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 03 <박준> 리뷰
공공그라운드 "텍스트클럽"은 텍스트를 낭독하고, 텍스트 안팎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텍스트클럽의 멤버, '텍스트클러버'의 더 깊은 영감을 위해 책 너머 창작자의 생각과 나의 이야기까지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합니다.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여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텍스트를 '읽는' 일방향의 경험이 '읽고 나누는' 쌍방향의 경험으로 전환되기를 기대합니다.
글 | 우주
사진 | 난다 출판사, 공공그라운드
올해 여름은 유난스러운 비가 왔던 계절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연이은 폭우로 마음을 무겁게 하는 피해 소식도 많이 들려왔죠.
공공일호의 파랑새극장 역시 갑작스러운 누수를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 행사를 진행할 수 있었지만, 기획자로서는 열심히 준비한 행사를 더 멋지게 보여드릴 수 없어 아쉽고 속상했습니다. 하지만 공간을 바꿔서라도 박준 시인님과 텍스트클러버가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지켜냈다는 것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준 시인님과 함께 한 8월의 첫 목요일, 따스했던 시간을 전해드립니다.
유희경 시인 (이하 ‘유’): 잠실 주경기장에 7만 명이 들어간대요. 3개 정도 필요한 어마 무시한 숫자인데, 대단합니다. 책 제목을 생각해보니까, 20만 명 분의 슬픔이잖아요. 울음이기도 하고. ‘굉장한 풍경이다’는 생각을 했어요. (울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고, 운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해소되기도 하고, 마음이 가벼워져서 (문제를) 간단하게 여겨지게 하는데 일조한 책이 아닌가 했습니다.
텍스트클럽은 창작자와 독자가 책 너머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색다른 낭독회입니다. 창작자 분들이 준비해주시는 선물 덕에 조금 더 특별한 행사로 꾸려집니다.
박준 시인님께서는 파란색 연필에 글귀를 적고, 연필 끝자락을 깎아 이름까지 새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시집 제목이 수 놓인 핸드타월도 준비해주셨습니다.
특히 이번 텍스트클럽은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의 20만 부 판매 기념을 겸하는 행사이기도 해서, 더욱 특별한 선물이 있었습니다.
박준 시인 (이하 ‘박’): 제가 산문집을 3년 전에 냈는데, 이렇게 팔릴 거라고 생각하고 내지 않았어요. 생각하지도 못하고, 생각해서는 어쩌면 안되고요. 어쨌든 소중한 2만 원의 입장료를 내고 선물을 받으셨는데요, 그중에 드린 책은 제가 자비로 드리는 것입니다. 20만 부 팔았으니까요. (웃음)
유: 잠실 주경기장 3개입니다. (웃음)
세 번째 텍스트클럽을 준비하며 놀랐던 것은 서른 개에 가까운 사연이 도착했다는 것, 그리고 박준 시인님의 산문집만큼 아름다운 사연이 참 많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총 세 개의 사연을 두고 이야기 나누며, 산문집과 시집을 넘나드는 낭독으로 한 시간 반이 꽉 채워졌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어떤 사람의 공백을 바라는 나의 못난 마음을 마주할 때 울적한 기분이 든다’는 첫 번째 사연에는 너무 자책하지 않을 수 있도록 일과 마음가짐에 대한 위트 있는 답변을 주셨습니다. 낭독으로는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수록된 시를 꼽아주셨습니다.
큰비 지나, 물길과 흙길 지나, 자라난 풀과 떨어진 돌 우산과 오토바이 지나, 오늘은 노인 셋에 아이 둘 어젯밤에는 웬 젊은 사람 하나 지나, 여름보다 이르게 가는 것들 지나, 저녁보다 늦게 오는 마음 지나, 노래 몇 자락 지나, 과원 지나, 넘어짐과 일어섬 그마저도 지나서 한 이틀 후에 오는 반가운 것들
- “가을의 말”,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중에서
긴 시간 동안 마음을 들여 준비하던 일이 있다는 두 번째 사연. ‘비우는 중일까, 다가가는 중일까, 포기하고 있는 중일까. 이루는 것과 비우는 것이 동어반복이라는 걸 감히 알 것 같다.’고 남겨주셨습니다.
박: 시인이 되자마자 어떤 생각이 드냐면요. ‘정말 시로써 다 죽여버리겠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좋은 시를 쓸 거고, 나는 천생 시인으로 남을 거고, 교과서에도 실릴 거고 (웃음) ‘시를 절대 놓지 않을 거야.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시의 뜨거운 온도를 항상 유지할 거야.’,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당연히 생업도 있어야 되고, 직장을 다녀야 하고, 생활도 하고, 귀찮아지기도 하니까 시를 쓰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작년에 제가 시를 세 편을 썼는데요. 굉장히 불안합니다. 시를 안 쓴 게 아니라, 시를 쓸려고 앉았는데 세 편밖에 못 썼어요.
