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를 만들어내는 브랜드에 대해
브랜드의 힘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브랜드 운영에 있어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브랜드컬러에 맞는 지속적인 제품개발 입니다. 브랜드가 쥐고 있는 힘이 지속 유지되기 위해선 기존의 브랜드 자산을 유지함과 동시에 새로운 제품과 컨셉 개발은 필수입니다. 경쟁이 심해진 브랜드 생태계에서 제자리에 안주하는 브랜드는 소비자들 인식속에서 빠른 속도로 잊혀지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파워가 강한 럭셔리 브랜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샤넬은 브랜드 헤리티지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10회 이상의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는 6주에 한 번씩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인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하이패션으로 분류되는 브랜드 컬랙션 발표주기는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다만 브랜드 입장에서 트렌드에 기대 꼭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새로운 제품이 무분별하고 쏟아져 나오는 브랜드 세계에서 단순히 ‘New Thing'이라는 타이틀은 무의미해 보입니다. 업계에서 자주 일어나는 실수 중 하나 역시 새로운 트렌드를 무분별하게 차용해 자신의 브랜드에 접목시키는 일입니다.
실제 현업에선 제품 출시의 압박과 촉박한 론칭 기간에 쫓겨 무리하게 최신 트렌드를 끌여와 제품에 녹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결과 소비자가 갖고 있던 브랜드에 대한 관점에 혼란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완전히 새롭게 단장된 브랜드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독으로 작용할 때가 많습니다. 트렌드 편승에 단기간에 돈을 벌 순 있어도 장기적인 브랜드 관점에 있어서 그 가치는 떨어집니다.
익숙함에 기대어 새로움을 만들어 낸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브랜드에 대한 신선한 감각은 꼭 "보지 못했던 혁신적인 새로움"에서 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급진성에 불안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더 많죠. 그와 반대로 브랜드에 대한 신선함은 "어디에서 본듯한 새로움"이라는 익숙함과 의외성에서 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바로 기시감(déjà vu)입니다.
브랜딩에서 기시감의 기본개념은 "고객에게 얼마만큼의 익숙한 감각을 느끼게 할 것인가?"와 연결됩니다. 일본의 유명 디자인 회사인 넨도는 기시감의 디테일한 조절을 통해 브랜드 컨셉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트렌드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닌 기존 브랜드 스타일의 익숙함에 대한 감도를 결정한 뒤 트렌드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내 브랜드는 그 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선 트렌드를 정하고, 어떤방식으로 교묘하게 브랜드 로고를 집어넣을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아웃도어 브랜드의 롱 패딩이 대표적입니다. 국내의 많은 수요에도 몽클레어와 캐나다 구스와 같은 하이패션 롱 패딩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브랜드가 갖고 있는 기시감(Basic)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에 대한 기시감이 없으면 제품에 대한 의미있는 차별화는 어렵습니다.
몇 퍼센트의 새로움을 먼저 넣을 것인가 혹은 몇 퍼센트의 익숙함을 먼저 넣을까?라는 기본적인 선후관점의 차이는 장기적인 브랜딩에 있어 큰 격차를 만들어 냅니다. 새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브랜드는 트렌드에 휩쓸릴 가능성이 크지만, 익숙함을 먼저 생각하는 브랜드는 결과적으로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거에서 찾는 새로움, 뉴트로 무브먼트
익숙함에 대한 새로움을 가장 잘 표현하는 최근 현상은 뉴트로입니다. 바로 신 복고풍입니다. 사실 레트로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꺼내드는 패션계의 단골 트렌드입니다. 하지만 최근 복기되는 레트로 트렌드는 패션 뿐만 아니라 LP, 워크맨 등 음악기기, 전통가옥이나 공장을 개조한 카페, 제과, 디저트, 심지어 주류산업에 이르기 까지 전방위적 산업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단지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요?
산업계에서 과거의 것을 다시 들춰내는 이유는 앞서 말했던 기시감과 연결됩니다. 새로운 것이 난무 한 상황에서 브랜드가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컨셉이 소비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인식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습니다. 인식된다 할지라도 매우 짧은 순간에 잊혀지고 말겠죠. "새로운 것을 인식시킬 수 없다면 기존의 것을 활용하자. "가 공급자 입장에서 레트로의 시작 입니다.
최근 레트로가 움직이는 방향 중 대표적인 것이 콜라보입니다. 과거의 것을 좀더 비틀고 의외의 소재를 덫 붙이면서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잡는 것 입니다. 펜디와 휠라, 메종키츠네와 3CE, 에잇세컨즈와 새우깡, 등 관련성이 적어보이는 제품을 믹스하는 것 입니다. 기존 소비자들이 인식하고 있던 브랜드 이미지에 의외의 다른 브랜드를 끌여와 소비자들에게 의외의 감각을 주는 것 입니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하고 실제로 팔리기 까지의 경로는 너무 긴 반면, 소비자들이 제품을 인식하고 구매하는 기간은 매우 짧아졌습니다. 트랜드의 주기가 매우 짧아지면서 결국 돈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던 것 입니다. 레트로의 재등장에는 "새 것에 대한 과잉"이 그 기저에 깔려있습니다.
브랜드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레버넌트라는 영화를 통해 오랜 장고 끝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디카프리오는 수상 소감에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연기를 하겠다"라고 소감 아닌 포부(?)를 밝혔습니다. 디카프리오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를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디카프리오의 새 영화를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영화에는 항상 "그 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몰입시키는 눈빛, 안정적이면서 격정적인 딕션, 연기 앞에 한없이 진지한 자세. 시나리오의 완결성과 무관하게 그가 등장하는 영화는 그 다운 연기의 완벽성이 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하곤 합니다.
브랜딩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브랜드 제품개발에 있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은 나만의 브랜드 다움은 뭔가?에 대한 고려입니다. 또 반대로 소비자들이 느끼는 내 브랜드의 데자뷰는 뭔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컨셉은 그 다음입니다. 브랜드의 기본적인 익숙함의 모양이 결정되어야 새로운 컨셉의 확장이 가능합니다. 트렌드가 아닌 브랜드를 먼저 생각할 때 의미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