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한 시험관은 생각하지 않는 나날들
5월 중순 무급 휴직을 신청한 후부터 저의 모든 날들은 시험관 시술과 임신을 위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시술을 시작한 지 삼년 만에, 가장 시험관을 생각하지 않은 나날들이기도 했습니다.
2018년 1월 첫 시술부터 저는 2년 동안 직장생활과 시험관을 병행해 왔는데요. 왜 조금이라도 더 일찍 휴직하지 않았을까 후회될 만큼, 휴직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험관 시술은 그 과정 자체도 몹시 피곤하고 지치지만, 저의 경우 회사를 다니면서 병행을 하는데도 계속 피검사 수치가 0이 나오고 실패를 반복하는 과정이 더욱 스트레스였던 것 같아요. 보통 점심 전에 피검사를 하러 가면 오후 네시 반쯤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와서 결과를 알려주는데요. 저는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사무실 제 자리에서 일어나 초조한 마음으로 빈 회의실에 들어가 결과를 전해들었고,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숨죽여 한참을 울고 나서, 다시 자리로 돌아가 업무에 복귀해야 했거든요. 평상시에는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다가도, 2년 동안 동료들의 육아 이야기, 임신 소식을 듣다 보면 그 자리에선 티도 내지 못하고 속만 시꺼멓게 타들어갔구요.
그렇지만 휴직을 하고 나서는 집에서 인간 관계는 최소화 하며 하고 싶은 일들만 하고 있습니다. 병원은 계속 다니고 있지만, 병원에 없을 때는 시험관, 임신, 난임, 병원, 이런 모든 것들은 최대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다행히 저는 집에서도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아 매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고 있습니다. 중국어도 스페인어도 영어도 공부하고 책도 원없이 읽고 글도 쓰고요. 닌텐도 스위치로 남편과 동물의 숲도 함께 즐기고 넷플릭스도 지상파 케이블 드라마 예능도 부지런히 챙겨 보면서요.
매일 약을 챙겨먹고, 시술 기간 마다 배나 엉덩이에 자가 주사를 놓고, 몸을 조심한다고 왠만하면 외출도 하지 않고, 사람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하고(가고 싶은 북토크도 독서 모임도 모두 단념하고), 몸을 만든다고 틈틈이 집에서 홈트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제가 시험관 시술 중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겠죠. 특히 이식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마취 없이 5분이면 끝나는 과정을 저는 신체적 특이 사항 때문에 진통제 국소마취를 다 하고도 40분 째 수술실에서 소리도 지르고 눈물도 흘리고 신음도 삼키다가 나와야 하기에, 매번 시술일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동시에 두려워서 떨어야 하는 이상한 심리 상태가 오래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는 최대한 머리를 비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이 브런치 계정도, 보통은 로그아웃 한 상태로 들어와보고 있지 않고 있고요. 어쩌다가 어제 오랜만에 근황을 남기기는 했지만, 사실 저는 처음 난임일기를 올렸을 때처럼, 이번 글이 저의 마지막 '난임 일기'이기를, 다음 글부터는 '임신 일기'를 쓸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으니까요. 아니, 사실 난임 일기에 대해서도 한 번쯤 기록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임신이 되고 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회고록 처럼 쓰고 싶었어요. 삼년 째 '현재 진행상태'로써 난임 일기를 쓰고 있을줄은, 누가 알았겠어요.
사실 지난주에 오랜만에 이 브런치 계정에 로그인을 했는데, 제가 잠수를 탄 사이 마흔 명이 넘는 분들이 새로 구독을 해주셨더라구요. 정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셨구요. (답글은 천천히 달겠습니다.) 그래서 연휴 내내 빚진 마음으로 있다가 오랜만에 글을 올렸건 거에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그 글이 브런치 메인에 소개되었더라고요. 매우 기뻤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백하자면 그 동안에도 저는 매주 한 편씩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있었습니다. 시험관이나 난임 같은건 완전히 잊고 지낼 수 있게, 온전히 제가 저로서, 쓰고 싶은 글들을 올리는 두 번째 계정이 있거든요. 그 계정에는 제가 평상시 가장 좋아하는 독서 -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회사 생활 - 그리고 지금은 휴직 생활에 대해 조금 더 신이 나게 글을 쓰고 올리고 있어요. 반면 이 모레바람 계정은 오로지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에 관한 글들만 올리고 있구요.
지극히 하나의 목적을 위해 글을 올리고 있는 이 계정에서 다른 계정을 소개해도 될지, 조금은 걱정되기도 하지만 - 아기를 기다리는 저도 그러나 시술은 최대한 잊고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는 저도 모두 같은 사람이니까, 혹시나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계정도 놀러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 두 번째 브런치 계정)
https://brunch.co.kr/@sunyoungprk/69
가능하면 좋은 소식으로, 혹시나 기다리는 소식이 아니라면 그럼에도 저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으로 또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