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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나 Feb 28. 2019

13. 집 수리의 지난함

초겨울 한옥의 기둥과 전체적인 테두리를 잡은 목공이 끝나고 도편수님이 철수하니, 실내외의 인테리어를 위해 인테리어 실장님이 이어받았다. 드디어 설계 도면으로만 그려왔던 집의 구성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었다. 

애초에 인테리어 실장님께 요구 한 내용은, 이 집은 책방 겸 카페며 남편의 작업실로 사용할 것인데, 여차하면 가족이나 지인이 하룻밤 자고 갈 수도 있으니 주택의 개념도 필요한 집이었다. 아마도 이곳을 가게로만 생각했다면 바닥을 더 깊게 파고 보일러를 깔지 않고 높은 층고를 만들어 상점으로서의 가치를 더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닥은 따뜻하게 보일러가 있었으면 좋겠기에 보일러를 고려한 바닥 높이가 정해지면서 천장이 높지 않은 느낌이었다. 유리창도 가정집이라면 단열과 반사되는 창을 할 터인데 가게는 보통 외부에서 잘 보이는 유리를 하니 우리는 무엇으로 하겠느냐에 대하여 유리 끼우기 직전까지도 고민과 고민을 거듭했다.  

보일러를 깔고, 벽을 세우고, 부엌을 확장하고, 수도를 연결하고, 가구를 만들고, 전기를 연결하고....  적고 보면 한 줄이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많은 선택과 고민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보일러 설치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일정한 간격을 맞추고 파이프를 칸칸마다 철사로 고정한다. 직소퍼즐이나 블록놀이가 생각난다. 20181128                      


게다가 목공이 끝나고 정확한 치수를 다시 재어보니 직사각형으로 떨어지는 구석이 하나도 없고, 부엌으로 하고자 했던 곳은 기둥과 주춧돌을 고려하니 처음의 부엌 구조가 나올 수 없는 상태였다. 이리저리 틀고 구겨 넣어서 만들긴 만들었다. 다만 싱크볼이 작아지고 넓은 작업대가 없어져서 아쉽다. 

왼쪽부터 오른쪽(현재)까지 이어지는 부엌 설계의 변천사.


인테리어의 설계나 선택이 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이곳은 남편의 강의나 소소한 모임 등도 생각하고 있었기에 한옥의 홀에는 (거실과 이어지는 양쪽 방을 터서 긴 홀이 생겼다) 4m 가 넘는 기다란 테이블을 붙박이로 만들기로 했다. 예전부터 긴 테이블에는 긴 조명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테이블 위에는 꼭 긴 등으로 달아주세요" 말과 함께 실장님께 몇 가지 보아왔던 카페들을 샘플로 보냈다. 

당시 보냈던 샘플 사진을 찾을 수 없는데, 우리가 내내 생각한 조명은 저런 분위기였다. 긴 테이블에 긴 조명.                                       


그리고 잊고 있던 어느 날 조명이 달렸다고 하기에 어떻게 나왔을지 기대하며 현장에 갔다. 철로 마감하여 통으로 된 아주 긴 조명이었으나 예상과 다르게 한옥에 어울리지 않았다. ㅠ.ㅠ . 그렇다. 일단 우리집은 전통 창살이 많은 한옥이다. 창살 고르기도 몇 번을 취소하고 다시 고르기 하면서 결국 한옥 다운 세살문으로 선택했다. 좀 더 현대적으로 창살을 없앨 수도 있고 살이 별로 없는 것을 고를 수도 있었으나 우리는  전통문이었다. 그것도 살이 아주 많은.... 우리가 내내 생각했던 샘플 사진의 장소는 심플한 현대적인 공간이었던 것이다. 

주문했던 긴 조명. 테이블에 쏴 주는 불빛은 아주 좋았다. 20181229


테이블을 고르게 비추는 낮은 불빛은 작업대 조명으로 사용하기에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냥 이대로 쓸까 하다가도 왠지 마음 한구석이 탐탁지 않았다. 특히 마당 쪽으로 바라보면 창살과 가로지르는 조명이 영 껄끄러웠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시면 지금 바꾸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보면서 계속 불편한 마음 드실 거예요." 

실장님의 이야기에 어렵게 만들고 설치한 조명을 걷어 내고 다시 가벼운 조명으로 골라봤다. 물론 기존 작업 한 내용을 뜯어내고 새로 붙이는 작업이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수백 가지의 조명에서 이 집에 어울릴 하나를 고르는 작업을 해야 한다. 결정하기 전에 미리 달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이미지 만으로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 몇 번의 메일들이 오가면서 결국 아래 조명으로 정해졌고 결과는 이전보다 어울리니 성공.!

역시 평범한 조명이지만 이 집과는 더 조화롭다. 20190125


이렇게 집 수리는 쭉 앞으로 나가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기도 하고 추운 겨울엔 일손도 잠시 멈추면서 생각보다 길어지는 것 같았다. 보일러가 2월 초에야 들어오면서 한겨울 작업하시는 분들이 무척 고생하셨다. 그래도 이제 책을 꽂을 수 있게 마무리되었으니 열심히 공간을 채워야지. 

엊그제는 거래하는 도매상에 책 80권을 주문했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 사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살 수 있다는 이 흡족한 마음. 이것이 책방 주인의 특권이 아닌가 한다. 오늘 도착한 책 박스 5권을 풀고 정리하면서.. '모두 좋은 주인을 찾아가렴~' 쓰다듬어 주었다.  그나저나 80권 꽂아도 허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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