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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ihyun Aug 18. 2021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

아버지에게는 우리 자매와 함께 자라지 않은 아들이 있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해에 그 아이는 군복무 중이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을 때, 언니가 그 아이에게 연락해 아버지를 뵙게 해야 할 것 같다며 어느 부대에 있는지 나에게 알아보라고 했다. 국방부에 전화를 걸어 군입대 시기와 이름을 말하고 배치된 부대를 알고 싶다고 했더니 개인정보라서 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집안 사정과 아버지의 상태도 얘기한 것 같은데, 하여튼 안 된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을 찾다가 언니가 인터넷을 검색했다. 그 아이 이름을 넣고 이리저리 찾아봤는데 아이의 SNS로 연결되었고, 어느 부대에 근무하고 있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언니가 그 부대에 연락했고 중대장이었는지 소대장이었는지 하여튼 높은 사람과 먼저 통화를 했다. 우리가 누구인지 소개하고, 그 아이의 집안 사정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상관에게 먼저 물었다. 부대에 배치될 때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적는 시간이 있는데, 그 아이가 자신의 성장 배경을 적어서 알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가 지금 위독하시니 그 아이가 아버지를 보러 왔으면 좋겠다고 언니가 말했다. 아이의 소속 부대 상관은 알겠다면서 휴가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 후 휴가를 받아 나오기 전 그 아이와 직접 통화를 했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쨌든 연락이 닿아 아이가 아버지를 만나러 오게 되었다.


사실 그때는 아버지 돌아가시기 며칠 전이었는데, 가족 누구도 아버지가 며칠 뒤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의 상태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세상을 떠날 듯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나서서 그 아이와 연락하려 애쓰는 언니를 보면서 나는 "뭘 이렇게까지......?" "왜 벌써......?"라는 생각을 했었다.


휴가를 받아 평상복을 입고 나온 아이와 십수 년만에 만나 집 근처 식당으로 먼저 갔던 것 같다. 셋이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함께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 반가워했고 군인이 된 아들을 뿌듯해했다. 그리고 군복 입은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아이는 오늘은 군복을 벗고 왔지만 내일 군복을 입고 다시 올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모습이 보고 싶다며 다음 날도 오라고 하셨다.


다음 날, 약속한 대로 그 아이는 군복을 입고 찾아왔고, 아버지는 자신의 유전자를 받아 세상에 태어난 세 아이를 일렬로 세워 뿌듯하게 바라보셨다. 그리고 모두에게 "미안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에 대한 미안함인지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방에 있던 우리 모두가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아버지는 호흡곤란 증세로 근처 병원에 실려 가셨고 그날 저녁 돌아가셨다.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그 아이였던가 보다.

누가 보고 싶다, 누구를 오게 해 달라, 이런 말씀도 없이 아무런 티도 안 내고 요청도 하지 않으셨지만, 그 아이를 만날 때까지 쇠잔해진 육체로 버티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뒤 편하게 눈감으신 것 같다.


언니는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읽었을까? 그 시점에 그 아이에게 연락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아버지는 그때 '위독'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불가사의하다.

그 아이와 연락이 닿은 직후 그 SNS를 다시 찾아보려 했는데 아무리 찾고 검색어를 바꾸어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그땐 신비로운 일들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때의 이 사건이 요즘 계속 떠올랐다. 허공에 대고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몇 번 풀어놓았다. 그러자 자기를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이야기가 말을 거는 듯했다.


혹여 사건의 당사자인 그 아이가 이 글을 보게 되더라도 마음이 너무 불편하지는 않았으면......

이후 이제 이러저러한 일로는 다시 연락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냉정하게 잘라 말한 사람은 나였지만, 당시엔 내게 "악역"이 필요했던 것이니 이해해 주기를......

자기 존재의 의미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이 너에게도 필요할 텐데, 그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성장할 수 있기를......




"아버지가 사랑한 세 아이"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마음에 맴도는 문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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