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9. 사랑을 뚱뚱하게 만들자
스위스에서 나는 스페인으로 갔다. 프랑스 클라우드시타델에서 만난 카르멘이 사는 말라가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나는 아크로탄트라 이벤트를 위해 그라나다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카르멘은 스위스 알피니스코리빙에서 나처럼 자원봉사도 하고 썬앤코에서도 지낸 적이 있어서 우리는 클라우드시타델에서 만난 것 이외에도 겹치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 1년 만이야!”
껴안고 인사를 하는데, 이 반가운 사람에게서도 집의 냄새가 났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연결의 깊이가 깊은 사람은 다 집의 냄새를 풍기는 걸까? 카르멘과 나는 알찬 일주일을 보냈다. 일주일 동안 클라이밍을 세 번 갔고, 주말에는 운전을 해서 다른 마을의 바닷가로 가 패들보딩을 하고 수영도 하고 해변에서 낮잠도 잤다. 카르멘 집에서 해변까지 10분도 걸리지 않아서 우리는 수영하고 바로 앞에 있는 해산물 음식점에서 점심도 먹었다. 빙어만한 생선구이를 먹는데 뼈째 먹는 나를 보고 카르멘은 식겁하더니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아니, 당연한 것 아닌가요? 칼슘이잖아. 왜 버리는 거야, 생선은 그리고 머리가 맛있다고!
자신의 집에 나를 머물게 해주는 친구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매번 겪으면서도 고맙다. 이 고마움을 내가 어떻게 보답할까. 일주일을 그렇게 행복하게 보내고 나는 아크로탄트라로 향했다. 또 그렇게 사랑을 하러 갔다. 일을 줄이니까 휴가를 내는 것도 쉽네.
아크로탄트라 페스티벌을 가기 전부터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에 대한 예상되는 그림이 있었다. 이미 과테말라보다는 적은 수의 인원이 모이는 것도 알고 있고, 다른 땅에서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니 그 사이의 상호작용이 달라질 것도 예상했다. 과테말라에서보다 이번에는 이미 알고 있는 친구들도 많으니까, 또 두 번째 페스티벌이니까 경험이 그때와 완전히 같지는 않을 거라는.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았지.
과테말라에서의 아크로탄트라는 배움이었는데, 스페인에서의 아크로탄트라는 살아감이었다는 것.
과테말라는 그 영적인 에너지로 나에게 특별한 나라였고, 깨우침이 있었던 곳이었다. 내 안의 딱딱한 부분이 말랑해지고, 새 도구들을 장착하고, 나 스스로를 새로운 에너지 풀장에 내던졌던.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첫 느낌. 압도당하는 느낌. 백 명 정도의 사람들, 계속해서 셋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워크샵들, 매번 '너무 유용하겠다, 아 그렇구나, 오 그렇구나', 했던 배움들, 심지어는 잠자고 휴식을 취하는 것마저도 시야를 넓히는 가르침이었다.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만 빠지는 시간.
스페인은 확실히 과테말라와는 달라서, 친근한 얼굴과 익숙한 에너지가 나를 편안하게 해 주고, 배움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잘 기억하고 있는지, 그 배움을 실제로 살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옆구리를 찌르는 알림표 같았다. 이미 알고 있는 배움에 층을 더 쌓아서 경험을 더 뚱뚱하게 깊이 있게 만드는 시간. 내 안에 그 배움을 더 더 가라앉힌다. 지금 이 순간에 나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에 둘러싸여서, 과테말라 때보다 훨씬 더 삶과 가깝게 느끼는 일주일. 아크로탄트라에 있는 동안은 단단한 거품이 나를 바깥세상에서 보호하고 있는 것을 아는데도, 이번엔 그 거품이 투명해.
취리히에서 만났던 아크로요가 친구, 프랑스 클라우드시타델에서 나에게 처음 아크로요가를 알려준 친구, 아크로탄트라 과테말라에서 만났던 친구, 다들 내가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내가 배운 것들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이미 배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이라, 없이 행동하는 것이, 이전의 행동 패턴들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아크로탄트라 스페인에 오기 전에, 과테말라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연락했던 내용들이 떠오른다. 현생으로 돌아가니까 분명 과테말라에서 함께 배운 것, 감동한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더라. 이 배움을 나는 아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실천하는 게 어려워. 같이 경험한 사람이랑 현생에 나와서 같이 실천해도 쉽지 않을 것을. 그 배움을 몸과 마음으로 매일매일 담아내기가 어려워.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져.
