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진짜 다시 시험관 시술 받고 싶다
최근 난임 일기 올리는 일이 뜸해졌다. 마지막으로 병원을 방문했던 게 작년 12월 초였다. 11월 중순에 간단한 수술을 하나 받았고, 회복 기간이 한 달 걸렸다. 11월에 수술을 하고 나서 담당 선생님은 회복에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 2020년 3월에나 다시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자고 했었다. 그러나 12월 초에 수술 후 마지막 점검 진료를 받으러 갔을 때, 선생님은 당장 다음 생리가 시작되면 다시 시험관 새로운 차수를 진행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들떴다.
2018년 1월 시험관 1차수를 진행했고, 2019년 10월에 7번째 이식을 받았다. 결과는 늘 비임신이었다. 2년 동안 회사 생활과 시험관 시술을 병행했다. 다행히 회사에서 유연 근무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편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 번 시술이 시작되면 나는 삐쭉빼쭉한 출퇴근 시간과 잦은 자리 비움에 혼자 눈치가 보였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어도 나는 자꾸 팀 동료들에게 먼저 변명을 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시술 후에도 중요한 회의나 업무가 있으면 기어이 회사로 출근하여 업무를 수행했다. 나는 나름 병원과 직장을 병행한다고 최선을 다 한 것 같은데, 연말 평가 기간이 되면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했다.
원래는 그래서 작년 여름부터 휴직을 들어가기로 남편과 합의를 했었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난임 휴가 제도는 없었지만, 시험관 시술을 위해 기타 휴직(무급)을 1년 사용한 선례가 있었다. 직속 팀장님께는 작년 1월 업무 계획 면담을 할 때부터 휴직 가능성을 언급해두었다. 시험관 시술 한지 만 1년이 되었는데, 계속 잘 되지 않으면 여름/가을쯤에는 휴직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팀장님은 나의 건강과 몸이 우선이니 언제든 휴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지면 부담 갖지 말고 알려달라고 해주었다.
그렇게 처음 휴직 가능성을 언급한 게 2019년 1월. 그리고 5월 말 나는 6차 배아 이식 실패 후 3차 신선 채취를 앞두고 팀장님과 면담을 신청하여 휴직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날짜는 7월 초가 될 거라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휴직은 맘처럼 되지 않았다.
아래는 그 간의 이력이지만, TMI가 될 수 있으니 건너뛰어도 무관하다. 결론은, 시험관 시술이라는 게 내가 (그리고 담당 선생님이) 계획한 대로 되지 않고, 몸 컨디션이 충분히 준비되어야만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휴직 지연 이력]
- 19.5월 말: 휴직 계획 파트장/팀장님께 전달. 업무 인수인계 준비.
- 19.6월 초: 남편과 상의 하에 배아 이식부터 휴직하는 것으로 합의
(※ 휴직에 들어가면 (무급)이므로, 회사에서 병원비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 그래서 최대한 시술까지 모두 진행한 후에 휴직 날짜가 시작되도록 일정을 잘 맞춰야 한다.)
- 19.6월 초 : 채취는 완료했으나, 당일 선생님이 황체호르몬 지수가 높아서(?) 이식은 다음 달로 미루자고 함
- 19.7월 중순 : 생리가 시작되어 병원을 방문했으나 난소에 물혹이 생겨 한 달 또 미뤄짐
- 19.8월 중순 : 이번 달에는 이식을 시작하기로 하고 호르몬 약을 처방받아 매일 3회씩 챙겨 먹었으나 자궁 내막이 두꺼워지지 않아 취소
- 19.9월 중순 : 이번 달에는 진짜 이식을 시작하기로 하고 배주사까지 처방받아 매일 자가 주사를 놓았으나 아직도 자궁 내막이 두꺼워지지 않아 계획했던 이식일 5일 전에 취소
- 19.10월 : 이왕 늦어졌고, 연말 평가 시즌이 얼마 안남았으니 냉동 이식은 휴직 없이 하는 걸로 결정 (이미 평가 대상으로 올랐기에, 자리를 비울 경우 성과 면담 없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염려되었기에)
- 19.10월 : 냉동 이식 진행. 비임신.
이 과정에서 내가 실수한 것이 있다. 매 달 시험관 시술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계속 변경되는 휴직 시작 일정을 업무 사수(파트장님)에게 수시로 보고한 것이다. 나로서는 순탄한 업무 인수인계 과정을 염두에 두고 (실제로 7월 당시 추가된 멤버가 있어 팀원 간 업무 R&R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파트장님께 상황 업데이트를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4개월 가까이 미뤄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었다.
10월이 되었을 때 나는 파트장님과 팀장님과 합의를 했다. 휴직이 최종 확정이 되어 시스템 상으로 신청하는 시점에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대신 1주일 전에 급히 신청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고, 그런 경우에 대비해서 업무를 언제든 넘길 수 있게 매뉴얼 화 / 자료화해두겠다고.
그 후 어느새 2020년 2월이 되었고, 나는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다. 12월 말에는 감기에 걸려 한 달을 쉬기로 했고, 얼마 전에는 정말이지 진지하게 휴직할 (=시험관 새로운 차수를 시작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이번 달도 건너뛰자고 제안했다.
이 글은 회사의 빈 회의실에서 점심시간에 쓰고 있다. 다음 달에는 진짜 다시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자연 임신을 바라는 것도 시험관 이식 후 임신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되기만을 바라고 있다. 점점 작아지고 있는 소망에 조금은 짜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