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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채홍 Sep 14. 2022

주5일 북디자이너, 주2일 목수로 살아보니

사무실과 집안에 필요한 가구 직접 만들기


작년 연말에 만든 사무실 책상이다. 위판은 폭 230mm 레드오크 3장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여러 번 사포질해 다듬고, 여러 번 오일을 발랐다. 레드오크를 처음 써보았는데 오일을 세 번쯤 발랐더니 아주 마음에 드는 색깔이 나왔다. 업무상 주로 작업하는 컴퓨터 책상에서 벗어나 자료를 뒤적이거나 아이디어 스케치를 할 때 이 책상을 주로 쓴다. 손님이 왔을 때도 이 책상에서 맞는다. 한동안 책상에 앉을 때마다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에 감탄하며 꼭 몇 번 쓰다듬고 나서야 할 일을 시작했다. 전에 쓰던 책상은 저렴하게 산 기성품이었다. 나뭇결과 색상이 좋지 않아서 늘 아쉬웠는데 책상을 바꾸고 나니 기분이 참 좋다. 책상 위에 뭘 올려놓고 찍어도 사진이 멋지게 잘 나온다!


책상 만드느라 어깨가 고장 나 한동안 병원에 다녔다. 흔히 말하는 오십견. 오른쪽 어깨 회전근에 염증이 생겼다. 근육 파열이 아니라 천만다행이다. 그런데, 설마, 고작, 책상 하나를 만들고 어깨에 병이 났을까. 실은 막내가 중학생이 되니 따로 방을 만들면서 막내 책상을 만드는 일이 시작이었다. 일을 하다 보니 부엌 식탁이 오래되어 바니쉬가 벗겨진 게 눈에 들어왔다. 이참에 함께 하자 싶어서 사포질해 기존 칠을 벗겨내고 바니쉬를 새로 칠했다. 어라, 딸아이가 쓰는 전자키보드 올려놓는 책상이 크기가 안 맞아 키보드가 덜그럭거렸지. 이것도 고쳐 만들어야겠네. 맞다, 사무실에 쓸 책상 하고, 책장도 더 필요한데···. 그렇게 주말마다 한동안 쉬었던 생활 목공인의 삶을 산 것이다. 일을 하다 보니 양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까지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마당에 불을 밝히고 야간작업까지 감행했다. 그러니 병이 나지 않고 배기겠는가. 늘 앉아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딸깍거리던 사무직 노동자가, 운동이라고는 스트레칭과 걷기 정도만 하던 사람이 안쓰던 근육을 무리하게 써댔으니······.  


어깨가 좀 나아지고 얼마 전에 책꽂이를 만들어 넣고 나서야 비로소 막내 방이 제모습을 갖추었다. 책상을 직접 만드느라 고생했기 때문에 책꽂이는 그냥 적당한 것으로 사려고 했더니 책꽂이 둘 자리에 방 조명 스위치가 있지 뭔가. 가구 배치는 이대로가 최선이었으므로 결국 공간에 맞춰 뒤판 없이 뚫린 책꽂이를 만들었다. 자작나무 합판 24밀리를 썼고, 칠하는 고생 좀 덜어보려고 수성 바니쉬로 재빠르게 칠했다. 방에 들어와 불을 켜려면 책꽂이 4단 우측 상단에 손을 넣어 스위치를 눌러야 한다.



막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들을 책꽂이에 장식하듯 꽂아 넣었고, 책상 앞 타공판에는 직접 만든 총, 칼 따위를 걸었다. 킹스맨, 존 윅 같은 영화에 나오는 무기 진열대를 흉내 내었다. 맨 왼쪽에 서랍 달린 옷장은 우리 부부가 혼수로 장만했던 오래된 가구다. 한옥에 살면서 이불장·옷장 세트를 나란히 붙여 둘 공간이 없어 한 개가 따로 떨어져 갈 곳 몰랐는데 이제야 자기 자리를 찾았다.


이렇게 방문을 열고 침대에 기대 있으니 아늑하다. 부모님이 처음 마련해준 내 방이 생각난다. 앉아서 천정에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한 다락방이었다. 누나 방에 딸린 좁은 계단 몇 개를 올라가야 했다. 엎드려 괴도 뤼팽 시리즈를 읽고 있노라면 아래서 누나가 친구와 함께 공부하다 말고 은밀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키득대기도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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