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유리천장을 뚫은 여성 CEO, 야미니 랑간 이야기
자신의 강점을 파악하고, 취약점을 드러내며,
필요할 때는 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 야미니 랑간, 허브스팟 CEO
우리를 소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무엇일까?
한 가지로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때마다 지혜롭고 알맞은 '선택'들이 꿰어져 아름다운 목걸이를 완성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이처럼 남다른 선택들로 유리 천장을 뚫고 미국 회사에서 CEO 자리까지 오른 여성이 있다. 그것도 외국인 신분으로.
야미니 랑간(Yamini Rangan)은 인도에서도 몇 안 되는 여성 기술 CEO 중 한 명으로 장벽을 허무는 데 일가견이 있다. 인도에서 자란 그녀는 야망을 품고 공학 학사, 컴퓨터 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후에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하스 대학교에서 MBA를 취득했다. 인도인 부모님은 그녀가 의사가 되지 않겠다고 하자 크게 실망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MBA 취득 후, 그녀는 제품 마케팅, 영업, 전략 분야에서 25년 이상의 경력을 쌓으며 기술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MIT 동문인 브라이언 할리건과 다르메쉬 샤가 설립한 2022년 매출 17억 달러의 소프트웨어 회사 허브스팟(HubSpot)의 최고경영자가 됐다.
201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비즈니스 타임즈에서 선정한 비즈니스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 뿐 아니라 인도에서도 각광받는 의대 대신 공대를 선택한 야미니 랑간. 그녀의 경력을 살펴보면, 그녀는 눈에 띄는 몇 가지 '의도적인 선택들'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2023년 MIT 디지털 경제 이니셔티브 연례 컨퍼런스의 기조 연설에서 랑간은 자신의 커리어를 바꾼 의도적인 결정에 대해 회고했다.
"여성 공학도 비율이 8%도 안 되는 인도에서 엔지니어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21살에 꿈과 희망만 가득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던 고국을 떠나 이곳에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의대 대신 공대, 인도 대신 미국이라는 선택을 넘어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 역시 의도적인 선택이라고 믿는다. 다음은 그녀가 내린 여섯 가지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뛰어난 팀원이 팀장이 됐을때, 뛰어난 리더가 최고 리더가 됐을 때 흔히 범하는 실수에서 그녀도 자유롭지 못했다.
영업 사원에서 영업 관리자 직책으로 승진한 랑간은 처음에 팀원들에게 그녀의 뜻대로 빨리 움직이도록 푸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팀원들에게 자신이 해왔던 방식대로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곧 팀원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아니라 팀원 모두를 승리로 이끄는 크로스컨트리(Crosscountry) 코치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아마도 이것이 제 여정에서 가장 큰 배움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회사를 옮기거나 회사 내에서 더 큰 역할을 맡을 때마다 팀과 함께 멀리 가기 위해서는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데, 이것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영업에서는 네트워킹이 필수적이다. 특히 어린 자녀가 둘이나 있는 '워킹맘'에게 고객과 골프 게임을 하며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종류의 영업은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의 적성에 맞는 영업 전략을 세웠다. 천성적으로 분석적인 성격인 그녀는 골프 대신 기업의 10K 및 10Q 재무 제표를 면밀히 분석하고 고객에게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진정한 필요를 찾는 접근을 택했다.
"나는 고객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 진짜 이유와 이것이 그들의 회사 및 자신의 커리어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진정으로 궁금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지식으로 무장한 그녀는 더 많은 승리를 얻게 됐고, 고객에게 신뢰와 스스로에게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영업 방식도 여성에게 맞는 방식으로 진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랑간의 전략은 고객이나 영업직원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 영업을 위해 골프와 술을 배우기 보다는, 고객의 진정한 필요를 찾는 것이 서로에게 더 유익할 수 있지 않을까?
랑간은 고객에게도 직원들에게도 이런 ‘진정성(Authenticity)’을 바탕으로 접근했다. "진정성 있는 리더(Authentic leaders)는 자신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눈에 띄게 된다. 진정성이 승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많은 연구가 있다."며 진정성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랑간은 조직에서 승진할 수 있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눈에 보이는 경로(visible path)’로, 흔히들 말하는 조직의 특정 부서에 입사하여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로가 명확하지 않은 ‘보이지 않는 경로(invisible path)’다.
랑간은 후자의 길을 택했다. 한 부서의 특정 기능의 리더(functional leader)로 드롭박스(Dropbox)에 입사한 그녀는 여러 부서를 연결하는 일을 좋아했고, 결국 최고 운영 책임자(Chief Operating Officer)로 발탁됐다. ‘기능 중심’이 아닌 ‘회사 중심’이 된 것이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한다.
