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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레바람 Mar 30. 2023

내 생에 가장 잘한 일, 열세 번의 시험관

김의경 작가의 [헬로 베이비]를 읽고

내 생에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 한치의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열세 번의 시험관 이식을 한 것이라고.


채취와 자궁경을 포함하면 시술 회수는 이보다 더 많아지지만 시험관 차수를 계산하는 기준은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기에 나는 이식을 기준으로 센다. 이런 숫자를 부끄러워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다. 숨기기엔 너무 오랜 시간 겪었고,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기에. 열세 번의 이식 끝에 처음으로 착상된 아기가 어느덧 16개월이 되어 옆에 누워 새근새근 자고 있다. 이렇게 예쁜 아기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나는 열세 번이 아니라 서른 번도 했을 것이다.


지나보니 다 괜찮았던 것 같지만, 사실 내 기억은 많이 미화되어 있다. 나는 오래동안 끝이 안 보이는 컴컴한 터널 속에서 자주 공포를 느꼈다. 겨우 버티며 지나온 그 시간 동안 겪었던 오만가지 감정이 이 소설 안에 있었다. 책 속의 문정이, 지은이, 혜경이, 은하가, 정효는 모두 다 나였다. 대기실에서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며 생각했던 것들, 시험관을 진행하는 친구들과 투덜댔던 불만 사항들, 시술대 위에 누워 마취를 기다리던 나의 지난 순간들이 모두 소설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난임이란 참 독특한 경험이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준비하기 전까지 여자는 자신이 난임일 것이라는 걸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다. 그 동안 살아오는 데 단 한 번도 고통이나 불편을 동반한 적이 없다가 불쑥, 등장한다. 나도 그랬다. 누구에겐 엄마가 있지만 누구나 엄마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서른이 넘어서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야 처음 깨달았다.


아기를 가지지 않을거면 사는데 전혀 지장을 주지 않지만 아기를 원하게 된 순간부터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사람이 되게하는 ‘것’. 질병도 증상도 아니기에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한 달에도 몇 번씩 병원에 방문하며 약, 주사, 시술로 몸보다 마음을 더 병들게 하는 것이 나에게는 난임이었다.


진심으로 이 소설이 매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특히 난임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읽어주면 더욱 고마울 것이다. 그 동안 나 꽤 힘이 들었다고 말하고 싶을 때마다, tmi가 될까봐 꾹 눌러왔던 나의 못 다한 고백들이 이 소설을 통해 충분히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치만 나의 이런 사심을 다 떠나서 그냥 난임이든 임신이든 전혀 관계 없는 아무 생각 없이 읽기에도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다. 물론 난임을 경험한 사람들도 읽었으면 좋겠다. 공감만큼 힘이 센 위로는 없으니까.



둘째를 준비하고 두 번째 이식부터 모아둔 주사들



나는 운이 좋은 쪽이었다. 결국 아기를 만났으니. 매일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하다. 아기가 하루하루 크는 게 너무 아까울만큼 행복하다. 나는 지나온 길을 한 번 더 가보기로 했다. 이 소설은 나에게 과거였고 또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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