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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곰 Nov 14. 2022

익숙하지 않은 것과 익숙한 것

#6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지 사흘이 지났다. 하루에 평균 20킬로미터 정도, 약 6시간 정도 걷고 있다. 처음에 이 여정을 시작했을 땐 매 순간이 긴장된 상태였다. 근육뿐만 아니라 털끝까지도 날이 세워져서 경직된 발걸음을 겨우 떼었다. 어떤 길이 나올지 예상하지 못하고 시시각각 바뀌는 날씨는 나에게 너무 큰 부담까지 안겨 주었다.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고된 여정을 수행하고 있는 내 다리와 몸뚱이가 얼마나 대견하고 기특한지 모른다.


  모든 순간이 낯설고 다른 이 순례길 위에서 한 가지 정도는 익숙함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출발하고 있다. 매일 아침 6시 20분에 일어나서 간단하고 씻고 정확히 7시에 나오는 거다. 최대한 같은 패턴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이 길에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는 틈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군인이 같은 시간에 계속 일어나면 자동적으로 그 시간에 일어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따라 길에서 마주치는 순례자들의 얼굴이 무척이나 익숙하다. 같은 날짜에 출발했고 같은 목적지를 향하다 보니 같은 사람을 여러 번 보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여러 번 만난 사이도 처음 만난 사이가 되어버린다.


  나는 토모코를 정말로 처음 본 사람인 줄 알았다. 오늘 그녀는 나를 보곤 너무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다. 나는 당연히 같은 아시아 사람을 만나서 반가움을 표현한 걸로 이해했었다. 먼 타지에서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아시아 사람을 보면 당연스레 동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으레 그렇듯 반가움을 표현했고 내가 가야 할 길을 가려던 찰나, 그녀는 나에게 말을 덧붙였다. 작심하고 뭔가를 말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때 너무 고마웠어요.”
“네? 우리가 만난 적이 었었던가요?”
“그럼요, 생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기억 안 나세요?”  


언제 만났었지? 온갖 뇌 회로를 이용해서 기억해내려고 했다.


“그때, 제가 길을 잃고 있었는데 프랑스어로 통역해주셨잖아요.”


  아! 별안간 내 머릿속에서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랬었다! 생장에서 순례자 등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한 아시아 사람이 (확실히 한국인은 아니었다) 2층 집 창문가에 걸터앉은 프랑스 할머니랑 큰 소리로 뭐라 뭐라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 아시아 사람은 영어로, 프랑스 할머니는 프랑스어로 얘기하는데 서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손짓 발짓으로 한참 얘기해도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보였다. 나는 아시아 사람과 프랑스 할머니에게, 내가 영어와 프랑스어를 할 줄 아니 무슨 일인지 얘기해보라고 했다. 알고 보니 아시아 사람은 숙소를 예약한 곳을 찾다가 길을 잃었던 거였고 프랑스 할머니는 그 길을 알려주던 찰나였던 것이다. 그때 그 아시아 사람이 바로 토모코였다!



  토모코는 내게 아쉬움을 커녕, 이제라도 알아본 것에 너무 기뻐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연신 나에게 도움을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는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녀는 두 딸을 둔 일본 사람이다. 멕시코 출신 남편이랑 결혼을 했고 20년 넘게 영국에서 살고 있는데 미국으로 이사 가기 전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어서 왔다. 토모코는 그리스도인도 아니다. 그러나 유럽 곳곳에 세워져 있는 성당에 익숙하다 못해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때때로 성당 안에서 느꼈던 평화가 지금 순례길로 이끌어줬다고 말했다.


  나도 은근슬쩍 일본에 대해 아는 척을 하고 싶어서 학부 4학년 때 쓴 리포트 얘기를 꺼냈다. 학부 4학년 1학기 때, 친구들이 제일 듣기 싫어했던 수업을 들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제일 싫어하는 토론 수업에다가 매주 자신이 한 학기 동안 선정한 종교 주제를 가지고 발표해야 했다. 나는 일본 전통 종교인 신도를 공부해서 발표했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여러 민감한 문제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토모코는 내가 일본의 전통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사실에 기뻐했다.


  대화를 하다 보니 꽤 많은 거리를 걸었다. 확실히 혼자 걸을 때보다 함께 걸으니까 힘도 덜 들고 쉽게 걷게 된다. 토모코는 잠시 쉬고 싶어 했고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순례길에선 자기의 속도대로 걷는다. 내가 앞설 수도, 뒤처질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거라고 믿는다. 그녀 또한 확실히 다음에 또 보자면서 말했다. “길에서 대화를 통해 다름을 이해할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은지요!” 순례는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것만이 아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 모든 여정이 순례이다.


팜플로나 시청


  문득 인생 자체를 순례로 살았던 친구가 떠올랐다. 프란치스코 신부님, 스페인 팜플로나 출신이다. 사실 친구라고 했지만 나이를 칠십 가까이 먹은 할아버지 신부였다. 우리는 프랑스 어학당에서 같이 공부했다. 기숙사도 같은 건물, 같은 층 게다가 내 바로 옆방이었다. 친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한 학기를 보냈다. 그는 신부님으로서 일을 은퇴한 지 꽤 시간이 흐른 상태였지만 새로운 꿈을 가지고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바로 아프리카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겨우 두 달 배운 불어로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인생은 곧 순례”, “주님을 자주 찾아라"였다. 은퇴라는 사회적 제약에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길을 나서는 한 나그네의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다.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자신이 아프리카에 가기 전에 팜플로나에 오면 맛있는 통돼지고기를 사주겠다고 나를 초대했었다. 아쉽게도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서 그 초대엔 응하지 못했고 그것은 평생 응하지 못할 초대가 되어버렸다. 프란치스코 신부님은 아프리카에서 산지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팜플로나 시내 모습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고향,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순례길을 나서고 처음 도착한 대도시다. 한국 라면까지 비싼 가격에 팔고 있었다. 어느새 내 손으로 라면이 담긴 검은 봉다리를 꽉 쥐었다. 나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도시 곳곳에 세워진 오래된 건물, 무엇보다 영화에 나올 법한 중세 성벽은 딱 그곳만 시간이 비켜나간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은 저렇게 반듯한데 정작 사람은 한 세상을 살다가 영영 사라지는 존재라고 생각을 하니 꽤 슬프게 느껴졌다. 아침만 해도 익숙해야 할 것은 익숙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만큼은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순례길 브이로그 보기 : 길에서 만난 사람들

https://youtu.be/9UkAMSij5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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