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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Feb 12. 2020

시험관 시술을 직장 생활과 병행할 수 있을까

회사 다니며 시험관 시술 진행하는 데 고려해야 할 5가지

개인적인 경험만을 바탕으로 아래의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2018년 1월 - 2020년 2월 현재. 시험관 난자 채취 기준으로는 3차수까지 진행하였고, 신선/냉동 이식을 기준으로는 7차수까지 시술을 진행하였습니다. 2019년 11월부터는 잠시 병원을 쉬고 있고, 다음 달에는 시험관 4차 채취와 함께 난임 휴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시험관 시술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는 걸 권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많이 써야 하고, 마음이 지친다는 건 말로 할 것도 없고 일단 몸부터 무척 상하는 과정이거든요.

그럼에도 저는  2 동안 직장 생활과 시험관 시술을 병행했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다섯 가지 이유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시험관 시술, 직장 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가?


여기서 가장 뻔한 답을 하나 꺼내볼까요. 명확하게 예 아니오로 말씀드렸으면 좋겠지만, 정말로

케바케 -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1. 하지만 그 케이스들을 구분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 '근무 환경' 일 것입니다.

제가 2년 동안 무난하게 직장 생활과 시험관 시술을 병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1. 유연 근무제와 2. 자유로운 연차 사용이 가능한 사무직이었기 때문입니다. 병원에 가는 날에는 단축 근무를 사용하거나 근무 중 외출(최대 2시간까지)을 사용했고, 가지 않는 날에 그만큼 더 초과 근무를 했습니다. 또한, 필요시 당일 연차 신청이 가능한 분위기였기에 몸 컨디션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제 친구의 경우 국내 은행을 다니고 있는데요. 지점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에는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환경이라고 합니다. 그 친구의 경우 시험관 시술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휴직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2. 직장과 병원 간의 거리

제가 다녔던 병원은 회사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2 정거장, 택시를 타면 10분 이내 거리였습니다. 11시 50분에 병원 예약이 잡혀 있다면, 사무실 제 자리에서 11시 30분에 일어나면 되었습니다. 또한 집과 병원도 버스로 2 정거장, 차를 타고 5분 거리였기에 위치적으로 다니기가 매우 편했습니다. 만약 직장 생활을 하며 병원을 다니게 된다면, 아무래도 집과 병원 간의 거리보다는 직장과 병원 간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 더욱 중요하겠죠.


물론, 병원마다 유명한 선생님이 계시기에 선생님에 맞춰서 조금은 먼 병원을 선택할 수도 있겠습니다. 직장과 시술을 병행하기 위한 난임 병원을 선택하는 데 있어 저의 조언은, '회사와 가까운 난임 병원 중에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이름 있고 시험관 시술을 많이 하는 좋은 난임 병원 중에서 회사와 가장 가까운 난임 병원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3. 병원의 예약 시스템 - 시간 예약제 or 선착순 예약제

아, 그리고 난임 병원마다 예약 시스템도 조금씩 다릅니다. 제가 다녔던 곳은 매 번 진료 때마다 시간을 예약했고, 그 시간에 맞춰 가면 빠르면 10분, 늦어지면 최대 2시간까지 기다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시간을 기다린 건 2년 동안 딱 한 번이었고, 평균적으로는 30분 정도 대기했습니다. 난임 시술은 진료 자체가 길지는 않기에, 회사 - 병원 간 이동 시간 + 대기 시간 + 진료 시간 + 기타 수납 시간 합해서 1~2시간 안으로 처리가 가능했던 것 같아요. 물론, 시험관 채취를 시작하는 날에는 주사약도 받아야 할 게 많고 상담실도 들러야 해서 여유 있게 반차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의 경험담을 들으면 (송파 M, 서울역 C, 등) 별도의 시간 예약 없이 매일 선착순으로 진료를 보는 곳들이 많습니다. 아침에 병원 오픈 시간에 도착하여 순번표를 받으면 순서대로 진료를 본다고 합니다. 이 경우 병원마다, 그리고 담당 선생님마다 대기 시간이 천차만별이고요. 어떤 친구는 보통 1-2시간 대기하고, 또 어떤 분은 아침 9시에 도착해서 오후 2시에 진료를 보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고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4. 난임의 원인 - 냉동 배아가 많아야 직장 병행이 그나마 수월하다

