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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책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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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writer Jun 11. 2022

산책일기 14. 나의 사후성을 부여하는 산책

연재 에세이



이제는 잠시나마 자연을 보기 위해 같은 길도 에둘러 간다.

아무리 바쁠지라도 잠깐의 산보는 가능하다.

나와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문득, '에두르다'의 뜻을 찾아보니 두 가지다.


   ┃ 1. 에워서 둘러막다

   ┃ 2. 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둘러대다


그렇다면 나는 1의 의미로 메모에 '에둘러 가겠다'고 썼을까,

아니면 2의 의미로 썼을까.

보통 '에두르다'는 동사가 '말하다'와 함께 결합돼 사용된다는 걸 상기해 보면 말이다.


사후 부여이긴 하지만, 2의 의미였던 듯하다.

나로서는 그 고집스러운 산책이 '일하기 싫다'고 바로 말하지 못하고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둘러대는 형태의 마음의 솎음이었다.

사실 '의미의 사후성(후에 새롭게 부여한다는 뜻)'은 그것이 그 의미가 태어난 당시의 진실이든 아니든에 관계없이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능력이다.

프로이트는 이 능력이 한 개인의 자아의 밀도, 즉 인간으로서의 성숙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신적 요소라고 생각했다.

의미를 연결해 스스로와 그 삶을 서사화하는 능력 말이다.


산책일기를 쓴다는 결심을 하기 전이었다면 '이렇게 바쁜데 산책은 절대 할 여유가 없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관습은 그토록 유약하고 속에 든 것 없이 부실하다.

산책은 비로소 나의 사후성들을 연결해 주고 맥락화 시켜주는 현현이다.


날은 무척 흐려 햇빛을 볼 수는 없었지만, 소나무의 메시지는 들을 수 있었다.

그 흐린 대기 안에선 소나무가 자신을 보러 온 오늘의 내 삶도 지켜주겠다고,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겠다고, 위용 어린 기세로 모여 기사군이라도 되는 듯 단단하게 드높은 하늘을 막고 서 있었다.

내가 불러내 나와준 것만 같았다.

후에, 그 순간 찍은 사진을 보니, 누가 짙은 회색과 남색 크레파스로 하늘을 연거푸 칠해놓은 것처럼 대기가 까마득하게 어둡다.


그렇다면 아까 내가 그 소나무들 아래서 느낀 위용은,

소나무 자신의 위용이었을까, 소나무 뒤에 드리운 먹구름의 위용이었을까?

두 가지 모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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