다만 지금 느낀 건 뭐냐면 ‘시와 나의 온도가 늘 똑같지 않을 수 있구나. 내가 생각하는, 내가 너무 되고 싶은 나의 열망이 어느 순간에는 느슨해지기도 했다가, 가까워지기도 하며 반복을 하는 것인데, 지금은 느슨해진 것이구나.’ 였어요. 내가 그만두지 않는 이상 이 끈이 끊어지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당기면 다시 오는 것이고요, ‘너 나가 놀아라’ 하고 풀어둘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지금 이 분께서 가장 어려운 것이 그렇게 열망했던 것을 비워야 하는가, 아니면 이뤄야 하는가, 이것 때문인데. 이룰 수도, 비울 수도, 끝까지 가야 알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유: 저는 더 단순하게 생각했거든요. 글 안에 답이 있다고 했잖아요. 지금 하는 일이 본인을 기쁘게 한다고 하니까 ‘기쁜 일을 두고 왜 굳이 멀리 돌아가나’ 하는 단순한 생각을 했었는데.
박: 저도 그게 현실적인 방법 같아요. 지금 하는 일에 환멸을 느끼면, 깨끗하게 포기하는 순간 고민은 사라질 텐데. (유: 맞아요.) 완전히 사랑하든, 완전히 환멸하든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것도 비슷한 일인 것 같습니다.
유: 어떤 단어도 피하지 않고 솔직하게 쓰셨잖아요. 그걸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용기인 것 같아요.
헤어진 연인과의 작별의 순간을 담은 세 번째 사연을 두고 작별을 대하는 태도를 나누었습니다. 사연에 등장한 뉴질랜드와 횡성의 닮은 점, 죽을 때까지 잊히지 않을 사랑의 순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박: 저는 어떤 일을 반복하는 성향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평소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여행을 갔는데 너무 별로인 거예요. 음식도 별로고, 이 도시 전체가 이상하게 느껴지고. 그러면 ‘여기는 나랑 안 맞는 곳이구나’ 하고 돌아오죠. 그런데 저는 한 번 정도는 다시 가거든요. 그 안 좋은 기억을 회수하러요. 만약에 이 사연에 미련이 남았다고 볼 수 있다면 다시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시 만날 때는 물론 다시 잘해보자는 생각이 강하겠지만, 오히려 ‘이번엔 잘 끝내자’는 생각이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 보면 상대의 동공에 내 모습이 비칠 때가 있죠. 그때 비친 내 모습이, 거울을 볼 때 이상으로 마음에 들거든요. 그러니까 분명히 해야 될게 내가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이 사람이 정말 그리워서인가, 아니면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 때의 내 상황과 내 생각과 나의 것이 마음에 들어서였나, 인 거죠.
상대와 나의 감정이 비슷하게 차오를 때 우리의 관계는 연애와 사랑의 세계로 전환된다. 연애의 세계에서 그리고 사랑의 세계에서 관계는 더없이 충만하며 인자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감정이라는 불안한 층위에 겹겹이 쌓아 올려진 이 세계는 그리 안정적이지 않고 결코 영원하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는 곧 관계의 죽음을 맞는다.
나는 헤어진 애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거나 늦은 밤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다. 물론 이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소위 말하는 ‘미련’이라는 말로 치부하고 싶지만은 않다. 다만 관계가 조금 덜 죽어서 그런 것이라고, 이러한 행동 또한 관계를 잘 죽이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눈을 감고 내가 가장 즐거웠던 한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때 나의 눈 앞에는 더없이 아름다웠던 연인이 웃음을 내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연인의 정한 눈동자에는 나의 모습이 설핏 비쳐보인다.
어쩌면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과거 사랑했던 상대가 아니라, 상대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나의 옛 모습일지도 모른다.
- p.81-82, “관계”,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현장에서 이어진 텍스트클러버의 질문에도 곱씹어볼 만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몇 가지를 짧게 추려 소개합니다.
Q1: 책 제목이 모두 긴데요. 제목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합니다.
박: 제가 살아가는 미감 두 개가 다 반영이 된 건데, 일단 저는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에요. 감각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 가장 선전할 수 있는 방법은 담백한 것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개별 시에는) 짧은 제목을 붙이는 것입니다. 제 시집들의 제목은 선배 시인이자 편집자인 김민정 시인이 골라준 것인데요. 내가 감각이 뛰어나지 않으니, 나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말은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것도 능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정확히 얘기하면 누구의 말을 들을 때 기준은 세 가지예요.
첫 번째, 나를 좋아하지 않거나 내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의 조언은 들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의 말, 상처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고요.
그런데 애매한 것이, 나를 사랑하는데 내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주로 세상의 부모님들이 그렇죠. 나를 사랑하기는 하는데, 내가 잡고 있는 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요. 떨어진다는 게 잘못된다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 일을 다 설명드릴 수는 없고, 그래서 당연한 거죠. 이럴 때는 반만 듣습니다.
