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산책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writer Jun 09. 2022

산책일기 12. 아름다운 산책객

연재 에세이



날벌레들이 곳곳에 모여 저들끼리만의 회오리바람을 생성한다.

한 남성과 여성이 걸으며 코로나19 소상공인 지원에 관해 얘기했다.

남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죽을 만큼 버티다 폐업했는데 왜 그 죽을 만큼 버틴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안 해주냐는 거지"라고 말했다.

아마 이미 폐업한 영업처에는 동일한 지원이 미치지 않아

가장 최악의 상황까지 도달했다, 거기서 또 최악의 마무리를 하고 만 '최악의 케이스'가 정작 지원에서 배제된 것의

부당함을 설명하시는 듯했다.*


-


저물녘의 숲에는 그만한 온건한 정취가 있다.


주말 저녁이어서인지, 여름이어서인지, 내일이 공휴일이어서인지

그간 본 낮의 산책객보다 밤의 산책객이 훨씬 많았다.


가족끼리 맛있는 식사를 하고 웃으며 천변을 걷는 일은 얼마나 호화로운가.

비릿한 물내음이 마스크의 면을 뚫고 짙게 풍겨왔다.

(여유로움을 호가하는 몇 사람들의 무리를 보아서 내일이 공휴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호리병을 닮은 흰 새가 낮게 수평비행하며 목표로 정한 듯 멀리서 내 앞으로 종이비행기처럼 직진해 날아오더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내 왼쪽 수풀에 안착하며

이른 밤의 산책에 정점을 수놓는다.


저로서는 사사로우면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여실히 사로잡는다는 측면에서는 공적인

유유하고도 고고한 백색 자태.

시간을 홀로 독점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다.

흐르는 시간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는 모습.

시간을 저어하지 않는 아름다운 산책객.

이 물가를 종종 제집처럼 떠도는 그 녀석이다.

저 안을 흐르는 방랑시는 어떤 음률과 언어로 이루어져 있을지.

다 듣기에는 유구한 세월이 걸릴 것만 같다.

그러나


인간처럼 많은 언어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 찾아보니 '소상공인 폐업지원금' 지원이 따로 있는데, 최대 250만 원 한도고, 관련 홈페이지에 들어가 '원스톱폐업지원'이라는 메뉴를 통해 신청하게 되어 있다. 

   '원스톱폐업'이라니, 듣기만 해도 눈물 날 정도로 슬프다. 너무 경쾌하고 고민 없는 수식처럼 들려서 그렇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책일기 11. 맑은 칭칭거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