차이만큼 내 마음에는 그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쌓여갔다. 그것은 매달 쌓였고, 여름 휴가비 시즌이나 상여금 시즌이 오면 평소보다 더 많이 쌓이곤 했다. 그 불만은 나를 이직의 정글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얼마 안가 나는 새 직장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가치는 수치로 매길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생각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바로 연봉이다. 연봉은 모든 직장인들의 가치를 수치화 시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와 회사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가 차이가 있다면, 나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곳으로 떠나게 되는 것이다. 


간혹 연봉이 맞지 않아서 다른 회사로 이직한 사람을 두고 배신자라고 욕하는 회사가 있다. 하지만 떠나는 사람은 배신자가 아니다. 그 사람을 배신자라 욕하기 전에, ‘다른 회사에서는 알아봐주는 그 사람의 가치’를 똥값으로 후려친 회사 스스로에 대해서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아야 하는 건 아닐까?




두번째 이야기

 직장으로부터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나서의 기쁨도 잠시, 나는 난생 처음으로 남사스러운 자리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연봉협상.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연봉협상이었다. 


아니, 세상에 선비의 나라에서 어떻게
‘나 이만큼 돈 줘요!’라는 말을 면전에서 할 수 있는건지.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서 협상을 하고 어쩌고 할 건덕지라도 있으면 연봉협상이라는 것을 하겠지만 나는 고작 1년의 경력이 붙은 팀원급 사원이었다. 그런 사람한테 무슨 협상을 원하는건지. 

지금이야 연봉협상과 입사일 조절이야 말로, 입사 예정자가 입사 전 마지막으로 갑이 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당시 나는 너무 어렸고, 연봉협상이라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러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협상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아가씨의 이런 심리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회사 내규에 대한 이야기는 1도 하지 않고, 대뜸 나더러 얼마의 연봉을 원하냐고 물었던 것 같다. 



지금이야 구직사이트나 몇몇 사이트를 뒤지면 그 회사의 연봉정보를 알 수 있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연봉정보가 투명하게 외부로 공개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새로 입사한 회사는 대기업이나 유명한 회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 회사의 연봉정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다리, 두다리를 건너서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세상을 너무 몰랐다. 


그냥 그 자리에서 


“회사내규에 따르겠습니다.”


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이런저런 물음표 때문에 얼굴까지 빨개진 채 숨만 쉬고 있었던 것 같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거지? 경력이 1년 정도 붙었으니, 말로만 듣던 <대기업 대졸 초임 연봉>에서 조금 더 붙여서 이야기하면 되는건가? 그런데 만약 터무니 없는 숫자를 불렀다가 창피만 당하면 어쩌지? 혹시 너무 높게 불렀다고 합격이 취소되는 것은 아닐까? 등등.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그 사람은 터무니 없는 금액을 내게 제시했다. 언뜻 생각하기에도 직전 회사와 이 회사는 규모가 차이가 나고, 그래도 나는 1년정도 경력이 붙었는데, 이 금액은 너무한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사람은 그런 내게 재차 물었고, 갓 스물다섯의 나는 빨개진 얼굴로,


“네”


라고 대답했다. 협상같지도 않은 협상을 마치고 회의실을 나가는 내게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연봉이 너무 작다고 회사 안나오고 그런건 아니죠?”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도 안난다. 그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단 하나였다. 


내 몸값은 똥값이구나. 



그리고 나중에 들어와서 안 사실인데 이 회사에 있는 나와 비슷한 직급, 비슷한 스펙, 비슷한 경력의 사람에 비해 나는 연봉이 매우 낮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일부러 그 금액을 불러본 듯 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일부러 던진 질문에 맞아 일년 내내 열등감에 사로잡혀 직장생활을 해야만 했다. 


대체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경력 1년짜리 팀원급 사원에게 아무런 연봉 테이블 없이 그런 질문을 던진걸까? 내가 만약 입사 면접 중에 그런 질문을 받은 것이라면, ‘나라는 사람을 회사와 맞추어보기 위한 압박질문’이라고 이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최종합격을 한 상태였고, 입사일과 연봉 협의만이 남은 상태였다. 회사 인건비 절감을 위해서? 그렇다고 하면 더욱 잔인하다. 나와 연봉협상을 한 사람은 그 회사의 경영팀 팀장님. 같은 월급쟁이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도 정말 너무 했다 싶다. 


어쨌거나 나는 첫번째 직장과 두번째 직장을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내 몸값은 똥값이구나.
그리고 내 몸값을 올리려면 내가 변하는 수밖에 없구나. 


그래서 달렸다. 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내 가치를 제대로 봐주는 회사로 똑똑하게 이직을 하기 위해. 퇴근 후 시간을 이용해서 자격증도 따고, 개인적으로 공모전에도 도전했다. 또한 포트폴리오도 틈틈이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른다는 생각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의 법칙을 익혀갔다. 퇴직금 수령조건, 실업급여 조건, 의료보험 임의연장제도 등등. 


무용담을 늘어놓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때, 나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고, 홍시처럼 물러터졌던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조금씩 곶감처럼 꾸덕꾸덕해져갔다. 


그리고 2년 후 당당히 세번째 회사로 이직을 했고, 회사가 정한 연봉 테이블에 준거하여, 납득할만한 연봉을 처음으로 받게 되었다. 무려 3년만에 이룬 성취였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평균적인 직장인 연봉 궤도에 오르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3년이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부모님께 내 연봉에 대해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매달 25일마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를 보고, 분노와 열등감이 아닌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만족이 오래 간 것은 아니다. 이는 다음에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나는 연봉에 의해서 이직을 두번이나 한 케이스다.(사실 이직의 횟수는 더 많지만, 정말 순수하게 똥값같은 몸몸값 자체가 동기가 되어 옮긴 것이 두번이라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 역시 두가지다. 


하나,  세상이 바라보는 나의 가치와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치를 비슷하게 만들려면 내가 야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 제대로된 회사라면 적어도 “연봉”가지고 장난은 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가치를 가지고 장난질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건을 살 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우리는 도둑이라고 한다. 또한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깍아달라고 떼를 쓰는 사람을 우리는 진상이라고 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쓰면서 정당한 연봉을 주지 않는 회사. 노예처럼 부리면서 어떻게든 연봉을 깎으려는 회사. 진심 진상이다. 그리고 그런 회사의 대표. 고상한척 CEO라고 하고 앉아있지만 당신이야말로 도둑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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