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라이즈>&<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다>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선우정아의 노래 ‘도망가자’의 도입부다.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한다. 도망가자! 농담이고 진담이다. 그때 도망에는 도망자가 느끼는 절체절명은 없다. 무모한 낭만의 실행, 사랑의 도피에 가깝다. 도피는 ‘도망하여 몸을 피한다’는 의미인데 사랑이 붙으니 공기가 바뀐다. 낭만적이고 운명적이다. 이 곡의 가사에도 쫓아오는 이는 없다. 심지어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노래한다. 도망가며 돌아올 것을 예정한다. 그럼 이들은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는 걸까? 불안이다. 이때 불안은 피로, 권태, 절망 등 위태한 현재를 지탱하는 감정이다. 현실은 막연하므로 불안하고 불안은 막연한 사유로 가속한다.
이 같은 불안이 연인의 도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불안은 종종 여행의 발로가 되기도 한다. 흔들리는 현실의 자신을 잠시 미뤄두고 싶을 때, 내일은 어김없이 올 테지만 내가 속한 현재를 보류하길 원할 때, 우리는 허락된 도피로 잠시나마 여행에 몸을 맡긴다. 그래서 어디든 상관없고 우선은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그 불안은 때로 우리를 도발해 예측할 수 없는 항로로 안내하기도 한다.
다시 본 <비포 선라이즈>의 첫 장면은 꽤나 인상적이다. 어떤 장면으로 기억하는지 묻고 싶다. 제시(에단 호크)는 마드리드에 살던 연인과 헤어져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셀린(줄리 델피)은 그녀에게 특별한 어른인 할머니를 만나고 파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두 사람이 기차 안에서 서로를 곁눈질하며 망설이는 장면이 처음이었던 건 같지만 그렇지 않다. 억센 독일어로 부부싸움을 하는 중년의 두 남녀에서 시작한다. 심지어 기차 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격렬한 다툼이다. 제시는 그 소란을 피해 자리를 옮긴다. 그 자리가 마침 통로를 사이에 둔 센린의 옆이다. 그럼 제시가 센린에게 건넨 첫 대사를 기억하는지? 가볍게 눈을 맞춘 후 제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렇게 말을 건다.
"두 사람 왜 다투는지 알아요?“
<비포 선라이즈>시리즈 3부에 해당하는 <비포 미드나잇>을 보고 나면 알겠지만, <비포 선라이즈>의 중년 부부는 제시와 셀린의 미래다. 스물세 살의 두 사람은 그들 역시 목청을 높여 다투는 40대 중년이 될 거란 걸 알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알 필요가 없다. 스물 세 살의 청춘에게 예상할 수 있는 건 인생이 아니고 가늠할 수 있는 건 미래가 아니니까. 그래서 제시와 셀린은 예상할 수 있는 내일의 일상을 외면한 채 예측할 수 없는 현재의 일탈에 몸을 맡긴다.
기차에서 내린 제시와 셀린은 비엔나에서 하루를 같이 보낸다. 제시의 십대 시절 기억이 있는 무명인을 위한 공동묘지(Friedhof der Namenlosen)에서 알려지지 않은 채 사라져간 사람들의 음성에 귀 기울이고, LP매장의 좁은 음악감상실에서 캐스 블룸(Kath Bloom)의 ‘Come Here’을 들으며 서로의 몸과 마음을 밀착하고, 대관람차 안에서 노을 지는 비엔나의 풍경을 보며 처음 입을 맞춘다. 거리의 시인에게 ‘밀크쉐이크’를 소재로 한 연시를 청하기도 하고, 와인 바에서 주인에게 와인 선물을 청해 받기도 한다.(그와 동시에 센린은 와인 잔을 훔친다)
"당신은 모험가군요. ... 인생이 서투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해요.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만 있다면 타인과 진실된 교류를 할 수 있을 거예요.“
카페에서 센린의 손금을 봐주던 손금쟁이 여인은 말한다. 그 말은 삶은 원래 불안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유한한 존재이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은 좀 더 사랑받기 위해서’라 여기는 건 그 때문이라고. 그러니 부족한 그대로의 지금을 온전히 사랑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더불어 그 불안을 여행하는 게 인생이라 말하는 것 같다.
다행히 여행에서 불안은 현실과 달리 설렘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두 사람은 그 짧은 시간에 사랑을 확인하고, 또 그것이 진짜 감정인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질문한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적어도 하루 동안 그들이 깨닫게 되는 건 설렘이라는 이름의 이토록 간절한 불안이다.
왜 여행을 떠나는 걸까? 그리고 왜 우연의 로맨스를 기대하는 걸까? 이 질문을 대할 때면 김윤아의 노래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가 떠오른다. 이렇게 시작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여 진청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단꿈에 마음은 침식되어 깨지 않을 긴 잠에 든다.’