"제가 단지 맡은 역할을 뛰어나게 잘하는 리더일 뿐 아니라 훌륭하고 신뢰할 수 있는 회사의 리더였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길이 열렸다. 저는 그 길이 존재하는지 몰랐지만, 그 길은 제 리더십 역할(CEO)을 향한 매우 중요한 길이었다."
직무적으로 일을 잘하는 것은 기본. 그리고 "훌륭한 리더 그 자체"가 되는 것이 또다른 기회를 여는 길이었다는 고백이다.
2021년, 당시 CEO였던 브라이언 할리건(Brian Halligan)이 심각한 차사고를 당했다. 할리건이 회복을 위한 휴식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랑간은 허브스팟의 임시 CEO로 임명됐다.
그해 말 영구적으로 CEO 자리에 오른 것은 그녀에게 큰 성과였지만, 랑간은 한동안 자기 의심과 ‘사기꾼 신드롬(Imposter Syndrome)’이 뒤따랐다고 고백했다.
사기꾼 신드롬(가면 증후군)이란, 자신의 성공이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으로 얻어졌다 여기고 주변 사람들을 속여 왔다고 생각하면서 불안해하는 심리다. 성공의 요인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 두고, 정작 열심히 노력한 자기 자신을 자격 없는 사람 혹은 사기꾼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랑간은 이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이 만들고 싶은 미래를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새롭게 맡은 역할) 기능의 절반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과거가 기준이 아니라 제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에서 거꾸로 일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CEO 로서 스스로를 빌드업했다.
랑간의 선택들이 모두 훌륭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선택이 가장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안일한 '자기 암시'가 아니라, '숙련되고 뛰어난 CEO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를 고민하고 그 기준에 따라 선택했다는 뜻이다. 처음 가보는 길에서 이것보다 좋은 기준이 있을까?
리더가 되면 할 일이 태산같아 진다. 이때 랑간은 “무엇에 주의를 집중할지” 어떻게 선택했을까?
그녀는 정기적으로 우선순위를 살펴보고 각 우선순위에 할애하는 시간을 합산한다. 그렇게 하면 수많은 일에 대해 명확하게 거절할 수 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잘하는 일이나 다른 사람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면 시간 우선순위를 잘못 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실제로 팀장이 됐을 때, 한 팀원이 "팀장님 그 일 잘하는 것 아니까 그 일은 이제 저희한테 맡기고 그만 하시는 것은 어떠냐"는 돌직구를 맞은 적이 있다.
랑간도 마찬가지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렇게 제안한다. "우리에게는 훌륭한 팀이 있다. 제 일은 리더와 팀이 더 잘할 수 있도록 코칭하는 것이지, 리더를 대신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된다면 모든 것을 이겨야 할까? 모든 것을 이겨야 한다는 사고방식(win-above-all mindset) 대신 취약성/연약성(vulnerability)을 드러내는 데 집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는 랑간이 초창기 여성 임원들에게 했던 커리어에 대한 조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태도다. 하지만 이제 "20년 전 리더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고 항상 갑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하라'고 했던 조언은 팀의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경영진 내에서나 회사 전체에서 원하는 것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랑간은 스스로를 "현재 진행형"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녀는 심지어 자신의 성과 리뷰를 팀원들과 공유한다. 이에 대해"내가 팀원들에게 더 나아지라고 독려하는 만큼 나 자신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장에 필요한 부분에서 연약한 모습(being vulnerable)을 가지지 않는다면, 성장 마인드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경영 철학이다.
진정함과 용기를 가지고, 지혜로운 선택을 해 온 야미니 랑간, 이민자로, 유색인종으로, 여성으로, 미국 유리천장을 뚫는데 성공했다. 그녀의 교훈이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길 바란다.
허브스팟(Hubspot)은 2006년 할리건과 다르메쉬 샤가 보스턴에서 설립했다. 이 회사는 회사 블로그와 같은 양질의 콘텐츠를 사용하여 웹사이트 트래픽을 유도하고 매출을 늘리는 콘텐츠 마케팅의 초기 개척자다. 지금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개념이지만, 설립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 개념을 주류로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허브스팟은 2014년에 상장한 이후 더 광범위한 CRM 플랫폼으로 전환했다. 웨이페어(Wayfair)와 함께 미국 보스턴의 스타트업 업계에서 상장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성공적인 IPO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보스턴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