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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hyun Nov 13. 2019

안녕

친구의 오빠가 떠났다. 오늘.

아픈 육체와 작별하고 이젠 편안해졌단다.

이젠 더 이상 오빠가 안 아프다고, 그래서 좋다고 친구가 슬픔을 억누른 채 자신의 마음을 전해 왔다.


자기 오빠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친구가 알려 온 것이 작년 여름쯤이었다. 골수 이식을 위해 검사를 했고 자신이 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려 온 건 작년 11월.


예상 외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잘 모르는 제3자로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골수 이식을 했고 오빠는 나아지는 듯싶었다.


그런데 병이 재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혈소판이 부족해서 혈소판 수혈이 필요하다고 했고, 나도 인맥을 동원해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수혈을 부탁했다. 같은 혈액형을 가진, 나도 모르는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는 수여자를 위해 기꺼이 헌혈해 주었다. 수혈자를 지정하는 헌혈로. 일반 헌혈과 다르게 2~3시간이 걸리고 헌혈 조건도 까다로운 혈소판 헌혈.

그렇게 추석을 보내고 시간이 흘렀지만 친구 오빠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고 있었나 보다.


오빠를 잃은 친구를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지만, 친구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아프다. 어떤 위로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11월은 성당에서 '위령 성월'로 보내고 있다. 세상을 떠난 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달. 그래서 성당에선 위령 성월에 세상과 작별하는 걸 일종의 은총으로 여기기도 한다.


6년 전 돌아가신 아빠도 위령 성월에 떠나셨다. 모레가 아빠의 제사라서 여섯 번째 제사에 참석하기 위해 내일 저녁 비행기를 끊어 놓은 상태였다. 조금 전 친구 오빠의 소식을 듣고, 저녁 표를 취소하고 시간을 앞으로 당겼다.

 

언젠가는 아빠가 돌아가시던 의 일을 글로 남기고 싶었다. 마지막 일주일 전부터 돌아가시던 순간까지의 일을.


작년에 5주기를 맞이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미처 끝맺지 못한 채 어느새 1년이 흘렀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잘 써지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때 쓰고 싶었던 글은 얼마 전 친구가 전해 준 오빠의 악화 소식에 짧은 글로 정리되었다.


아빠 그리고 내 친구의 오빠.

11월에 세상을 떠난 분들.

얼마 전 돌아가신 신부님들.

(10월 말에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우리나라를 이끄는 분의 어머니.

많은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다.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의 기억을 이렇게 짧게라도 남겨 본다.




친구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 상황에서 오빠의 마지막을 차분히 준비하라는 말을 할 수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고 치료하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운데, 우리 아빠는 간암 말기셨지만  마지막에 폐결핵 증상이 나타나서 호흡 곤란이 생겼어. 새벽에 숨을 잘 못 쉬어 119를 불러서 병원 응급실에 갔어.

그날 응급실에서 아버지를 진찰한 의사가 나한테 그러더라. 얼마 못 버티실 것 같다고. 그 '얼마'가 얼마인지도 모르겠더라.

아빠 몸의 산소포화도와 맥박을 측정하기 위해 손에 온갖 것을 달고 주사도 꽂고.... 산소가 기준치 이하로 내려가니까 기계가 수시로 경고음을 울리더라.

오후에 의료진이 와서 위급 시 기도삽관과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지 결정하라고 하더라고. 환자의 맥박이 멈추었을 때 다시 살리기 위해 병원에선 그런 시도를 한다지.

그걸 물어볼 때 아버지 의식이 있었고, 아버지께 결정하게 했어. 아빠는 그 치료는 안 받겠다고 말씀하셨고 본인이 겨우 손을 들어 직접 싸인하셨어.  

갈수록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니까 기계가 더 자주 경고음을 울렸어. 우리 가족은 그걸 달고 있는 게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기계와 주사를 다 빼 달라고 했어. 아빠 손에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달려 있으니 아빠도 불편해하셨거든.

심장이 뛰는지, 몸속 산소가 충분한지 모르는 상태에서(대신 산소호흡기는 코와 입에 달아놓은 상태였어. 큰 도움은 안 되지만 조금이라도 편하게 숨 쉬시라고) 아빠가 정상인지 판별하는 기계는 다 떼고 아버지 양 손은 엄마, 언니, 내가 잡았어.

아빠 손을 잡은 채로 큰아버지, 큰어머니, 사촌오빠들이 차례로 오고, 아빠의 의식은 사라지고 있었지만 가족들과 조용히 인사 나눈 후 아버지는 떠나셨어.

한참 뒤에 의료진이 와서 아빠의 맥박을 체크하고는 그 시을 사망 시으로 알려줬지만, 사실 우리는 아빠의 정확한 사망 시간을 몰라. 기계가 재지 못하는 사이에, 그냥 가족 사이에서 주무시듯 조용히 떠나셨으니까.

응급실 의사가 추측한 '얼마'가 하루도 안 된다는 걸 그날 돌아가시고 나서 알았어. 의사들은 경험으로 아는구나. 이 환자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살면서 아빠와 엄마, 언니, 나 사이에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마지막은 가족 품 속에서 따뜻하게 보내드릴 수 있어서 큰 여한도 없다. 울 아버지가 어찌 보면 '죽음의 복'을 타고 나신 것이 아닐까....

그때 생각이 나서 적어 본다. 누구나 한 번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맞이해야 할 테니까.... 너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같이 울어줄 수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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