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큰 아이(은호)에게 아토피가 없었다면 우리는 수영장과 커뮤니티 시설이 갖춰진 아파트에서의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은호 7살 때부터 시작된 아토피, 두드러기와의 전쟁은 그 해 가을에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전원주택으로 옮겨가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은호의 상태는 다소 심한 중증을 넘어섰고 (요인이 뚜렷하지 않은)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은 후에는 대책 없는 양약의 장기 복용을 그만두고 한방과 자연요법을 찾게 되었다. 한약도 유기농 음식도 큰 차도를 보이지 않았기에 새 집을 버리고 공기 좋은 교외로 이사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시골집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아파트 구하듯 원하는 동네에 물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물건이 있다 해도 너무 낡은 농가주택이라 마땅치 않거나, 집이 마음에 들면 근처에 공장이나 축사가 있거나 마을과 떨어진 나 홀로 집이었다. 그러다 파주맘 카페에서 세입자를 구한다는 맥금동의 전원주택을 찾았는데 버스를 이용할 수 있고, 2km 거리에 초등학교도 있고, 드문드문 마을도 있는 적당히 전원적인 곳이었다. 게다가 하얀 페인트칠의 외벽과 초록 잔디마당이 있는 2층 집이었다. 맥금동 2층 집에 대한 이야기 만으로도 책 한 권은 만들 수 있을 만큼 그곳에서의 일 년 조금 넘는 생활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평범하지 않은 경험이었고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 되었다.
나의 휴직 기간이 끝나면서 자연히 맥금동 생활을 접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야 했다. 비록 아이의 아토피는 눈곱만큼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했고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팍팍하게 돌아가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세상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회사원이 아닌 삶, 아파트가 아닌 삶, 세상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삶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