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중심의 브랜드 커뮤니티에 대하여
동일한 취향의 사람들
동일한 취향의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큰 행운일지 모릅니다. 은밀한 취향에 대해 밤새 맥주를 홀짝이며 떠들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보다 값진 자산도 없겠죠. 말하고 싶은 것을 모두 끄집어내 말할 수 있는 상대를 곁에 둔다는 것은 그만큼 찾기 어려운 행운에 속할 것입니다.
지날 달부터 평소에 관심을 두던 마케팅, 브랜딩 관련 독서 커뮤니티에 가입하였습니다. 유료로 진행되는 모임이지만 동일한 관심사의 사람을 만난다는 생각에 고민 없이 결제를 진행했죠. 1개월에 책 한 권, 한 번의 모임으로 진행되는 커뮤니티로 모임 때는 4시간 이상의 긴 토론이 진행되는 꽤 진지한 모임이었습니다.
첫 모임의 공기는 낯설었습니다. 15명 이상의 꽤 규모가 있는 사람들 앞에서 뻘쭘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것이 부담스러웠죠. 허나 그 모임엔 '마케팅'이라는 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다른여타의 정보는 별개로 제쳐두고 오로지 한 가지 공통점을 초점삼아 몰입하니 이야기 흐름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흘렀습니다.
어쩌면 오로지 한 가지 취향과 목적을 토대로 만날때 모임의 질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평소 친구나 주변 지인들과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었던 나만의 관심사를 실컷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4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경험을 판다에서 관계를 판다로
"제품이 아닌 경험을 판다."라는 말은 최근 몇 년 간 화두였던 소비자 관점의 혁신이었습니다. '경험'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공간의 재해석,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여행의 현지화 등 다양한 키워드가 오고 갔죠. 제품이라는 '현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식상해지면서 '경험'이란 키워드는 모든 산업군에 널리 차용되었습니다. 매우 강력한 소비 트렌드였죠.
SNS를 통해 좋은 경험, 럭셔리한 경험을 마음껏 공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자랑(?)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개인적이고 은근한 공유가 채워주지 못하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이 우리 안에는 고요히 존재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후속으로 나온 키워드가 바로 '관계'입니다.
모바일을 통해 개인화되고 파편화된 사회에서 고객이 간절히 원했고, 브랜드가 유심히 주목했던 분야는 커뮤니티였습니다. 개인화와 단절됨이 기정사실화 된 고독한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을 잊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운동, 독서, 요리, 패션 등 각종 분야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이 흐름을 방증합니다.
트레바리는 독서토론이라는 커뮤니티를, 버핏 서울은 함께하는 운동 커뮤니티를, 클래스 101은 각종 취향과 배움 커뮤니티를 효과적으로 묶어냄으로써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냈죠. 빠르게 개인화되고 있는 사회현상에 비추어볼 때 '관계'는 자체로써 더 희소하고 가치 있는 비즈니스 키워드가 될 수 있습니다. 브랜드 입장에서 '커뮤니티를 다루는 방식' 이 더 중요해지고 있죠.
취향을 중심으로 모아라
브랜드를 둘러싼 사람과 사람 간 빈번한 마찰이 일어날 때 브랜드가 품는 스토리는 보다 더 풍부해질 수 있습니다. 브랜드에 대해 자발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브랜드가 뻗어나갈 수 있는 보폭 또한 커지게 되죠. 커뮤니티를 보유한 브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브랜드에 대해 나서서 이야기해줄 수 있는 세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커뮤니티를 통해 시작된 이야기는 SNS와 오프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팬클럽이 왕성한 가수가 실검에 자주 오르듯이 말이죠.
"브랜드를 구심점으로 어떤 고객을 집객하고, 어떤 커뮤니티를 구성할 것인가"가 강력한 브랜드 역량이 될 수 있습니다. 모이는 행위의 구심점이 강할수록 브랜드와 커뮤니티에 대한 확산은 보다 뚜렷해질 수 있죠. 커뮤니티 브랜딩의 성공여부는 결국 얼마나 강력한 구심점을 형성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커뮤니티는 금새 와해되기 때문입니다.
집객에 대한 구심점이 가장 확실하게 검증된 키워드는 '취향' 입니다. 나이키는 브랜드 네임이 아닌 런닝이라는 취향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조성하고 룰루레몬은 요가라는 취미를 구심점으로 커뮤니티를 조성하죠. 특정 취향과 브랜드 사이의 연결고리가 강할수록 커뮤니티의 힘은 도드라질 수 있습니다. 취향이 아닌 브랜드이 도드라질땐 그 수렴의 파워는 미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속가능한 소비자 니즈에 기반할 때 커뮤니티의 지속성은 유지될 수 있죠. 대기업 서포터즈나 마케팅 프로그램이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티가 될 수 없듯이 말이죠.
