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마당 피크닉
여름은 확실히 지나갔구나, 싶은 날들의 연속이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이닥치는 찬바람에 기분이 한껏 고무되어 곧장 부엌으로 가 오전 내내 김밥을 쌌다.
오전 내내라고 해봤자 한 시간 남짓이지만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있는 오전 시간 중 한 시간은 내겐 어마어마한 자유시간의 가치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엄마 오늘 점심으로 뭐 만들었게?”하고 물었다.
내 스스로의 오전이 뿌듯해서 조금은 알아봐 줬으면 하는 이기심에 스리슬쩍 물어본 건데 기가 막히게도 김밥이란 대답이 나온다. 내가 그동안 그렇게나 자주 쌌던가.
“우리 오늘 김밥 싸들고 소풍가자.”
피크닉이라는 말이 더욱 익숙한 아이들이 소풍의 의미를 이해하자마자 잔뜩 신이 났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다.
소풍이라고 나섰지만 그래봤자 우리 집 작은 텃밭 옆 마당. 근데 이만한 곳이 또 없다.
해가 지면 지는 대로, 다시 뜨면 뜨는 대로 애들은 그저 신이 났다.
이제는 제법 피크닉을 즐길 줄 아는 나이가 된 첫째 루이는 한 접시 후다닥 비워내자마자 자신의 곰인형을 배게 삼아 벌러덩 드러누웠다.
“엄마, 햇빛 느낌이 참 좋아”
입가에 함박웃음이 고대로 묻어난 채로 루이가 말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행복한 가을 날이다.
요즘 한국에 ‘소확행’이라는 말이 트렌드의 하나로 불리고, 실천되는 것 같던데. 그럼 지금 이 오후도 내겐 소확행이겠구나 싶으면서도 크고 확실한 행복이니 대확행에 가까우려나 하는 혼자만의 머릿속 고민을 이어가던 순간.
문득, 스위스 생활에는 소확행, 대확행을 넘어 비현실적인 것 같은 일상의 행복들이 꽤나 자주 찾아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작은 텃밭 가꾸기, 농장에서 직구하기, 뒷산에서 썰매 타고 스키 타기, 우리 동네 호수에서 수영하기 등과 같은 이곳에서는 일상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수 있는 일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스위스에서의 첫해는 그저 놀랍고 또 놀랐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지?’하는 물음의 끝없는 되새김으로 차고 넘치던 해였다. 서울,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 살다가 스위스, 그것도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니.
누구나 스위스 생활을 상상하듯 풍경은 미치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내가 굉장히 동떨어지고 비현실적이게 분리되는 기분이었다.
산책길에는 눈길과 마음마저 사로잡는 쇼윈도 대신 온통 초록색만 가득했다. 아, 나름 BGM도 자동 재생되는 산책길이었지만. 음매, 매에- 같은 소리들도 한두번이어야지. 처음에는 우와했던 것들이 어쩌면 영원이 된다는 사실이 그 당시에는 어찌나 우울하던지.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내 걱정을 일삼던 남편, 친구들이 놀랄 정도로 이 곳 생활이 좋고, 더더욱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나도 이런 내가 적응되지 않아 왜일까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커갈수록 함께하고 누릴 수 있는 활동들이 늘어남과 친구들이 생긴 이유도 물론이지만 사실 그저 스위스 생활을 마주하는 내 마음이 솔직해졌더라. 모난 시선 대신 둥근 시선으로 바뀌었고, 내가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된 도시 삶에 대한 미련 대신 내가 새롭게 누릴 수 있는 것들에 호기심을 가진 덕분이다. 아,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그 쉽고도 어려운 진리.
온전히 누려보려고 마음먹으니 늘 보던 것도 더 예쁘고 새롭게 보이고, 아이들의 성장에 맞춰 주말활동을 하다 보니 이곳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천국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하물며 나 또한 이 같은 어린 시절 환경을 가지지 못해봤으니, 함께 성장해나가는 기분이랄까.
여하튼 급 찾아오는 감사의 순간이 이 날 오후에 또 한 번 찾아온 것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 자체에 무척이나 행복해하고 고마워할 줄 알게 된 나 자신이 유독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던 기분이 더해졌을 뿐.
아이들에게는 여느 날보다 아주 조금 더 따스한 햇살이 가득했던 오후로 기억될지도 모를 오후.
나의 비현실적이게 행복했던 어느 가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