시험관 시술은 채취의 과정이 이식의 과정보다 훨씬 힘듭니다. 채취를 하기 위해서 그 많은 배주사들을 매일 놓고 호르몬을 조절하며 과배란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몸이 많이 지치게 됩니다. 배란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도 많이 방문해야 하고요. 그에 비해 채취 없이 냉동 이식만 하는 달은 그나마 조금 더 수월한 편입니다. 저는 채취 한 번 하면 냉동이 3-6개 정도 나왔고, 한 번에 2개씩 이식하니까 - 신선 1번 하면 냉동은 2-3번 정도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시험관 시술을 2년에 걸쳐했지만, 그중 난자 채취 과정은 세 번만 겪은 거죠)


냉동 배아가 얼마나 나올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보통은 amh 수치가 낮고 난소 나이가 많을 때 (난저) 냉동이 적게 나오는 편입니다. (냉동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경우도 흔합니다). 이 경우 매 번 채취를 해야 하니 직장 생활과 병행하는 것이 저의 경우보다 훨씬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5. 개인의 업무 욕심 - 우선순위 조정은 필수

이건 저한테 굉장히 중요하고, 그러면서도 내내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지금 내 삶의 우선순위에 있어 임신, 내 몸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업무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는 일이요. 사실 시험관 시술을 위한 차수가 시작하면 단순히 병원을 자주 가야 할 뿐만 아니라,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호르몬과도 씨름을 해야 하는데요. 제가 갱년기를 겪어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그런 느낌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추웠다가 더웠다가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끈거렸다가, 이내 우울해지는 등 몸의 이상 현상을 견뎌내야 합니다. 유관 부서와의 회의, 혹은 업무 중에 스트레스받는 다양한 상황에서 냉정을 찾고 이성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일이 저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하루 종일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직업을 갖고 계시다면 좋겠지만 정말 그런 경우가 있나요?)


그래서 회사를 다니면서 시험관 시술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를 명확히 정했습니다. 회사 생활 길게 보자,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나의 몸이고 임신이고 건강이다, 라고요. 다만 이렇게 정한 후에도 회사 업무에 차질을 빚지 않고 적당히 욕심을 내려놓는 일은,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회사 내 평판이 있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민폐를 끼치지는 말아야 하니까요. 예를 들어, 병원에서는 이식 다음 날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안내해주는데요. 그럼에도 주변에 시험관 시술로 임신 성공한 사례들을 전해 듣다 보면, 이식 후에는 최소 사흘 정도 침대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었다는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이때 저는 시술 후 제가 회의 일정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이식 다음 날로 잡을지,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아예 그다음 주로 잡을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도 퀄리티에 대해 최소와 최선, 최고 사이에서 스스로 타협이 필요했고요.





저는 이렇게 2년 동안 직장 생활과 시험관 시술을 병행했고, 이제 곧 난임 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위의 다섯 가지 요소 중에서 휴직을 결정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건, 저한테는 5번이었습니다. 들쭉날쭉한 근태와 잦은 연차 사용으로 인해 연말마다 평가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일, 이제 그만하고 싶거든요. 저에게는 최선이었던 노력과 그에 따른 업무 결과가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는 수준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일하기는 싫어요. 그래서 2020년은 휴직을 신청하고 집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며 시술과 건강에만 집중할 예정입니다.





(+곧, 난임 휴직에 관한 저의 생각 - 왜 제가 2년 동안이나 휴직을 신청하지 않고 직장 생활과 시술 병행을 고집했는지에 대한 글도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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