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화 Oct 17. 2023

자기만을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

나 오늘 바빠서 그런데 포니 산책 좀 시켜줘. 부탁할게.


일정이 빼곡했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동생에게 포니 산책을 부탁하는데 내가 말하고도 그 말이 마음이 턱 걸리는 게 아닌가.


'같이 키우는 강아지인데 내가 왜 사정을 해야 하지?’


동생은 고등학생으로 시간이 없는 걸 이해한다. 그렇지만 내내 공부만 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알아서 산책해 주면 좋을 텐데 그러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은 심술이 나서 동생에게 물어보았다.


넌 왜 예뻐 만 해? 다른 건 몰라도 산책 한 두 번은 알아서 나갈 수 있는 거잖아.


언니가 하니깐 난 신경 안 썼지.

 

순간 머리가 띠잉~ 할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내가 포니를 돌보는 것이 가족들에겐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구나. 별 다른 말 없이 내가 먼저 돌보니깐 나도 모르게 내 역할이 되어 버렸다. 오늘 하루 강아지가 산책했는지안 했는지, 밥은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아는 사람은 나뿐이다. 이번 달에 사상충은 맞았는지,  올해 건강검진은 했는지 아는 사람도 나뿐이다. 이 와중에 아빠가 내 마음에 불을 질렀으니...


요즘 강아지한테만 너무 신경 쓰는 것 같다. 너 일도 잘해야지.


서러웠다. 그리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서 역할분담을 하자고 가족들에게 선언했다.  


네가 바쁜 건 알겠지만, 가끔은 알아서 산책 좀 시켜줘.

밥 먹이는 건 엄마가 신경 써주실 수 있나요?

아빠 포니 키우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할 일도 알아볼 것도 많아요. 그리고 아무도 안 도와주니깐 그러지.


잔뜩 심술  채 가족들에게 선언을 했다. 그 뒤로는 다행히도 매우 부담이 줄었다. 동생은 산책을 못 갔더라도 내가 다녀왔을 때 포니의 발을 씻기고, 엄마께선 식사를 맡아주고 계신다. 아빠는 일 마치고 포니에게 폭탄 사랑을 준다.  


보호자 혹은 양육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보호자와 양육자 앞에 '주'(主)가 붙은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깐 주 양육자, 주 보호자말이다. 강아지를 예로 들면 밥을 먹이고 산책시키는 것, 경제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을 보호라고 하면 우리 가족은 포니를 돌아가면서 보니 다 보호자이다.


하지만 보호자와 주 보호자는 다른데 포니가 밥은 먹었는지, 운동을  충분히 했는지, 건강 상태는 어떤지 아는 건 주 보호자인 나이다. 결정적으로 주 보호자와 주 양육자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기 어려워진다. 어딜 가든 무엇을 하든 자신이 지키는 존재와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한달까. 나 또한  일정, 가고 싶은 곳을 정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포니이다.


물론 이제는 자연스럽게 나눠서 돌보기 때문에 처음보다 수월하다. 그리고 내가 주 보호자인 것도 좋다. 주 보호자는 그 존재에 대해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게 된달까.


포니와 함께하면서 누군가를 지키고 키운다는 것의 무게를 아주 조금 가늠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순간이 언제든 올 수 있다. 아기가 될 수도 있겠고, 아픈 가족일 수도 있다. 어쩌면 어느새 나이 들어버린 부모님일 수도 있고 말이다.


같이 돌보거나 경제적 지원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 등 각각의 역할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주 보호자와 주 양육자는 따로 있다. 도맡은 것일 수도 상황에 따른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 가끔은 힘들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강아지는 여행이 무엇인지 알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