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이 기대되는 사람들
좋은 브랜드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대답하기 참 난해한 질문입니다. 답이 존재하지 않는 방적식 같다고나 할까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성공한 브랜드에 대해 꼭 집어 '이것 때문에 성공했군'. 일반화하며 단정 짓기도 매우 어렵죠. 그렇다고 뻔한 이야기를 적을 수 없는 노릇이니 글의 시작은 항상 막연한 심정으로 적게 됩니다.
최근 하정우 씨가 쓴 책 [걷는 사람, 하정우]란 책을 읽었습니다. 배우가 낸 책은 '읽을 책이 아니라 파는 책이다'라는 의심이 있었지만 책 안에는 일반인이 쓰기 힘든 깊은 문장과 뚜렷한 깨우침이 농밀하게 담겨있었습니다. 분명 일반인이 썼더라도 충분히 좋은 책이었습니다
하정우 씨를 처음 본 건 영화 추격자에서였습니다. 사이코패스 성범죄자의 양 단면을 소름 끼칠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한 그의 연기에 충격을 받았었죠. 시간이 지난 뒤 영화 더 테러 라이브에서 혼자만의 압도적인 파워로 영화를 이끌어 가는 그를 보고 '진짜배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도, 범죄와의 전쟁, 베를린, 터널 등 배역과 장르의 구분 없이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와 연기에 도전했습니다. 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고 그와 같이 척척 앞으로 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를 경외심과 함께 또 다음은 뭘까?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죠.
버전 업
좋은 브랜드란 것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시간의 경과가 있지 않고서는 성공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브랜드가 진짜였나 아닌가는 시간의 검증을 받지 않고서는 결코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의미 있는 브랜드로써 검증된다는 것은 특정 한 시점, 어느 한 포인트에서 반짝하는 도드라짐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시기에 유니크한 스타일을 가진 브랜드가 불쑥 튀어나와 강한 이목을 끌었지만 어느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면 결국 '진짜 브랜드'가 아닌 것이죠. 하정우 씨가 영화 추격자에서 끝나버렸다면 대중들은 결코 하정우 씨를 깊게 인식하진 못했을 겁니다.
'브랜드가 되었다.'라는 말의 함의에는 첫 번째에 이은 두 번째 도약도 있었다.라는 뜻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꽤 단순하고 당연한 말 같아 보이지만 실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오히려 특별한 이야기일수 있죠. 허니버터 칩, 대만카스테라, 버블티. 스베누, 특정시기에 한 획을 그은 제품이지만 의미 있는 브랜드가 되었다.라는 소리는 어느 곳에서 듣지 못했습니다. 첫 번재에 이어 두 번째 성공적인 모멘텀을 가져가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 입니다.
브랜드에게 있어 훌륭한 스타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버전 업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역량이 있는가. 가 어쩌면 '진짜 브랜드'를 만드는 결정적인 지점일 수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브랜드의 핵심은 내부의 자생력을 통해 끊임없이 혁신할 수 있는 힘. 그리고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는 계획과 포부가 그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지에서 결정됩니다.
세컨드 스테이지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 여부에 따라 브랜드의 향방은 급격히 나뉘게 됩니다. '멋진 브랜드가 되고 싶다'라는 부분의 실마리는 어쩌면 수많은 위기에 맞서는 넥스트 플랜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죠. 분명한 건 위기를 겪고 난 후 살아남는 혹은 나이스 하게 극복한 브랜드는 그 전과는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갖춘 '진짜 브랜드'가 된다는 것입니다.
애플에 아이폰이 없었다면
어떤 브랜드의 역사에나 몇 번의 극적인 분수령이 있기 마련입니다. 2005년 애플의 아이팟은 불티나게 팔리며 년 누적 판매랑 2,000만 대의 판매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아이팟은 당시 애플 수익의 무려 45%를 책임졌죠. 하지만 잡스는 항상 애플을 망칠 수 있는 모종의 위기에 집착했는데, 그 가능성은 휴대전화에 있었습니다.
기업의 최고의 순간에 오히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려 했던 애플이 3년여간 개발 끝에 내놓은 역작은 아이폰이었습니다. 아이폰은 아이팟이 창출하는 대부분의 수익을 잠식할 것이라 예상됐지만 잡스는 자기 혁신을 통해 다음 버전을 위해 나아갔습니다. 일류 기업 중 하나였던 애플이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초일류로 발돋움한 때는 분명히 아이폰 이후였습니다. 버전 업을 통해 브랜드가 된 명백한 사례였죠.
브랜드 아카이브
스스로 끊임없이 버전업시킨 브랜드는 어느 시점에서 자기만의 '세계관'이라는 것을 구축하게 됩니다. 좀 더 세련되겐 나름의 브랜드 아카이브라고 할까요. 그 시점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여타 제품과 다른 그 브랜드 제품만의 '브랜드 다움'을 인지하게 됩니다.
