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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스위스, 집으로

챕터 18. 내 마음의 고향은 어디인가

by 노마드 써니

과테말라에서의 두 달 반을 뒤로하고 나는 스위스로 돌아왔다. 지난 해에 떠나오면서 이미 4월에 돌아올 것을 마음 속으로 정해놨었다. 알피니스코리빙 주인인 벤과 파비엔은 건물 지하 일부를 클라이밍벽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서, 코리빙을 한 달간 접고 다시 공사를 할 참이었다.


6월에 있었다가 10월에 돌아왔고 12월에 떠났다가 4월에 돌아왔으니 두 번 다 4개월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었던 것인데, 이번에는 유독 집으로 간다는 느낌이 강했다. 익숙한 공항, 익숙한 기차역, 익숙한 풍경,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 그리운 집. 나 진짜 집에 가는구나. 얼마나 있었다고 이런 느낌이 드는건지. 익숙함과 그리움이 집이나 마음의 고향을 결정하는 것일까. 익숙함은 있지만 그리움은 없는 한국은 더이상 나에게 집이 아닐까. 익숙함과 그리움이 닿는 곳이 여러 곳이라면 내 마음의 고향은 여러 곳이 흩어져 있나.


그리움에 대해서 더 생각해봤다. 그리움이 그리움으로만 남지 않으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계속해서 그 집으로 돌아오고, 그 집의 기억을 만들어나가면 될까. 행복한 추억을 겹겹이 쌓아올리는 것이, 그것도 한 장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솔직히 나에게 아주 익숙한 것은 아니다. 잘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족은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나는 3개의 유치원과 4개의 초등학교를 다녔다. 다행히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와중에도 세 번의 이사를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한 곳에서 머물지는 않았다. 그리움이 태어날 새도 없게 정신없이 옮겨다녔었다는 게 맞겠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각각 3년, 1년 반의 세월을 보낸 곳인데 기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그리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반면 스위스에는 돌아가기 전까지 세 달 머문 것이 전부인데, 그 시간은 어떻게 그리움을 낳았을까. 시간과 그리움은 정비례하지는 않나보다.


결국 집으로 간다는 것은, 그리움은, 시간과 장소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아는 사실인데도 참 계속 와닿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고, 잘 잊기도 해서 그런 거겠지? 밤에 눈을 감을 때 하루에 대한 만족감과 감사함이, 아침에 눈을 뜰 때에는 하루에 대한 기대감과 두근거림이 있는 것은 그 곳에서의 매일매일이 즐거워서일테다. 그 매일매일을 즐겁게 해주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이고. 사소한 것으로 시시덕거리면서, 누구하나 낮잠을 자면 몰래 사진찍어서 서로 놀리는 재미가 있고, 같이 있는 이들을 위해서 내 시간 쪼개어 쿠키라도 하나 더 굽고 싶고, 저녁 당번이면 근사한 저녁을 해먹이고 싶은 건. 사랑이다. 역시 사랑이야. 하, 이렇게 나는 사랑둥이의 운명을 벗어날 수가 없는게야.


4월에 모인 멤버들은 프랑스 클라우드시타델, 그리고 지난 10월에 알피니스코리빙에서 같이 지냈던 잭, 마찬가지로 10월 알피니스코리빙과 얼마 전 과테말라에서 같이 있었던 노엘, 알피니스코리빙에 눌러앉은 오스트리스, 그리고 나 외에 3월부터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롯데와 루이가 있고, 오스트리스의 친구 마시스, 라트비아에서 온 클라이빙벽 공사전문가 팀, 스트릿아트 전문팀까지 인원이 꽤 되었다.


한 달 간 우리는 지하 벽을 부수고, 부순 잔해를 옮겨다 버리고, 청소하고, 페인트 칠을 하고, 페인트 칠을 또 했다. 코워킹 공간은 다이닝으로 바꾸고 다이닝은 코워킹으로 바꾸고, 운동공간은 지하로 옮기고, 나무판 잘라다가 뚝딱뚝딱 하면서 책장 만들고, 소파 만들고, 거의 매일을 각자의 생업을 마치면 코리빙 안에서 할당된 자기 몫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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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터가 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상꼬맹이다


나는 주로 오전에 코리빙 일을 하고 오후에 내 북클럽 일을 했다. 일요일 저녁에 다같이 모여 앉아서 이번 주에 필요한 일들은 무엇인지, 오전, 오후, 저녁식사 전의 세 파트로 하루를 나누어 언제 일을 할 것인지 이름을 스케쥴 표에 적어놓는 식으로 진행했다. 같이 페인트 칠을 할 때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면서 어깨를 흔들어 가면서 했고, 혼자서 할 때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했다.


우리는 클라이밍벽을 만드는 사람들 답게 클라이밍을 한 달 동안 많이도 했다. 틈만 나면 했다. 같이 하니까 더 재밌어서 정말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나갔던 것 같다. 날씨만 괜찮으면 나갔다. 그러니까 결국 집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사람인데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서 좋은 시간을 계속 반복해서 보내면서 넓혀나가는 것인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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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클라이밍 스팟 모두 코리빙과 엄청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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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집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사랑둥이들

우리는 서로의 앞에서 서로를 그대로 내보일 수가 있어서, 농담을 하면서 코를 컹컹하고 먹으면서 웃어도 그저 웃기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안하고 옆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고 편안하고, 다른 데에서는 보이지 않는 깊은 마음 속 이야기도 꺼낼 수 있고, 아무 말 없이 서로 포옹을 한 채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이들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렇게 존재해서, 그렇게 함께 살아서 감사한 5주 반의 시간. 코리빙의 매력, 코리빙에 대한 찬사는 바로 이런 시간들 아닐까. 돌아오기 전에도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 그래도 다르더라. 오기 전에도 알았지만 오면서도 알았어. 떠나면서도 알아. 나는 이 집이 그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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