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나에게 있었던 일
같은 팀원이자 입사 동기가 아기집을 확인한 날이었고, 팀장에게 임신을 알린 날이었고, 바로 재택근무 조치가 된 날이었다. 업무 시간 중에 노트북을 들고 퇴근하는 그녀를 정문까지 바래다주고, 웃는 얼굴로 축하를 해준 후 나는 자리로 돌아와서 두어 시간을 더 일했다. 그날 저녁, 다시 생리가 시작되었다.
그날은 모처럼 바빴다. 전무님이 과제를 내렸는데, 마침 내가 담당하는 업무였기 때문이다. 나는 무척 반갑고 기쁘게 일을 처리했다. 쉴 틈 없이 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했다. 작년 말부터 나는 업무량이 무척 적었다. 작년 연말 면담 때 나는 1월에 8차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는 동시에 휴직을 하겠다고 팀장에게 미리 통보를 해두었지만, 코로나가 시작되며 계획이 계속 미뤄졌다. 나는 늘 ‘한 달 뒤에는 휴직할지도 모른다’는 부담에 업무 욕심을 내지도 못하고 있었고, 팀장도 그 비슷한 심정으로 나에게 중요한 일을 맡길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죄책감을 느끼며 한가했다가, 오랜만에 시간에 쫓기며 자료를 정리하는 데,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즐거웠다. 가끔 퇴사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 일을 좋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화장실에서 피를 확인했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이번에도 임신이 아니구나, 하는 실망과 동시에, 이젠 정말 다시 시작이다 싶었다. 이번에 생리가 시작되면 다시 병원을 다니자고 남편과 미리 얘기를 했었다. 드디어. 작년 10월에 7차 이식을 하고 벌써 반년이 지났다. 내일은 병원에 연락을 해서 진료 예약을 해야지. 이상할 만큼 마음이 들떴다.
다음 날 아침도 출근하자마자 바빴다. 전날 만든 자료를 보완했다. 9시 반까지 정신없이 업무에 몰두하다가, 참, 병원에 예약해야 한다는 걸 떠올렸다. 빈 회의실에 들어가서 혹시나 누가 들을까 조용하게 ‘진료 예약하려고요. 이번에 시험관 시작하고 싶은데, 지금 생리 2일 차예요’라고 말했다. 접수처 직원은 원장님이 내일부터 3일간 휴가라 진료를 받으려면 오늘밖에 없다고 했다. 하필 오전 진료라, 11시까지는 병원에 도착해야 했다.
우리 회사는 업무 중 최대 두 시간까지 자리를 비울 수 있다. 다행히 중간에 점심시간이 끼어 있으니 세 시간 만에 돌아오면 된다. 지하철을 타고 가려면 10시에 출발해야 했지만, 일을 잘 마무리하고 싶어 욕심을 냈다. 결국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10시 반에 사무실에서 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비는 18,500원이 나왔다. 5개월 만에 도착한 병원에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만 다를 뿐, 코로나가 터지기 전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붐볐다. 진료실 앞에는 내 앞에 대기 인원이 12명이었다.
한 시간을 기다려서 진료를 받았다. 진료실 안에 연결된 검사실에 들어가 검사용 치마로 갈아입고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원장님은 난소에 작은 혹이 있으니까 오후에 수술실에서 제거하자고 했다. 의자에서 내려오려는데 원장님이 ‘간호사가 도와줄 거예요’라고 말하고 자리를 비웠다. 무슨 말인가 하며 일어났는데, 생리혈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기저귀 천을 덧대고 어정쩡한 걸음으로 탈의실에 돌아갔다. 난임 병원에 오래 다니면 부끄러움이라는 게 없어진다. 덤덤하게 입고 온 옷으로 다시 갈아입었다.
바로 이번 달 시험관을 시작하기로 하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검사실에 가서 피검사를 받고, 주사실로 가서 새로 시도해보는 배 주사의 투여 방법을 배웠다. 수술 시간까지는 30분이 남았다. 병원을 나와서 식당가를 기웃거렸다. 점심에 밀가루나 탄소화물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지만, 진한 국물이 땡겼다. 베트남식당에 들어가 차돌쌀국수를 시켰다.
한 시 반에 병원 수술실에 들어갔다. 난소 안쪽으로 작은 바늘을 찔러 넣어 혹을 흡입하는 수술이었다. 십 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은 짧은 시술이었지만, 다섯 번 정도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어쨌든 혹은 제거되었고, 나는 다시 택시를 타고 회사에 돌아왔다.
전날부터 내가 공을 들여 만든 자료는 그새 다른 팀원에게 넘겨져 대폭 수정 작업 중이었다. 내 업무인데,라고 클레임을 걸기에 나는 너무 지쳐 있었고, 하루에 자리를 비울 수 있는 두 시간을 이미 초과했기에 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방에 있는 주사도 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냉장고에 넣어둬야 했다. 아, 그래도 모처럼 얻은 내 업무인데. 속이 쓰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집에 가야 했다.
오후 세 시도 되지 않았는데 회사 건물에서 나왔다. 어제 친구가 임산부라는 이유로 강제 귀가 조치되었던 시간이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그래, 뭐 어때. 드디어 기다려 왔던 시험관 8차 시술을 진행할 수 있다. 이젠 휴직하고 집에서 편히 쉬자. 임신하고 아기 낳고 육아 휴직하고 돌아오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혼잣말로 마음을 달래며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냉장고에 주사를 넣었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팔목에 병원 팔찌가 차 있는 걸 발견했다. 아까 수술실에서 신원 확인 용도로 팔에 채워준 분홍색 팔찌를 끼고 나 회사도 다녀왔구나. 나는 소파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