브랜드라는 것은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인식되는 다차원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제품 하나가 가진 압도적인 힘이 있다고 하더라도 브랜드가 가진 스타일과 자기다움을 설명하기엔 꽤 많은 빈틈과 비약이 존재하죠. 브랜드 추구하는 오리지널의 가치가 소비자들의 인식에 정확히 가닿기 위해선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진 실제 사례들이 필요합니다.
초창기 발뮤다가 그린 펜이란 매력적인 선풍기를 선보였을 때만 해도 그저 그런 혁신적인 기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힘과 에너지를 축적하여 죽은 빵도 살린다는 토스트기, 항아리 모양의 직관적인 가습기, 예술품과 같은 전자 포트기, 전기밥솥 등 나름의 세계관에 맞는 후속작을 잇따라 선보이면서 발뮤다만의 진정한 브랜드 아카이브를 형성하게 됐죠.
심혈을 기울여 하나하나의 제품을 쌓아가는 정성을 통해 브랜드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은 결국 시간과 버전업이라는 상호작용이 일어날 때 구축될 수 있습니다. 결국 브랜드는 장기적인 계획과 차근차근 하나씩 실현시키는 나아감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구축되는 세계관을 통해 브랜드는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와 다른 여타의 경쟁자가 넘어올 수 없는 굳건한 장벽을 구축하게 되죠.
스타벅스 리저브
브랜드가 살아남기 힘든 이유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그만큼 빨리 변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커피의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스페셜티 커피 바람이 불면서 블루보틀, 인텔리젠시아, 국내에서는 프릳츠, 테라로사 등 하이엔드 커피를 지향하는 다양한 카페 브랜드가 생겨났습니다. 그중 미국에서 시작해 일본을 타고 넘어온 블루보틀의 인기는 한국에도 급속히 전파됐죠.
업계 저변에 흐르는 트렌드에 큰 지각변동이 일어나면 이전 트렌드를 대변했던 브랜드는 급속히 퇴보하는 현상을 보이곤 합니다. 커피 2.0을 대표했던 스타벅스의 위기는 어느 정도 예견됐었죠. 하나 스타벅스는 꽤 오래전부터 이러한 흐름의 변화를 감지하고 나름의 다음 버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 스타벅스 리저브 매장이 처음 강남에 들어왔을 때, 많은 매체에서는 된장 커피라는 속어를 쏟아내며 리저브 커피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스타벅스는 어쩌면 스페셜티 커피라는 산업의 전체적인 변화를 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중국 상하이에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매장을 낸 스타벅스 리저브는 또 한 번의 큰 도약을 알렸습니다. 브랜딩의 끝판왕을 보여주겠다. 라는 의미심장한 느낌으로 매장 내 모든 공간에 커피와 관련된 프리미엄 컨셉을 집어넣었죠. 수많은 매장에서 수많은 대중을 대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굳건히 지킨 배경에는 스타벅스가 끊임없이 진화시켜온 ’버전 업'에 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다음 스테이지는?
성공을 경험하고 있는 순간에도 발 빠르게 다음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을 준비하는 브랜드도 분명히 있죠. 제2의 제3의 전성기를 위해 은밀한 힘을 축적하고 보이지 않는 다음을 디테일하게 계획하는 브랜드는 얼마나 될까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결코 그곳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다.' 캐즘 마케팅으로 유명한 경영학자 제프리 무어의 말입니다. 흔히 얼리어답터에서 다수 수용자(고객)로 가는 길목에 존재하는 수요의 절벽을 캐즘이라고 합니다. 캐즘을 견디지 못하는 수많은 브랜드는 결국 몰락하고 마는 것이죠.
하나의 성공 지점에서 다음의 성공적인 챕터로 넘어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캐즘이라는 수요의 절벽을 겪어내기 위해선 결정적으로 앞으로의 뚜렷한 계획이 있어야 하죠. 첫 번째 스텝과는 다른 두 번째 서막을 열어야 비로소 제품은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일류 브랜드 역시 그러한 질곡의 시간이 존재했습니다. 나이키가 처음부터 Just Do it! 이 아니었고 애플이 처음부터 Think differnet가 아니었듯 말이죠.
'앞으로 할 일이 많다. 해야할 영화가 많다.' 신과 함께라는 새로운 장르의 판타지물을 흥행시킨 후 인터뷰에서 하정우씨는 바로 다음 스테이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배우,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 제작사, 작가 등 다방면에서 바쁘게 활동하는 와중에 하정우 씨의 포커싱은 '다음'에 있었습니다. 왜. 하정우는 기대감을 만드는가, 왜 브랜드인가. 어쩌면 그가 끊임없이 제시하는 그의 '다음'에 달려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