나를 인간적으로 좋아해 주고, 나도 좋아하고, 이 사람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해도가 같거나 높을 때 이런 사람의 말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말 듣기 싫을 때가 있어요. 괜히 아집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걸 넘어서면, (시집 제목을 가리키며) 넘어선 결과물입니다.
Q2: 학생인데, 학교 공부를 할 때 슬럼프에 많이 빠지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박: 슬럼프에 빠진다는 것은 평소 리듬이 있어서, 잘 되던 리듬이 있고 안되던 리듬이 있다는 말씀이신 거죠. 안 되던 리듬에서 잘 되던 리듬을 당기는 방법은 사실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의 힘으로 이 슬럼프를 극복한다는 방법은 쉽게 없는 것 같고요. 저도 그렇고요. 근데 어쨌든 그것이 공부라면, 시간의 힘이 어느 정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되든 안되든.
그리고 '파블로프의 개'를 아십니까? 개에게 밥을 주기 전에 같은 음향 자극을 주었더니 다음부터는 음향 자극만 줘도 개들은 식욕을 느껴서 침이 흐른다, 이런 건데요. 제 슬럼프 방지용 대책 중 하나는 글이 잘 써질 때 반복하는 일을 해요. 어떤 연주곡을 틀어 논다던 가. 그러면 나중에 길 가다 그 연주곡이 나오면 시를 써야 할 것 같아요. 파블로프의 개처럼. (웃음) 그런 형식으로 나를 시간으로 잡아두는 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 저는 '슬럼프 같은 것은 없다!' 이렇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시 쓸 때 시인들, 자기가 쓰는 장소를 정해놓잖아요. 거기를 못 가면 시를 못쓰거든요. 그래서 카페, 집 가리지 말고 '어디서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요.
Q3: 기분 나쁜 일을 겪고 난 후, 그 사람의 얼굴을 볼 때마다 계속 나쁜 기분이 떠올라 무척 힘들어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박: 그 사람을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혹은 피하지 못하고 매일 목도해야 하느냐. 이 차이가 있는 것 같고요. 그렇게 나쁜 문장으로 기억되는 사람들은 가급적 안 만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권력을 키워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이 나의 존엄을 해칠 수 있는 말을 못 하게 할 만큼 내가 능력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을 자주 안 봐도 되는 환경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은 나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느끼고 살 수 없는데, 굳이 나쁜 것을 곁에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근데 지금 그 힘듦에서 내 의지로 뛰어나올 수 없는 거죠? 그럼 최대한 빈도수를 줄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자연재해에 가까운 장마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렇지만 박준 시인님의 말씀처럼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니까, 함께 끝까지 걸어가 보기로 합니다. 글로는 다 담기 어려운 토닥임, 공감과 연대감이 공간을 가득 채웠던 시간이었습니다.
텍스트클럽은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잠시 쉬어갑니다. 모두 건강 유의하시고, 다시 만날 때에는 특별히 기쁜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오늘 글은 두 시인님의 소감으로 마무리합니다.
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앉아계신 분들은 책이 좋아서 박준 시인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런 시대에 책을 읽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어쩌면 내 얘기는 아닌 남 얘기지만 거기에 내 마음을 실을 줄 아는 사람들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박준 시인과 함께 이 자리를 꾸린 게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박준은요. 제가 어떤 일이 있을 때 전화해서 물어보는 사람이에요. 박준 시인의 시집을 읽거나, 산문집을 읽거나, 우연히 글 쓴 것을 맞닥뜨리게 되면 이 사람이 내 감정의 어떤 것을 들어줄 것만 같고, 실제로 그래요. 그게 잠실 운동장 3개를 채울 만큼의 사람들이 박준 시인의 책을 살펴보고, 기꺼이 아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통의 낭독회보다는 조금 더 뭔가를 주고받는 그런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 처음에 사연을 받았을 때 너무 막막했어요. 여러분이 끊임없이 고민해오던 것들을 저는 단 며칠 동안 읽고 생각하고 또 잊었다가 읽고 그런 건데. 어떤 도움이 될까 싶지만, 어떨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 던져주는 것들이 있죠. ‘힘내’, 누가 이런 얘기하면 힘이 나나요? (웃음) 안 나는데, 그 얘기를 계속 듣다 보면 ‘아, 내가 짜증 나서라도 힘을 내야겠다’, 이렇게 되잖아요.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든, 도움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도움이 되든, 유희경 시인님과 제가 진심으로 머리를 싸매고 함께 했다, 이 점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대화를 한다는 거 자체가 책을 읽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공간에서 이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이런 대화는, 타인의 삶이든 나의 삶이든 (함께 나누는), 일상의 의사소통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화잖아요. 저는 이런 대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하고요. 여기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은, 다른 어떠한 대체재가 없는 쾌감인 것 같고요.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대화가 다 들어가있는 쾌감.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끊임없이 두는 것도 삶의 즐거움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저도 그래서 마냥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