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아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따금씩 있는 안부 전화라 여겼던 전화 속 너머의 아빠의 목소리에 점차 물기가 어렸다. 환갑이 넘은 아빠의 눈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고 뜬금없었던 탓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아빠가 꽤나 큰 고질병에 걸렸을 때, 밤늦게 아빠로부터 받은 전화 한 통이 불현듯 떠올랐다. 또 다시 안 좋은 일이 생긴 것일까.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빠가 아니라면 엄마일까. 주저하고 망설이며 뜸을 들이는 아빠의 말투에 손에서 진땀이 나기 시작했고, 아빠를 따라 덩달아 목소리가 떨렸다.
침착해야지. 제발. 별일 아니겠지. 지레 겁먹지 말아야지. 잠깐의 정적이 흐르는 동안 혼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대처 방안을 찾으려 노력했다. 아찔한 순간이 흐르고 마침내 아빠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내가 생각했던 일들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온 몸의 긴장감이 탁 풀어져 그때서야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단지 딸이 걱정돼서, 그저 막내딸인 나랑만 통화를 하면 그렇게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빠에게 서른에 가까운 딸의 안부는 갑작스럽지도 뜬금없지도 않은 일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 아빠는 항상 그랬다. 가족끼리 다 같이 맛있는 것을 먹을 때도 멀리 떨어져 있어 함께 하지 못하는 나라는 존재를 생각했다. 그런 날 저녁에 걸려온 아빠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미안함과 애틋함이 서려있었다.
오늘도 아마 그랬으리라. 따뜻한 집밥을 먹고 운동 삼아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문득 생각난 내 걱정에 단순히 걸었던 안부 전화에서 속으로 삼켰던 걱정들이 물 밀 듯 밀려왔으리라. 불안정한 직업을 가진 딸이 걱정돼서일까. 시국이 시국인지라 집을 떠나 있는 딸이 걱정돼서일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답잖게 이어가시던 아빠는 순식간에 찾아온 멋쩍음에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던 나는 아빠와의 전화 내용을 곱씹었다. 놓친 것은 없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아빠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어도 될지. 단 한 번도 아빠가 전화로 눈물을 보인 적은 없었다. 가끔 아주 가끔씩 소주 한 잔을 기우리다 눈물을 흘려보낸 적은 있었어도 단언컨대 오늘 같은 일은 없었다.
아직 아빠의 삶을 반도 채 살아내지 못한 어린 딸이 이해할 수 없는 서글픔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빠만이 간직한 하루의 노고가 오늘의 슬픔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만, 아빠의 말이 사실이겠지. 아무 일 없겠지라고, 단순히 내가 걱정돼서겠지라고 믿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