그러면 나는? 4개월이 지난 시점에 실패인가 성공인가? 나도 노력은 했는데 참 어느 딱지가 맞는 딱지인지 정하기가 쉽지 않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거다. 그리고 이 노력은 내가 죽는 날까지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겠지.
나는 지금보다 더 단순하게 살고 싶다. 나의 삶을 내 열정과 꿈에 닿는 것들로만 채우고 싶다. 아크로요가, 탄트라, 클라이밍, 커뮤니티 사람들, 책, 이들이 내 현재 사랑들이고 다른 것들은 다 비워내련다. 나의 일과 사람관계들도 다 그 안에서 맞춰져 나가겠지. 의심은 없다. 형태가 바뀔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두렵지는 않다.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사랑 가득한 삶을 위해서 맞아떨어질 것이다.
나는 더 배우고 싶다. 나에 대해서도 더 깊이 배우고 싶고, 지금까지의 배움도, 유용한 도구들도 더 깊이 알고 싶다. 어쎈틱 릴레이팅 코스를 등록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코치들과의 세션도 예약했다. 11월에나 보겠지만. 나의 배움을 숨을 내쉬듯이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싶다. 내 몸과 마음과 영혼을 나는 매 순간 빠짐없이 보고, 듣고, 느끼고, 붙잡고 싶다. 나의 진정이 진심이 나를 뚫고 나와 빛나고 다른 이들의 진정과 진심을 이끌어내고 싶다. 더 잘 사랑하고 싶다. 나도 다른 이들도.
내 몸과 더 깊은 관계를 갖고 싶다. 왼쪽 어깨가 아파서 아크로요가를 하고 싶은 만큼 못했다. 살이 쪘는지 몸도 무겁고 옷도 낀다. 가볍고 싶으니까 체중감량도 해야 할 것 같다. 근육량을 늘려야지. 베프 중 한 명도 내 몸이 전과 같지 않은 것이 눈으로 보인다 하더라. 오랜만에 아크로요가를 했더니 아크로요가를 하는 동안 내가 내 몸을 제대로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계속해서 내 몸에게 너 그래서 예스야 노야 물어보는데도 감도가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선택을 바로 하지 못하고 한참을 있다가, 아니면 다른 것을 선택했다가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이미 내 몸이 말하는 것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가장 본능에 가깝고 현명한 것을 알면서도 갑자기 선택이 어려운 순간이 있다. 괜찮아. 알아차렸으니까 다시 감을 일깨우고 집중해 보자.
앞으로는 아크로요가 커뮤니티가 있는 곳을 더 찾아다니고 장소를 정하는 데에 한 요소로 추가를 해야 하나 싶다. 지금은 9월 중순이 지나서야 아크로요가를 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데, 두 달이나 남았으니 그동안에는 다른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지.
내 안의 완벽주의자가 계속 묻는다. 그래서 너 대답 안 했잖아, 실패야 성공이야? 몰라 나도. 여전히 몰라. 그런데 상관없어. 나 스스로와 다른 이들이 함께 현생에 더 가깝게, 우리의 배움을 삶에 녹여내는 경험을 했으니.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준 아크로탄트라 스페인. 내 변화의 기둥 중 하나가 되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배경은 모두 내가 온라인으로 일하면서 원하는 곳들로 다닐 수 있기 때문이겠지. 디지털노마드의 생활양식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놀고먹는 한량의 생활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나도 느리게 살고 있다. 한국에서 사는 것처럼 하루를 힘들게 채우는 것은 하지 않는다. 빈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넣고 자연과 사랑을 채워 넣는다. 디지털노매드로 살면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나의 삶에 사랑을 쏟아 넣고 있다. 그렇게 사랑을 쏟아 넣으니까 내가 점점 더 내가 된다. 내가 나로 사는 것의 기쁨과 재미가 계속 쌓여간다.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설렘으로 채워주는 나의 선택과 선택의 제반들에 감사하다. 나에게도 고맙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디지털노마드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디지털노마드로 사는 것이 더 이상 나를 나로 사는 것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내려놓을 준비도 되어있다. 다만 그것이 언제일지를 모를 뿐.
<챕터 19에서 빠진 에피소드들>
파이어버블
스페인 농장에서의 식사
공작새랑 같이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