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임은 갔지만 나는 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학창 시절에 배운 몇 안 되는 시 구절들입니다. 누가 썼는지, 어떤 시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문장은 확실히 뇌리에 남아있죠. 단어의 역설을 통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문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시장경제의 창시자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시장경제를 "보이지 않는 손" 이란 짧은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이 짧은 문장을 통해 스미스는 시장이론을 널리 퍼트리는데 성공했죠. 시장경제가 사회주의를 이긴 것은 어쩌면 저 짧은 뒤틀림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미래로 후진하는’ 뉴트로 트렌드 역시 옛된 것에서 신선한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으로 설명됩니다. 카페, 패션, 음식, 음식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오래된 가치에 새로운 해석을 더하면서 신선한 감각을 유도합니다. 역설을 통해 신선함을 제시하는 것은 무수한 정보가 넘쳐나는 현시대에 더 어울리는 전략으로 보이기도 하죠.
경험에 대한 인식은 기존에 갖고있던 관점에 큰 혼동을 느낄 때 쉽게 기억될 수 있습니다. 오래되고 허름한 창고의 외관을 바라보며 들어간 카페에서 어느 곳보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공간을 경험했다면 우리는 그곳을 쉽게 잊기 힘들 것입니다. 외부와 내부의 차이에서 벌어진 큰 낙차가 소비자를 깊게 인지시키는 것이죠.
'가장 올드한 게 가장 세련될 수 있다.' '가장 누추한 게 가장 힙한 게 될 수 있다.' 새것이 넘치는 세상에서 소비자는 오히려 이런 식의 꼬인 관점을 통해 신선한 감각을 채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최근 화두 되는 대부분의 트렌드와 멋의 초점은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의 미스매칭을 겨냥하고 있죠.
'꾸안꾸’는 궁극의 꾸밈이다. 어느 패션 에디터는 말합니다. 한 껏 꾸민 정장에 캐주얼한 나이키 운동화를 매칭 시키는 것. 힙스터 같은 넉넉한 후디 차림에 고급 시계를 매칭 시키는 것. 스포티한 룩이지만 라인의 도드라짐을 통해 관능미를 살리는 에슬레져 룩. 이 특유의 무심함이 어쩌면 현시대의 멋을 관통하는 집약적인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자신만의 가치를 공격적이고 직설적으로 설파하는 방법은 뭔가 촌스러워졌습니다. 촌스럽게 대로변에 위치해 있지 않은 숨겨진 핫플레이스, 쓸데없이 고퀄인 제품들, 꾸민 듯 안 꾸민 듯 꾸민 이포트리스(effortless)룩, 올드함에서 새로움을 찾는 뉴트로. 이 모두는 은근한 숨김을 통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노브랜드는 거품 껴있는 브랜드 비용의 제거를 알리며 가성비를 어필합니다. 노브랜드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지만 이름 자체로 자신의 존재를 거부하며 고유의 가치를 강조하죠. 파타고니아 역시 지속 가능한 지구라는 자신의 브랜드 미션을 알리기 위해 “파타고니아 재킷을 사지 말라”고 권합니다. 의도적인 역설을 통해 파타고니아가 추구하는 고유한 관점을 부각시키는 것입니다. 관점이 명확한 브랜드는 오히려 관점의 유연한 비틈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것이죠. 은근하지만 매우 강력한 자기 어필입니다.
서점의 아날로그화 보다 서점의 혁신화가 눈길을 끌고, 혁신적인 기술보다 감성적인 기술이 더 이목을 끌기 마련입니다. 역설이 가진 힘이죠. 블루보틀은 커피계의 애플이란 IT 스러운 별명을 얻으면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됐습니다. 고급 다이어리 업체 몰스킨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가교 역할을 자처하며 IT업체 에버노트와 협업을 진행합니다. 고루한 아날로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디지털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브랜드 갖는 오리지널리티가 명확하면 오히려 다른 부가가치를 쉽게 접근 할 수 있습니다. 감성과 분위기를 다뤄야 할 스타벅스는 자신을 테크회사라고 정의하고, 애플은 자신의 뛰어난 기술력 대신 '인문학'을 말합니다. 발뮤다는 감각 있는 소형가전 디자인으로 유명하지만 디자인 대신 뛰어난 기술력을 어필하죠. 관점이 명확한 브랜드의 미덕은 브랜드가 갖는 가치 이외의 것을 말할 때 브랜드 본연의 가치가 되려 빛난다는 점이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브랜드는 꼭 투박해야 하고 단정해야 할까요? 가방 제조업체 프라이탁은 버려진 트럭의 방수포만을 재활용하여 가방을 제작합니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프라이탁만의 옳곧은 브랜드 철학이죠. 하지만 프라이탁은 그런 올곧음 드러내기보다 유니크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브랜드를 소구 합니다. 러쉬 역시 천연 재료, 자연적으로 검증된 제조 프로세스를 유지하지만 화려한 색과 코를 찌르는 향기로운 제품으로 러쉬만의 매력을 어필하죠. 테슬라가 주목받았던 이유 역시 전기자동차라는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매끈한 패션제품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기존 전기자동차 업체가 생각하지 않았던 관점이었죠.
