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의 근무는 어떻게?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의 일상과 경제가 중단(Pause) 되는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다. 모든 것이 느려지고 멈출 듯했으나 위기의 공백을 메우고 사회와 경제 시스템을 빠르게 되돌려놓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디지털 기술이다.
이전에도 기업은 디지털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기술은 생산성을 높이고 부가 가치를 높이는 보완적 도구로서 중요했다고 한다면, 코로나 대응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은 생존을 위한 필수재가 되었다.
“코로나는 2년이나 걸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단 2달 만에 이루어 냈다.”
MS의 CEO인 사티아 나델라의 말이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란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 인공지능, 모바일 기술, 블록체인,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소셜미디어, 클라우드 컴퓨팅 등의 기술을 활용하여 비즈니스 모델을 새롭게 구상하고 적용하여 조직의 지속가능한 성과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이미 산업 전반에 걸쳐 진행되어 왔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디지털 전환 시기가 훨씬 앞당겨졌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실패한 기업은 생존의 위협을 받는 상황으로 경영환경이 변화되었다.
이와 함께 다가온 기업의 두 번째 변화는 비대면 업무 전환이다. 물론 코로나 이전에도 원격근무(Telework)와 재택근무(Work-From-Home)는 진행되고 있었고 미국과 유럽은 이미 확산 상태였다.
미국 갤럽(Gallup)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05년부터 2015년 사이 재택근무의 증가 비율이 이미 115%씩 증가했고 2016년 원격근무(원격근무 형태가 포함된 모든 형태의 근무)를 하는 직장인의 비율이 43%였다. 반면 통계청의 ‘경제 활동 인구 조사-근로 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경험’한 직장인은 단지 4.3%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유독 비대면 근무(원격근무 및 재택근무)의 비율이 이렇게도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한국의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불신하고 비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의견이 강했다. 한국에서는 ‘만나야 일이 된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많았고 구성원이 일하는 것이 눈에 보여야 안심하는 경향이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인식의 벽을 코로나가 단번에 깨버렸다. 2020년 코로나 확산에 따라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강화되었고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비대면 근무가 확산 되었다. 미래의 업무 방식이 비대면 근무일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본인의 기업에 적용하기는 망설이고 있던 한국의 기업들에게 코로나는 놀라운 트리거(trigger)가 되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비대면 근무를 적용한 이후이다. 비대면 근무를 하기 전까지는 막연히 불편하고 비효율적일 것이라 지레 짐작했던 것이 해보고 나니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막상 비대면으로 근무해보니 출퇴근 시간이 절약될 뿐 아니라, 생산성도 낮아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크로밀 엠브레인에서 조사한 2021 트랜드 모니터 서베이 결과를 보면 재택근무로 인한 변화 중 가장 큰 부분이 눈치를 보면서 회사에 남아있는 시간이 사라졌다(48.8%)는 점이다. 그리고 말로만 일하는 사람들의 업무 내용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43.9%)는 점과 직장상사의 모호한 업무 지시가 줄어들었다(42.2%)는 답변이 다음으로 높았다. 그리고 이전에 비해 일의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 좋다(37.3%)는 답변도 눈에 띄게 높았다.
뿐만 아니라 재택근무를 경험한 직장인들에게 코로나가 끝나도 재택근무가 유지되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았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재택근무를 했던 직장인 840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 지속 여부를 물었을 때, 전체 응답자의 88%가 ‘코로나 끝나도 재택근무를 계속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고 보면 직접 몸으로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무서운 법이다.
코로나로 어쩔 수 없이 직장은 한시적으로 폐쇄하고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시도했던 기업들이 이후에도 이 방식을 계속 적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 경영자협회 인원을 대상으로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된다면 이후 근무형태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물었더니 확산될 것(53.2%), 원상복귀(33.9%), 현재 수준으로 유지(12.9%)로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거나 확산될 것이라는 의견이 66.1%를 차지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아마존의 기술 부사장과 디지털 부문 부사장을 역임한 콜린 브라이어와 빌카는 <순서파괴(Working Backward)>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국 코로나 팬데믹은 끝날 것이고, 사람들은 다시 회의실로 돌아가 회의를 열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원격근무(Remote Work)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려와 달리 원격근무는 조직의 생산성을 크게 무너뜨리지도 않았고, 직원들의 선호마저 충족시켰다.
