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책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writer Jun 04. 2022

산책일기 8. 스쳐 지나갈 풀의 이름

연재 에세이



처음 알았다.

매일 무심코 지나치던 길에 이토록 아름다운 요새가 있는 줄은.





한 아파트 단지 앞의 작은 쉼터인데, 가만 바라보니 전부 다른 생물들의 작은 군집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씩 떼어 살펴보니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어 마치 여러 종을 전시해 보여주기 위해 남몰래 기획한 작은 화원 같았다.

이토록 작은 공간에 덤불마다 다른 형태와 색상의 식물이 심겨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종을 한데 모아놓았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천의 나무도 아름답긴 매한가지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오래 빗지 않아 엉킨 머리 한 움큼을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단 형태의 나무늘보를 닮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붉게 물들어 가는 반쪽 형상의 얼굴을 수줍게 감춘 아직은 푸른 단풍나무도 있다.


꽃 사진을 찍어와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아직 개화를 안 해서인지, 이제 막 심어서인지, 중간에 구획이 섞여서인지 팻말과 식물의 형태가 조금은 맞지 않아 보이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그간 전혀 알 수 없던 식물의 잎과 꽃의 모양을 배운다.


팻말이 가리키는 '블루훼스큐'는 명실상부한 잎사귀 모양에 잎 가장자리에 독특한 테두리를 지니고 있었는데 실제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바람에 아름답게 휘날리는 듯한 벼를 닮은 모양의 식물이었다.

'황금(줄)사철'은 '금사철'과 모양이 비슷하나 잎 테두리에 나타나는 금빛 색상이 훨씬 또렷한 식물로, 오히려 연두색보다 더 진한 초록빛이 감도는 금사철이 화원에 심긴 식물 같았다. 그 자리에는 '블루훼스큐' 팻말이 꽂혀 있었다. 진짜 '블루훼스큐'는 사진 속 그 어디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부처꽃도 아직 피기 전이다.


왜란(애란)만이 가는 대 위로 하얀색 꽃을 다소곳이 피웠다.


보라색과 분홍색 꽃을 맺기 시작한 목수국….

잘 가꿔진 정원 잔디밭에서 흔히 보는 회양목….

회양목과 목수국.

오늘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은 이 두 개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일기 7. 증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