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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장'의 방식이 효과적인 이유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tvN <신사장 프로젝트>의 신재이

by 주연

"사건 중재도 척척해 내고 변호사 같진 않은데 법에 대해 잘 아는 것 같고 틈만 나면 법을 어기는데 양심의 가책은 별로 없어 보이고." (3회)


tvN 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의 필립(배현성)은 판사 임용과 동시에 '신사장' 재이(한석규)의 치킨 가게로 파견된다. 그리고 얼마 후 자신을 그곳에 보낸 부장판사 상근(김상호)을 만나 재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국가가 인정한 협상 전문가이지만 통닭집 사장이 공식 직업인 신재이. 그는 주로 상근이 의뢰한 사건들의 중재를 맡아 매우 독특한 방법으로 해결한다. 법이 아닌 편법을 사용하고, 협상을 한다며 협박에 가까운 일들을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런 이상한 방법으로 재이는 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살리고, 종종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필립의 말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그런데 나는 그를 지켜보면서 한 단어가 자꾸만 떠올랐다. 바로 '돌봄의 윤리'다.


IE003534940_STD.jpg ▲독특한 방식으로 갈등을 중재하는 신사장의 이야기를 담은 '신사장 프로젝트' 포스터. tvN


법과 원칙의 윤리 vs 맥락과 돌봄의 윤리


우리는 '도덕' 혹은 '윤리'라고 하면 법과 원칙을 잘 지키는 것을 먼저 떠올린다. 법을 잘 지키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원칙들을 잘 따르면 대체로 그 사람은 윤리적이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런데 정말 법과 원칙을 잘 지키는 것만이 '도덕적'인 것일까?


캐럴 길리건은 이런 질문을 품고 도덕성 발달을 연구한 심리학자다. 길리건은 당시 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콜 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원칙과 법을 얼마나 자발적으로 따르는지에 따라 도덕성 발달의 수준을 구분함)이 남성, 그러니까 소년들만을 대상으로 연구된 것임에 의문을 품었다. 이에 길리건은 소녀들을 대상으로 도덕성 발달을 연구했는데, 소녀들의 도덕성 발달에는 콜 버그의 이론이 잘 적용되지 않았다. 길리건에 따르면 소녀들은 법과 원칙을 적용하기 전에 '맥락'과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살피곤 했다. 예를 들면, 가난한 아이가 배가 고파서 빵을 훔쳤다면, 소년들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비난하지만, 소녀들은 '빵을 훔친 행위는 문제지만, 가난하고 배고픈 상황을 고려해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길리건의 이런 발견은 '도덕적' 혹은 '윤리적'이라는 게 단지 법과 원칙만 따르는데 머물지 않고 맥락 속에서 한 사람이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함을 알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발견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고 공감하며 돌보는 것이 윤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돌봄의 윤리'를 탄생시켰다.


나는 재이가 바로 이 '돌봄의 윤리'를 실천하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이는 법과 원칙보다는 맥락과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기반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종종 "협상을 할 때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게 먼저"라고 말하고, 실제로 이를 실천한다.


신사장이 실천하는 '돌봄의 윤리'


먼저, 1회 빌라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세입자에게 다가가 그는 능청스럽게 이렇게 말한다


"초코 우유 좋아해요? 이거 내가 마시려고 산 건데 먼저 목 좀 축이고 조금만 남겨줘요. 당신 밤새 일하느라 아무것도 못 먹고 지금 속 쓰리잖아요."


그리곤 세입자를 나무라는 집주인에게 함께 욕을 해준다. 경찰들이 특공대까지 대동하고 몰려와도 꿈쩍도 않던 이 세입자는 재이가 마음을 알아주자, 순순히 옥상에서 내려온다. 자살은 안된다고 원칙만 말하기보다 맥락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우선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3회에는 시에서 폐수를 방치해 암으로 형을 잃은 상현(강승호)이 시장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인다. 재이는 이 사건에 투입되는데, 이때 재이는 인질이 아닌 '인질범' 상현 편에서 협상을 한다. 그러면서 처음 요구한 것이 정성 들인 따뜻한 국밥이다. 경찰이 국밥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오자 뚝배기에 담아 다시 가져오라며 이렇게 말한다.


"최소한의 존중 그것 좀 보여 달라는 거잖아."(3회)


이후 재이는 인질을 구하고, 경찰 몰래 상현과 그 어머니를 해외로 탈출시킨다. 며칠 후 이를 알고, 한때 동료였던 경찰 영수(최덕문)가 따져 묻자 이번에는 이렇게 항변한다.