우리는 앞으로도 많은 모임이 계속해서 온라인으로 운영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새로운 일의 표준은 원격 회의와 대면 회의가 공존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가 만든 비대면 업무 방식은 코로나 이후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대면 업무와 비대면 업무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워크의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뉴노멀 2.0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들린다. 뉴노멀 1.0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나타난 새로운 표준, 즉, 저성장, 규제 강화, 소비 위축이라는 새로운 세계 경제 특징과 질서를 의미하는 용어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 이후 생겨난 새로운 사회적인 변화나 일상, 규범 또는 표준을 의미하는 용어가 뉴노멀 2.0이다. 이후 기업의 일하는 표준, 즉, 뉴노멀 2.0은 대면과 비대면 업무 방식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워크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이브리드 워크는 전통적 사무실에서의 근무와 사무실 밖에서의 근무가 모두 허용되는 혼합형 근무제를 의미한다. 이는 비대면 근무의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단점을 보완하는 업무형태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하이브리드 워크를 '일부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일부는 집에서 일하는 방식'이라고 단순하게 표현도 하는데, 하이브리드 워크로의 변화에서 집중할 두 가지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먼저, 원격근무가 이루어지는 사무실 밖이 집은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재택근무 경험자들은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때로는 집이 최적의 업무장소가 아닐 때가 많다. 게다가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근무지는 많다. 카페나 원격 오피스, 스터디 카페나 도서관 등 업무 공간 제공을 위한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환경을 고려하면 '근무의 일부를 집에서'하는 것이 아니라 '근무의 일부를 사무실 밖에서’하는 업무 방식이 진행될 것이다.
두 번째 포인트는 하이브리드 워크가 단순히 사무실 안팎의 업무가 혼재하는 형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Remote-First'를 지향하는 업무 형태가 될 것이다. 코로나 이전은 사무실 근무가 기본이고 출장, 외근 같이 특별한 경우에만 원격근무를 허용했다면 하이브리드 워크는 온라인 근무가 기본이고 사무실 업무가 특별한 경우가 된다. 다시 말하면 온·오프라인 근무의 무게중심이 역전된다. 이 때문에 하이브리드 워크는 'Remote-First 방향성 아래 기본은 사무실 밖에서, 일부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방식'이라는 정의가 더욱 가깝다.
하이브리드 워크는 단순한 근무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장소를 비롯하여 직원 개개인의 업무나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근무하도록 지원하는 업무 환경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물리적 장소를 넘어 직원이 업무시간을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탄력적 근무 시간제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온·오프라인 간의 안전하고 끊임없는 연결을 지원하는 고품질의 IT 인프라와 시스템이 수반되어야 것까지 포함된다. 일례로 자녀를 둔 직원은 자녀의 등·하교 시간에 맞춰 근무시간을 조정함으로써 개인의 업무 시간 관리와 효율성을 높이고 워킹맘은 경력 단절을 예방할 수 있다. 이 같은 근무 환경은 직원들이 일과 삶의 적절한 균형을 찾도록 도움으로써 업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갤럽은 2020년 연구보고서에서 직원들이 원격으로 일할 수 있는 선택 옵션을 가질 때, 업무에 몰입할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벨기에의 사회안전부(Belgian Ministry of Social Security) 장관인 프랭크 반 마젠호브는 구성원들의 근무 자율성을 강조했는데, 그들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도록 믿고 맡기는 것이었다. 특히 반 마젠호브는 “정규 근무 시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이는 정규 근무 시간이 일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간파했다는 의미다.
구성원이 일하는 장소와 방식에 자율권을 갖게 되자 그들은 자기 업무시간에 휴식이나 자녀 돌봄 등 필요한 개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반대도 가능해졌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서나 치과에서 대기할 때도 집중해서 업무를 처리하는 등 자율성을 바탕으로 결과 위주의 업무 추진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반 마젠호브 장관 재임 초기 3년간은 생산성이 18% 증가했다. 이후에는 연 평균 10%의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 부처는 벨기에 행정 부처 중 병가 일수가 가장 적었고 번아웃도 없었다. 아무도 관심 없던 꼴등 부서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부서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