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의 다급한 목소리. "단독입니다!" 내 손은 어느 때보다 카메라를 힘껏 움켜쥐었다. 기대감에 도착한 사건 현장. 단순 변사 사건이었다. 노부부의 시신이 발견됐다.
타살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각박한 사회에 매몰되어 아사(餓死)한 흔적도 없다. 이웃들에게 들은 고인의 미담이나 에피소드도 전무하다. 변사의 사건을 사회 문제에 녹일 무엇도 없는 것이다.
병원으로 시신 안치도 끝난 상황이었다. 집 안은 출입금지구역으로 취재할 수조차 없다.
현장은 무(無)의 연속.
그러나 ‘무’ 안에서 ‘단독’은 살아 숨 쉰다. 우리만이 취재한 까닭이다.
만선(滿船)을 기대한 어부의 심정이 이럴까.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만큼은 만선을 기대한 어부의 힘찬 출항과도 같았다. 하지만 뉴스거리가 될 만한 물고기는 보이지 않는다. 일순간, 기대는 허탈감으로 바뀐다.
잡고기를 싣고 귀항해야 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단독은 여전히 살아 있다.
만선의 깃발은 내리고, 거짓의 ‘단독’ 깃발을 단 채 방송국으로 향했다.
카메라를 움켜쥐었던 아귀힘은 온데간데없다.
단독.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세상에 '단 하나' 뿐 인 기사는 기자에게 짜릿함과 명예를 선사한다. 누구보다 먼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뉴스를 보도한다는 것은 기자 본인에게 짜릿한 쾌감을 안겨준다.
단독기사로 사회적 파장과 변화를 이끈다면, 수많은 상(賞)과 칭찬이 줄을 잇는다.
회사차원에서도 단독은 큰 유혹이다. 단독보도가 많은 방송국은 그만큼 ‘취재력’이 돋보인다. 더구나 지금은 10개의 방송국이 데일리 종합 뉴스를 하는 시대다. 시청률 경쟁은 전쟁으로 바뀌었다.
방송국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혈안이다. 그중 가장 탁월한 무기가 바로 단독보도이다.
단독이 주는 기대감은 시청자를 유혹하는 최적의 무기다.
새롭고 차별화된 상품을 파는 가게가 늘 붐비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문제는 현재 방송국들이 하는 단독보도가 ‘단독 같지 않는 단독’이라는 점이다.
단순한 변사 사건을 단독 보도한다. 그래서 얻는 가치는? ‘변사한 부부가 금슬이 나쁘지 않았다.’ ‘이웃들과 무탈하게 지냈다.’ 이러한 정보가 '단독'을 달고 전할 뉴스 가치를 지녔는지 의문이다.
단순한 치정으로 애인을 칼로 찔렀다는 게 단독의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사실이 추가된 문장 하나가 예전에 보도되었던 열 문장과 섞여 단독기사로 변장하기도 한다. 수사를 받는 범죄자가 어떤 음식을 시켜먹었는지, 그릇을 다 비웠는지가 단독기사의 주요 유형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편시대가 개막한 2012년 이후, 대한민국에 벌어진 방송국 모두의 문제다.
저마다 최고의 뉴스를 만든다고 자평했지만, ‘미디어의 양적 팽창이 질적 성장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스스로 증명한 꼴만 됐다. 터무니없는 단독 보도의 범람은 이러한 지탄의 선봉에 서 있다.
언론의 단독은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진짜 단독'이 될 수 있다. 권력을 떨게 하거나, 부조리를 짚어내는 예리함으로 사회를 더욱 살기 좋게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탄핵의 불을 지폈던 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와
권력(청와대)이 민간 기업의 인사에 관여하려 했다는 MBN의 '청와대 CJ 인사개입' 보도가 단독보도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권력 감시와 진실 보도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이와 거리가 먼 단독 경쟁은 오히려 선정보도와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진실 추구보다 단순 사실에 입각한 시간 장사식 단독은 독단에 불과하다.
어부와 기자는 닮았다. 낚는 일이 본업이다.
어부는 물고기를 낚고, 기자는 국민의 신뢰를 낚아야 한다.
어부의 낚시는 지름길이 없다. 매번 그물을 정성스럽게 손질하며 간절히 출항을 기다린다.
정직하게 흘린 땀방울만이 고기를 낚는 가장 빠른 길이다. 기자의 낚시도 비슷하다.
취재 시 요행을 바랐다면, 올곧은 기사는 나오지 않는다. 정직하게 쓴 기사만이 국민의 신뢰를 낚을 수 있다.
어부에게 만선의 기회는 흔치 않다.
만선에 실패하더라도 어부는 다시 바다에 나가 정직하게 낚싯대를 드리운다.
만선을 위한 길은 오직 정직하게 수없이 반복되는 낚시질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어부는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는 단독의 기회가 흔치 않다.
‘가짜 단독’이 아니고서야 '진짜 단독'을 날마다 취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저 우직하게 때를 기다려야 한다. 현장에선 늘 치열하게 고민하고 의심을 품어야 한다. 혹시 모를 단독의 기회는 이러한 근면을 바탕으로 찾아올 것이다. 오늘도 어부는 어김없이 만선을 위한 닻을 올린다. 우리 역시 카메라를 어깨 위에 올려 본다.
그렇게 어부와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