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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Aug 18. 2020

그렇게 해서까지 엄마가 되고 싶냐고?

시험관 고차수 진행 근황

언제부턴가 숫자를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번 달에 냉동란을 이식하게 된다면 나는 시험관 몇 차수일까. 채취를 기준으로는 네 번 했을 것 같고, 이식을 기준으로는 아홉 번째- 열 번째, 설마 열한 번째이진 않겠지. 이식을 할 수 있을 줄 알고 매일 세 번씩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격일로 주사를 맞았지만 자궁 내막이 충분히 두꺼워지지 않는 등 착상 조건이 되지 않아 시술일 직전에 취소한 경우가 많았다. 결국 나조차 헷갈려 숫자를 세는 것을 포기했다. 분명한 건, 정부에서 난임 진료비를 지원해주는 횟수를 이제는 초과하였기에 이식 한 번 하는데 백오십만 원 가까운 금액이 영수증에 찍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혼식을 치르고 남편과 마음만 먹으면 바로 자연임신이 될 줄 알았던 서른 살의 나는 언젠가부터 배란테스터기를 샀고, 난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과배란 약을 먹었고, 인공 수정은 건너뛰고 바로 시험관 시술에 들어갔다. 난임을 직접 겪지 못한 친구들은 나를 위한 진심 가득한 마음으로 '너무 걱정하지마'에 이어서 '+배란일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 병원 다니면 바로 생길 거야', '시험관 시술하면 바로 생길 거야', '휴직만 하면 바로 생길 거야'라고 위로를 건네었지만 모두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로 밝혀졌다. 지난주 나는 3개월 무급휴직 기간을 마치고 3개월을 다시 연장하였으며, 아마도 열 번째일 수정란 이식 시술을 곧 앞두고 있다.


얼마 전 친구로부터 전해 들었는데, 미국에서도 정부에서 시험관 시술 비용을 지원에 차수 제한을 두고 있는데, 그 이유가 시험관 시술을 많이 진행할수록 여자의 몸이 망가지기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 여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체력도 시험관 시술을 시작하기 전인 2017년 대비 지금 많이 취약해져 있는 걸 느낀다.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꼭 필요한 걸까?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 없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결혼을 했으나 아이를 낳는 대신 반려 동물을 키우며 아내와 남편이 모두 커리어와 취미 생활의 밸런스 잡힌 일상을 누리는 커플.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며 추석이든 설날이든 연휴 때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결혼을 하지 않고 마음 맞는 동거인과 서로의 삶을 격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나와 남편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평생을 서로에게 더 집중하면서, 각자의 커리어에 더 집중하고 매년 해외여행 한 두 번씩 자유롭게 떠나면서, 어쩌면 우리도 반려 동물과 함께 공생하면서, 그렇게.



그럼에도 아직은 우리가 조금 더 노력해보고 싶은 이유.



어쩌면, 나도 남편도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두려워서 때문은 아닐까. 나도 남편도, 일하는 아빠와 전업 주부 엄마와, 동생 한 명과 4인 가족으로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해왔다. 매우 어릴 적에는 동생이 유일한 친구였고, 여덟 살이 되었을 때부터는 학교를 다녔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항상 엄마가 있었고, 밤늦게 아빠가 집에 들어오는 일상을 살아왔다. 남편과 나는 평생을 엄마와 아빠와 동생과 함께 한 가정에서 살아왔으며, 또 평생을 언젠가 스스로 엄마와 아빠가 될 것을 예상하며 살아왔다. 아이가 없는 부부로 늙어 가는 삶은, 머리로는 충분히 괜찮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아직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또 나로선, 더 큰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건 나의 목숨보다도 더 많이 사랑하는 건 아니다. (한 때는 나도 남녀 간의 불 같은 사랑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지금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아쉬운 감도 있지만,) 남편과 나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잔잔한 사랑을 주고받고 있다. 우리는 연인이지만 그보다는 함께 노는 게 가장 즐거운 친구이고, 맛있는 거 먹을 때 가장 먼저 서로를 떠올리는 가족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 말 그대로 '눈 안에 넣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는다는 아이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궁금하다. 나와 남편을 조금씩 닮은, 내 온몸을 바쳐서 사랑하고 기르고, 또 언젠가는 독립을 지원해줘야겠지만 그럼에도 죽을 때까지 응원하게 될 아이를 위해서 기꺼이 내 체력과 내 모든 시간들을 바치고 싶다.


아이를 갖고 싶은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하다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부부가 부모를 꿈꾸는 이유에는 '우리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임신 시도를 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아이를 기어코 세상에 내놓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크게 고민한 적이 없다.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살 만할' 세상일까? 나와 남편이 '최선을 다해' 아이를 기르기만 하면, 아이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2020년의 대한민국을 사는 내가 보는 일상적인 혐오와 범죄와 차별, 기후 문제 환경 문제, 코로나까지 - 무엇보다 내가 살면서 운이 좋아 겨우 피해왔지만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 건강 문제들에 있어 우리 아이도 운이 좋아 모두 피해 갈 거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

솔직히 모르겠다. 우리 부부가 아이를 기다리는 건, 오로지 우리 둘만 생각한 이기적인 마음에 인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시도해볼 생각이다. 아니, 우리가 지금 시도하지 않을 수 없는 건,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조금이라도 나이가 어릴 때, 조금이라도 체력이 될 때 충분히 할 만큼 하지 않으면, 나중에 가서는 정말 시험관 시술조차 시도해볼 수 없는 몸 상태가 될까 봐 두려워서이다. 이 정도 마음이, 부모가 되기 위한 충분한 각오인지는 잘 모르겠다.



진짜 근황



사실 나는 꽤 괜찮게 지내고 있다. 돌아갈 회사가 있는 상태에서,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없이 마음 편히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서른다섯 살이 어디 흔할까. 육아휴직으로 일 년 이 년 회사를 떠났던 친구들도 모두 휴직 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느라 육체적으로 무척 피곤했다고 하는데 나는 누구 하나 돌 볼 필요 없이 나 혼자를 부지런히 아끼고 보살피고 있다. 대학교 전공이었지만 회사 다니는 십 년 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던 중국어를 다시 공부하고, 평소에 좋아하는 책을 원 없이 읽고, 내키는 시간에 글도 마음껏 쓸 수 있는 일상이다. 병원을 다니다가 몸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원 없이 잠을 잔다. 잠에서 깨었는데 마음이 여전히 아프다면 몇 시간이고 넷플릭스를 정주행 한다.


어쩌면 내 인생에 한 동안은 다시없을 만큼 충분히 쉬어가는 시간이다. 오늘은 그저 이 사실에만 감사하기로 한다.





(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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