특정 이슈나 취미에 높은 관심을 가진 고객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상황일수록 브랜드 메시지는 보다 진정성 있게 전달되고 전파될 수 있습니다. 나이키 런 클럽(NRC)은 나이키의 대표적인 런닝 커뮤니티로 장소와 일정을 공지하면 원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뛰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수많은 소규모 커뮤니티가 자연발생적으로 뭉치고 해체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이키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더 공공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브랜드가 커뮤니티를 만들고, 마케팅 초점을 모으는 이유는 수많은 관계와 마주침 속에서 발생된 메시지는 자연스럽게 바이럴 되기 때문입니다. 브랜드와 고객 간 더 진화된 관계를 통해 브랜드는 확실한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그곳에서 파생되는 독특한 문화, 다양한 바이럴, 적극적인 피드백 등을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커뮤니티가 없는 기업이 쉽게 획득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죠.
작게 시작하자. 룰루레몬과 커뮤니티
어떻게 커뮤니티를 시작할 것인가. 커뮤니티의 중요성과 가치는 모든 브랜드가 중요하는 바입니다. 문제는 의미 있는 커뮤니티의 형태와 규모를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에 있죠.
룰루레몬은 이미 많은 여성분들에게는 유명해진 요가복 브랜드입니다. 스타일리시한 패션복과 운동복을 조합해 무심한 듯 트렌디한 에슬레저 룩을 만들어낸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룰레레몬의 성공요소는 기본적으로 패셔너블함과 신축성 있는 소재입니다. 사업 초기부터 운동복의 소재 퀄리티에 집중했죠. 군살은 숨기면서 몸매의 탄력성을 만들어주는 형태의 요가복은 고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충분히 매력적인 컨셉이었습니다.
하나 룰루레몬이 지닌 진정성의 발현은 소규모 단위의 커뮤니티의 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룰루레몬의 출발은 지역 매장 기반의 작은 커뮤니티에서 시작합니다. 초기 룰루레몬은 매장 주변에 위치한 피트니스나 요가클럽을 방문하며 강사와 트레이너에게 요가복을 홍보하고 협찬했습니다. 매우 소소한 접근법이었죠.
룰루레몬은 지역중심의 커뮤니티의 세를 넓혀가며 매장 주변의 진정성 있는 고객을 한 명 두 명 끌어들이게 됩니다. 친밀도가 높고 연결성이 강한 소규모 집단의 수와 범위를 확장해가며 나름의 입소문과 진정성을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 접근보다는 소규모 접근, 지역적 접근을 통해 고객에게 친밀하고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다가갔죠. 거대한 결말의 소소한 시작이었습니다.
커뮤니티의 핵심은 내가 정말 이 브랜드에 소속되어 있다는 확증입니다. 흔히 대기업이 사용하는 서포터즈, 체험단 등의 커뮤니티는 따듯한 정서적 맥락과 교류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약점이 있습니다. “브랜드가 인격적으로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다.” 는 확신과 진정성을 줘야 커뮤니티는 자발적으로 모이게 됩니다. 의미 있는 시작은 항상 조그마한 진정성에서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변화를 경험한 고객은 충성고객이 된다
'인간은 애초에 집단적이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개인화된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근원을 탈집단화에서 찾았습니다. 집 단 안에서 타인과 부딪히며 미묘하고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쩌면 인간 행복의 근원일 수도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며 그 안에서 지속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운동, 독서, 요리, 공부 등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고객이 느끼는 미묘하게 변화되는 자신의 긍정적인 감정은 결국 브랜드 충성과 깊게 연관될 수 있습니다. 변화를 경험한 고객이 충성고객이 되는 것이죠.
브랜드가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가 변화의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그 브랜드를 통해 어떤 변화를 획득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의 실증이 필요합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커뮤니티의 역할을 하나의 검증사례가 될 수 있죠. 커뮤니티 안에서 변화를 경험한 고객은 자연스럽게 브랜드 팬이 되고 전파자가 되는 것입니다.
온라인으로 모든 것을 비교해볼 수 있는 시대에서 결국 살아남는 브랜드는 자체적인 커뮤니티 존재 여부에서 갈릴 것입니다.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나? 팬을 만들 수 있나? 어떤 위기에도 브랜드를 지켜줄 것은 결국 그 브랜드와 함께 호흡하며 변화를 경험한 고객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