"이상현 때문이 아니야. 이상현 어머니. 큰아들까지 죽고 3년 만에 막둥이마저 잃으면. 죄는 공소시효 지나면 없어져. 근데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은 공소시효가 없더라." (3회)


이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공감하는 '돌봄'에 기반한 협상임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죄질이 나쁜 범죄자와 협상할 때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7회에는 보육원에 살다가 자립한 아들 승무(이종현)에게 접근해 전세 사기를 치는 엄마 미숙(정애연)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재이는 승무를 찾아가 "방법을 찾아야지. 그 돈 찾을 때까지는 포기하지도 말고 용서해도 안돼"(7회)라고 말해주고, 미숙과 함께 사기 친 일당을 '가차 없이' 협박한다. 마피아에게 썼던 수법이라며, 인질처럼 묶어두고 고용량 비타민과 수면제를 투입해 잠들게 해 경찰에 넘긴다. 아마도 이는 피해자 입장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일 듯하다. 이런 방식까지 동의가 되진 않지만, 속이 좀 시원해지긴 했다.


IE003534941_STD.jpg ▲'신사장' 재이는 인질이 아닌 인질범 편에서 협상을 벌인다. tvN


'진짜 마음'과의 만남


이처럼 재이는 원칙과 법보다 '맥락'을 살피고, 갈등 당사자의 마음, 특히 약한 자의 마음에 공감하며 갈등을 풀어낸다. 이는 재이가 도덕과 원칙에 의한 윤리가 아닌 '돌봄의 윤리'를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재이의 방식이 사람들에게 잘 통했던 걸까?


이는 공감과 이해를 통해 협상 당사자들이 자신의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게 됐기 때문일 것이다. 1회 자살 시도하는 세입자에게 재이가 한 말들은 그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어서' 이런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게 했을 것이다. 2~3회, 시장을 납치한 인질범 상현 역시, 자신이 원하는 건 다 같이 '죽는 게' 아닌, 피해보상을 받고 잘못한 이들이 처벌받기를 바라는 것임을 알게 된 후,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면서 재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2회 시작 지점에는 재이가 자주 들리는 작은 슈퍼마켓 사장인 주인(이지하)과 우유 공급자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재이는 그 장면을 목격하고는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서로에게 가차 없이 소송을 걸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랬을 경우 각자가 곤란해지는 상황을 이야기해 준다. 그러자 주인과 우유 공급자는 둘 다 상대방이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며 서로 양보하듯 화해를 한다. 이는 재이가 두 사람이 투닥거리긴 해도 실제로는 서로가 꽤 친밀하고 좋은 이웃임을 알아차리고 각자가 '진심'을 만나도록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반면, 승무 어머니 미숙처럼 '진짜 마음' 조차 악할 경우, 그는 협상이 아닌 '협박'을 해서라도 철저하게 피해자 편에 선다.


IE003534942_STD.jpg ▲상근은 신사장에게 소송보다는 중재가 필요한 사건들을 의뢰한다. tvN


"애인한테 차여서 뛰어내리고 성적 떨어져서 뛰어내리고, 위층에서 뛴다고 뛰어내리고 근데 세계 평화 이루자고 뛰어내리는 사람 못봤수다." (1회)


재이가 자살시도 사건을 해결한 후 "그깟 방범 창 안 해줬다고 난리를 피웠다"고 말하는 경찰을 나무라면서 한 이야기다. 정말 그렇다.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갈등의 대부분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갈등의 순간에도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대체로 그 당사자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이해한 바를 잘 전달하면 당사자 스스로도 자신의 '진짜 마음'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맥락'과 '마음'을 살피는 돌봄의 윤리가 조금 더 우리 삶에 스며들었으면 한다. 물론, 법과 원칙도 중요하다. 하지만, 맥락과 마음에 대한 고려 없이 적용되는 법과 원칙은 때로는 '진짜 마음'과 더 멀어지게 해 진실을 가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드라마 속 재이의 파트너이자 촉망받는 젊은 판사인 필립은 상근이 자신을 재이에게 보낸 이유를 늘 궁금해한다. 아마 이제 필립도 눈치채지 않았을까. 재이에게 맥락과 마음까지 살피는 법을 배워 보다 좋은 법관이 되기 위해 그곳에 있음을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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