기존의 관점과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대상을 해석함으로써 브랜드는 보다 더 깊게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브랜드 매거진 B는 잡지가 담는 콘텐츠의 완성도는 물론 잡지만의 유니크한 디자인에 상당한 공을 들입니다. 발행인 조수용 대표는 단지 책상 위에 놓여있는 것만으로 감도 높은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디자인에 신경을 쓴다고 말하죠. 콘텐츠 관점이 아닌 디자인 관점에서 잡지를 다루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많은 카페에서 인테리어 용도로 매거진 B를 배치해놓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민음사가 낸 세계 전집 한정판 역시 책을 단지 콘텐츠가 아닌 하나의 예술적 오브제로 다루려는 시도가 돋보입니다. 책을 콘텐츠가 아닌 하나의 인테리어로 생각한다면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는 것이죠. 종이 콘텐츠에 새로 관점을 부여함으로써 나름의 차별화된 브랜드가 되는 것입니다.
브랜드 간 컬래버레이션은 관점의 뒤틀림의 전략에서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브랜드가 자신의 브랜드 다움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레 잃어버린 가치를 타 브랜드와의 커넥션을 통해 채워 넣는 것입니다. 특정 브랜드에게 부족한 가치 혹은 고객을 보유한 전혀 다른 브랜드와 자신의 브랜드의 인식의 끈을 연결시키는 것이죠.
동서식품의 맥심 모카골드는 인스턴트커피가 갖는 올드함과 따분함의 이미지를 벗겨내기 위해 카카오프렌즈와 협업합니다. 동시에 밀레니얼에게 접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내죠. 반면 카카오프렌즈는 자신들의 주 타깃인 밀레니얼을 벗어나 맥심의 주 타겟층인 기성세대에게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노란색을 공통으로 뭉친 두 브랜드는 관점의 혼합을 통해 부족했던 새로운 이미지와 고객층을 얻는 것입니다.
스트릿 브랜드와 럭셔리 브랜드의 콜라보 역시 대표적인 케이스 입니다. 스트릿 브랜드의 자유분방함과 럭셔리 브랜드가 갖는 헤리티지 이미지를 결합해 오묘하고 신선한 감각을 만들어내죠. 프라다와 아디다스,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컬래버레이션은 대표적입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감각은 밀레니얼을 열광시켰습니다.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X-FiLE의 주인공 멀더가 매번 읊조리는 대사입니다. 브랜드의 고유한 가치는 파악하기 매우 어려운 개념입니다. 나만의 가치는 쉽게 정의되기도 알려지기도 힘들죠.
학창 시절에 배운 역설의 의미는 강조였습니다. 역설법은 항상 매우 찐한 강조였죠.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치의 정반대의 부분을 건드려보면서 오히려 현재의 관점을 보다 더 깊게 인식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배반적 사고를 통해 오리지널이 지닌 에센스를 더 부각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허나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브랜드 관점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쓰이는 관점의 뒤틀림은 오히려 브랜드 전체의 탈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점의 역설 정중앙에는 브랜드가 지니는 핵심 가치가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결국 유연한 변화의 시작은 지켜야 할 것에 대한 중심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더 좋은 것, 더 값싼 것으로 더 이상 차별화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경쟁에 집착하고, 기성 업계의 관점에서 비즈니스를 생각한다면 차별화는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브랜드만의 뚜렷한 관점으로 제품을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을 때 혁신은 탄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