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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hyun May 01. 2019

바다 건너 내려와 시내에서 만나 친구

어제 오후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전화보다는 메신저로 연락하는 사이라 아무래도 이상해서 어디냐고 물으니 제주란다.


근로자의 날 전날 휴가를 내고 무심히 제주로 내려왔단다. 신제주 중심가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또 신제주 중심가에서 차를 마셨다.


24시간쯤 제주에 머물다 간다는 친구. 공항 근처에 숙소를 얻었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30분쯤 걸어갔단다. 나도 버스를 타고 공항을 오가는 편이지만 제주공항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처음 봤다.


걸어오는 길에 택 몇 대가 빵빵거리며 자기를 태우려고 했는데, 행색(?) 때문인지-외국에서 오래 산 친구다-아무도 한국말로 말을 안 걸더란다.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밴 친구는 자기가 한국말로 답하면 이상할까 봐 양손으로 X 모양을 만들어 타지 않겠다는 의지를 몸으로 보여 주었단다.


나와 친한 이 친구는 내가 제주에서의 생활과 나름의 스케줄이 있다는 걸 고려해 주었다. 미리 시간을 빼거나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다. 내 몸 컨디션이 좀 더 좋았다면 어제 저녁 차를 가지고 가서 드라이브도 시켜 주고 오늘 아침 바다 구경도 시켜 주었을 것 같은데 만한 체력이 없다. 시내에서 만나 밥 먹고 차 마신 어제는 그냥 제주도에 사는 친구와 잠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혼을 했고 가족이 있는 사람이 혼자 제주도에 놀러 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제는 정말 동네 친구 만나듯 그렇게 만나 시간을 보냈다.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해 빌빌거리는 나를 보고 친구가 인생은 짧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삶의 기쁨을 느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어렵지만 그렇게 한번 해 볼까?


오늘 아침에 바나나 한 개와 딸기 네 개, 아는 분께 받은-달팽이도 숨어 있던-상추를 깔라만시 원액과 함께 갈아 주스로 만들었고,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쌀빵 두 개를 구워 작년에 선물로 받은 수제 귤잼을 발라 아침으로 먹었다. 맛있었다. 이런 '맛남'을 느끼며 만족해했다.


맛있음과 맛없음을 명확히 구별하게 되는 게 과연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잘 먹이기'를 위해 노력해 보아야겠다.


몇 시간 뒤 돌아가는 친구가 제주로의 짧은 여행에서 위안과 휴식을 얻고 갈 수 있기를... 가이드(?) 역할을 잘 해 주지 못해 미안하지만(약속 장소에 먼저 와 기다린 친구는 신제주 지리를 나보다 더 잘 알았고, 심지어 커피숍도 친구가 미리 봐 둔 곳으로 갔다), 잘 챙겨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나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지만, 혼자 많은 시간을 보낸 이 짧은 여행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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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지난 주말 틀낭학교에서 다녀온 4.3 유적지, 서귀포시 남원읍 수악 주둔지에서 찍은 천남성이다. '하늘 남쪽의 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독성이 있어 사약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함부로 만지면 안 된대요.


수악오름은 4.3 사건 전까지는 목초지였단다. 사람들이 동원되어 오름 위에 만들어진 군인과 경찰들의 주둔지. 아픈 역사의 현장이었다.


*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고, 일도 잘 하자.

* 조금 덜 바쁘고 힘이 생기니 글부터 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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