우리는 첫 번째 줄의 노랫말 때문에 여행을 떠나고 두 번째 줄의 노랫말 때문에 로맨스를 꿈꾼다. 아니면 첫째 줄 때문에 로맨스가 간절하고 둘째 줄 때문에 여행을 떠나려는 것일까? 이 곡은 김윤아의 보컬 못지않게 제목이 강렬하다. 아마도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1974년 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땄을 것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극중 대사로 아랍어 속담이다. 이 영화는 믿기지 않겠지만 15일만에 촬영을 마쳤다. ‘행복은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다’라는 글과 함께 시작하는데, <비포 선라이즈>보다 다소 어둡고 무거운 한편 애틋하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비포 선라이즈>와 마찬가지로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과 사랑을 다룬다.
주인공은 60대의 청소부 에미(브리기테 미라)와 그녀보다 스무 살 어린 모로코 출신 이주노동자 알리(*엘 헤디 벤 살렘)다. 배경은 독일의 뮌헨이다. 관계의 시작은 얼핏 보면 <비포 선라이즈>보다 낭만적이다.
“나랑 같이 춤출래요?”
알리가 에미에게 건넨 첫 마디다. 알리는 바에 있던 한 여인의 질투 어린 제안에 오기가 발동해 에미에게 춤을 청한다. 비 오는 날 신비한 아랍 음악에 홀려 바에 들어온 에미는 20년만에 발을 맞춰 알리와 춤을 춘다. 두 사람은 몸을 맞댄 채 어색하게 춤을 추다 짧은 순간 서로의 상처 난 영혼을 발견한다. 에미는 그가 모로코의 작은 도시 티스미트에서 왔다는 걸, 지난 2년 동안 자신과 마찬가지로 죽도록 일만 했다는 걸, 그의 이름이 아랍계 노동자를 통칭하는 ‘알리’가 아니라 ‘앨 헤디 벤 살렘 바렉 모하매드 무스타파’라는 걸 안다.
알리는 에미가 네 명의 동료와 창문이 많은 8층 건물을 청소한다는 걸, 커피를 잘 타고 요리 솜씨가 뛰어나다는 걸, 부모의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한 폴란드인 남편과 20년 전에 사별하고 외롭게 살아간다는 걸 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제시와 셀린이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듯, 에미와 알리가 사랑에 빠진 이유도 설명할 수 없다. 굳이 찾자면 제시와 셀린을 맺어준 게 설레는 불안이라면, 에미와 알리를 연결한 건 외로움이란 불안한 현재다.
60대 여성과 40대 이주노동자의 사랑은 예상한 그대로 흐른다. 에미의 직장 동료들은 그녀를 ‘남자한테 환장한’ 여자에 비유하며 외면하고 알리의 친구들은 ‘깨지는 건 볼보 듯 뻔’하다 말한다. **에미의 자식들마저 ‘추하다’며 에미의 집을 ‘돼지 우리’에 비유하고, 에미의 단골 식료품가게 사장은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알리를 조롱하고 물건을 팔지 않는다. 그들은 정식으로 결혼하고 그 사랑이 진실하다고 눈물로 항변하고 절규하지만 소용없다.
“당신을 사랑해요. 여기서 모르코 만큼. 우리 떠나요. 우릴 노려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돌아오면 모든 게 달라져 있을 거예요.”
결국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 사랑의 도피다. 두 사람은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면 모든 게 달라져 있을 거라 믿는다.
흥미로운 건 파스빈더 감독이 영화 속에서 여행을 담는 방식이다. 이 작품에서 여행은 이야기 전개에 있어 무척 중요하다. 두 사람을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는 여행 전과 후로 극명하게 나뉜다. 여행을 다녀왔을 때 에미의 자녀와 직장동료, 그리고 이웃들과 식료품 가게 주인 등 모두가 화해를 시도한다.(각자의 잇속이 있었지만) 여행은 이야기의 큰 변곡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두 사람의 여행은 단 한 장면도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이 여행을 떠나기로 다짐하며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다음 장면은, 여행이 끝나고 택시에서 가방을 내리는 두 사람이다. 그게 전부다.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여행. 그렇지만 모든 게 바뀌어 있다. 주변만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그들은 뒤늦게 자신들의 사랑이 동정이나 연민은 아닌지, 진정한 사랑인지 의심한다. 에미는 직장동료에게 알리의 팔 근육을 만져보라 희롱하고, 알리는 정비공장을 찾아온 에미를 동료들과 함께 조롱한다. 알리는 아랍음식 쿠스쿠스를 만들지 않는 에미가 원망스럽고 에미는 알리의 향수병을 이해할 수 없다. 결국 알리는 술에 취해 들어오고 옛 연인과 잠자리를 하고 도박에 빠져든다. 하지만 두 사람은 처음 만났던 바에서 서로의 사랑을 재차 확인한다. 알리는 다시 에미에게 말한다.
“나랑 같이 춤출래요?”
