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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여니 May 10. 2022

미완성에 익숙해지기

  운동이란 참 잔인하다. 꾸준히 몸을 움직여왔더라도 며칠 손을 놓으면 몸은 냉정하게 처음으로 돌아가버린다. 약 일주일간 몸살, 오한, 식은땀, 생리통, 구내염, 심지어 편두통까지 앓느라 운동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 컨디션이 회복되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몸은 다시 녹슨 기계가 되어 있다. 온몸에 근육이란 근육은 볼 수가 없고, 어깨는 딱딱하게 굳고, 허리는 욱신욱신 아프고, 배는 밀가루 반죽마냥 축축 늘어진다.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구석구석 뻐근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내가 운동을 한 게 몇 년인데, 몸이 안 좋아서 며칠 쉬었다고 이럴 수가 있냐? 너무나도 정직한 몸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아파서, 일이 많아서, 여행을 가게 돼서 요가 수련을 못하고 운동을 못하는 때는 가끔 있다. 문제는 이렇게 잠깐씩 틈이 벌어질 때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몸을 움직이기 싫다는 귀차니즘 같은 이유가 아니고, 매번 고무줄처럼 다시 돌아오는 몸으로 출발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어느 정도 기량이 올라왔다 싶을 때쯤 몸이 안 좋아 며칠 쉬었다가, 다시 열심히 수련해서 몸을 탄탄하게 만들어 놓으면 불가피한 일정이 생겨 운동을 못하고 몸은 제자리로 돌아온다. 특히 여자로 태어난 이상 한 달에 일주일은 생리라는 놈때문에 운동을 무조건 못하는 기간이 있으니, 의욕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다. 마치 달리기 경주에서 출발은 했는데 결승선은 못 가보고 계속 출발선으로 되돌아와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런 기분과 같다. 다시 규칙적으로 운동을 조금씩 해보려고 하면, '아니, 어차피 매번 그대로일텐데 이렇게 운동하는 이유가 뭐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몇 분 뒤의 나는 침대에 누워서 에라 모르겠다 심정이 된다. 끝까지 하지도 못 할 거, 늘지도 않는 거, 그런 거 해서 뭐하나? 그냥 누워있으면 되지.

   


  어설픈 완벽주의자. 딱 그거다. 완벽히 해내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끝내버리는 것. 그런데 운동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다. 프리랜서인 나는 요일별로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해 놓고 그 스케줄에 따라 매일 매일의 계획을 정해 생활하고 있는데, 그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나는 그 외에 모든 생활 습관들도 모두 놓아버리는 아주 안 좋은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서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로 했는데, 몸이 안 좋아 이번에는 도저히 그 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다음날인 화요일, 즉 오늘 이 글을 급하게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한 가지를 못 지켜 넘어가고 보니, 갑자기 다른 해야 할 일들도 모두 하기가 싫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정교하게 짜놓은 톱니바퀴에서 잘못된 나사를 하나 발견하고서는 모든 공정을 멈춰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월요일에 해야 할 일을 못하면 화요일에 해야 할 일도 밀리고, 그럼 그 다음날 할 일도 밀리고, 그럼 밀린 일들이 계속 불어나고, 그럼 쉴 시간도 줄어들고, 그럼 운동도 제때 못 가고, 책도 못 읽고, 그림도 급하게 닥치는대로 그려야 하고.... 결론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다 때려치자, 가 되고 만다. 브런치 에세이를 한 번 기한 내에 못 올렸다는 사실이 운동도 가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기가 되는 이 신기한 현상. 잠깐 경로에서 이탈했다고 그냥 주저앉아 버리는 것. 이미 제대로 하긴 글렀으니 아예 하지 말아버리자 하고 멈추는 것. 이건 완벽주의자도 뭣도 아니다. 그저 끈기도 용기도 패기도 없는, 그저 그런 것이다.


  내 목소리를 내며 나 스스로 홀로 서겠다고 프리랜서 선언을 한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끈기다. 멈추지 않는 것. 꾸준히 하는 것. 빛나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것 같고 성과가 없는 것 같아도 계속 도전하고 버티는 것. 성장하는 것 같지 않고 변화하는 것 같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것. 결과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아도, 내가 스스로 마음 먹은 것들을 끝까지 해내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잠깐 운동을 못 했어도 다시 요가원에 나가고, 브런치 글을 하루 놓쳤어도 '이제 아예 안 쓸래'가 아니라 '다음주부터 다시 열심히 써야지'라고 생각하고, 스케줄이 엉망진창으로 엉켰어도 다 때려치지 않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생활 계획을 다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나에게 완벽주의는 필요 없다. 운동을 못해서 엉망이 된 몸을 핑계로 다른 할 일까지 또 하기 싫어지는 지금, 기억하자. 미완성이더라도 계속 해야 한다고. 항상 부족하게 느껴지는 기분에 익숙해지자고. 매일 매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자고. 경로에서 이탈하면 주저앉는 게 아니라 다시 거기서부터 제대로 시작하자고.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거창하지 않게 가볍게 수련하고 오려고 한다. 기대를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어설픈 완벽주의자는 가고, 꾸준한 미완성의 존재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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