이 장면을 좋아한다. 앞서 말했듯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는 여행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보고나면 여행을 다녀온 것만 같다. 이주노동자 알리와 원주민 에미의 친구들이 여행자와 현지인의 시선을 비틀어 놓은 듯 느껴져서 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가진 이 영화가 춤으로 시작해 춤추는 끝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춤을 추는 동안 세상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에게 밀착하며, 둘만의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다. 아마 영화에 나오지 않는 여행에서도 두 사람은 아랍 음악을 틀고 춤을 췄을 것이다. 그래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우리를 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두 사람만의 여행지, 슈타인 호수로 데려간다.
<비포 선라이즈>는 <비포선셋>을 지나 <비포 미드나잇>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라 좋다. 물론 스물세 살은 <비포 선라이즈>의 일탈과 낭만을 동경하고, 마흔한 살은 <비포 미드나잇>까지 이어졌을 때 ‘이게 인생이지’라고 느끼겠지만.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만 존재했다면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와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는 영화였겠다. <비포 선셋>을 지나 <비포 미드나잇>으로 이어져 두 영화는 왠지 닮은꼴이라 여기게 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영화가 끝나갈 때 즈음, 에미는 춤을 추며 외도를 고백하는 알리에게 말한다.
“당신의 주인은 당신 자신이에요. 당신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요.…하지만 같이 있을 때 우리 서로를 아껴줘요. 그렇지 않으면 인생은 살 가치가 없어요.”
이 말은 <비포 미드나잇>에서 제시와 셀린을 초대한 그리스 소설가가 했던 말과 겹친다.
“결국 중요한 건 상대방의 사랑이 아니라 삶 전체의 사랑이야.”
그리고 이 말은 역설적이게도 여행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나의 미래 역시 뻔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근심에서 출발해(<비포 선라이즈>), 우리의 사랑이 한 때의 치기는 아닐까 하는 의심을 거쳐(<비포 선셋>), 결국은 후회 없는 사랑의 선택을 하지만(<비포 미드나잇>), 18년이 지난 후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한다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벗어난 둘만의 오붓한 여행에서 셀린은 제시에게 기어이 선언하고 마는 것이다.
“더는 당신을 사랑 안 해.”
그래서 <비포 미드나잇>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제시에게 결별을 선언한 셀린은 호텔 방을 떠나고(셀린은 그리고 나서도 다시 한 번 호텔방으로 돌아온다) 제시는 잠시 후 그녀가 앉아있는 노천의 카페를 찾아간다.(제시는 셀린이 어디로 갈지 알고 있다) 제시는 셀린의 옆자리에 앉아서 미래의 여든두 살 셀린이 지금의 셀린에게 건네는 편지를 꾸며 읽는다. 둘은 그 자리에서 몇 차례 더 다툰 다음 화해한다. 영화는 화해한 두 사람에게서 조금씩 멀어지며 끝이 난다. 물론 두 사람의 갈등을 촉발한 양육과 직장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다.
이 장면은 일상에 잠식된 우리의 불안은 우리의 여행과 마찬가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계속될 것이라는 걸 잘 보여준다. 그 불안에 흔들릴 수 있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여행이 끝나고 또 우리가 여행이라 믿었던 하루가 현실에서 연장된다고 해도 결국은 현재에 귀속되고 말거라고. 하지만 달라질 게 없다는 건 절망이지만 희망이기도 하다. 한결같다는 말은 변함없는 사랑과 지루한 사랑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니까. 첫사랑의 순수했던 추억이 깨지는 것 같은 쓸쓸한 일이지만(그걸 걱정한다면 <비포 선셋>까지만 보기를 권한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출발해 제시&셀린과 함께 나이를 먹은 영화팬들은, 이 또한 새로운 여행의 한 장이라는 걸 묵묵하게 그리고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격한 공감까지도.
+ 페이드아웃, 여행이 끝났을 때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 단 한 장면의 여행도 없듯, 여행이 그들의 삶을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했듯, 실상 여행은 우리의 인생과 사랑 모두에 답이 되지는 못한다. 그래서 <비포선라이즈>는 9년 후 <비포 선셋>을 거쳐 다시 9년 후 <비포미드나잇>에 이르러서도 결론을 유보한 채 여행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우리가 우리를, 우리가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사랑을 신뢰하게 된다는 것 또한 말하고 있다.
우리는 불안과 다투지만 또 함께 여행하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를 여행하게 만드는 것은 그리고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 역시 불안이다. 아닌 척하고 살아가지만 모두가 불안하다. 그래서 여행을 떠난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를 보면 그들처럼 나이 먹길 바라지만, 실상 그런 부부가 얼마나 될까? 그들 역시 젊어서는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내다 늙어서 화해하고 손을 잡았는지 모를 일이다.
사랑과 여행만큼 불안하면서도 설레는 건 없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우리가 불안한 존재라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일상적 불안을 벗어나 미지의 불안으로 떠나는 것이다. 그것이 여행이다. 그리고 그 미지의 삶 속에도 불안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은 후, 일상적 불안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모자란 그대로 사랑해야겠다, 또는 살아 나아가야겠다 다짐하는 것일 테지. 그래서 여행은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한 이들의 영원한 도피처이고, 우리는 ‘행복은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