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가 나에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by 박상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바닷가를 따라 오래 걷자.”



이 영화는 내게 질문이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제목 끝에는 보이지 않는 물음표가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 묻는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랑 후에 남겨질 것은 무엇일까? 외롭고 두렵게 살아가는 일을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 슬픔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때 슬픔은 물컹하고 축축한데 형체가 없어 가늠할 수 없다. 그 슬픔을 사랑이라고 했을 때 내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사랑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추모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뿐이다. 사랑을 잃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이유는 그 자신이 이별로부터 너무 빨리 멀어지려 하기 때문이다.

잊는 게 아닌 잊혀진다는 것, 사는 게 아닌 살아진다는 것.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피동태일까? 트루디(하넬로레 엘스너)를 보낸 루디(엘마 베퍼)는 이별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그 안간힘은 안쓰럽지만 그로 인해 살아가는 힘이 된다. 그는 홀로 남아 사랑하는 그 시간 속에서,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이 아니라 사랑이 남긴 것들을 만난다.


영화가 시작되면 후지산을 그린 우키요에 목판화가 화면을 채운다. 그 위로 아내 트루디의 나래이션이 흐른다.

“남편 없이 구경하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혼자서 보는 건 의미가 없었다. 그 사람 없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다음 장면은 병원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있는 트루디다. 의사는 남편의 남은 날을 알 수 없다 말한다. 그러니 남편과 함께 ‘여행이나 지금까지 못해본 것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고. 남편의 시한부 생을 설명하는 것 같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루디와 트루디 가운데 누가 죽음의 선고를 먼저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트루디가 좋아하는 그림자의 춤 부토처럼 죽음은 ‘누구나 그림자가 있으므로 누구나 출 수 있는 춤’이다. 우리 가운데 ‘누구든 죽고 또 살아 있다. 동시에’.

루디는 모험을 싫어하고 변화 없는 삶을 좋아한다. 아침 7시 28분에 출근해서 12시에 점심을 먹는, 정해진 삶을 무뚝뚝하게 반복한다. 20년 동안 아팠던 적은 독감에 중이염으로 딱 한 번 일주일 앓은 게 전부다. 무엇보다 트루디의 말과는 달리, 루디야 말로 트루디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다.

아내 트루디는 젊어서 부토 무용수였을 만큼 새로운 걸 좋아한다. 루디에 비해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 역시 너그럽다. 트루디는 루디와 결혼하며 자신의 꿈을 접는다. 둘의 관계는 고전적인 동양의 부부를 닮았다. 트루디는 루디의 삶 하나하나를 보살핀다.


병원에 다녀온 트루디는 루디에게 병세를 전하지 않는다. 대신 의사의 권유대로 여행을 떠난다. 베를린에 있는 자식들을 만나러 간다. 트루디 부부가 자식들을 만나 베를린을 여행하는 과정은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동경이야기>의 일부를 차용했다. 자식들은 사는 게 바쁘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부모의 방문이 반갑지 않다. 트루디와 루디는 발트해에서 그들만의 여행을 잇는다. 바다 빛을 닮은 트루디의 스웨트를 반쪽씩 나눠 입고서는 끝이 멀지 않은 노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루디를 보며 트루디가 묻는다.

“만약에 우리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얼 제일 하고 싶어.”

바다를 보며 루디가 답한다.

“매일이 최후인 것처럼 살아라 라는 말은 엉터리야. 새삼스럽게 뭘 하겠어? 늘 하던 대로 아침엔 출근하고 저녁엔 당신에게 돌아가야지.”

루디는 숙소로 돌아가며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바닷가를 따로 오래 걷자’ 말한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트루디는 잠든 채로 세상을 떠난다. 자식들은 트루디 없이 홀로 남겨진 루디를 걱정하지만, 그건 누구도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루디는 트루디가 떠나고나서야 ‘서로가 있으니까, 그게 젤 큰 행복’이라던 자신의 말을 체감한다. 그건 서로가 있을 때 알 수 없는, 홀로 남아 알게 되는 진실이다.


트루디와 루디의 삶은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을 떠올리게 한다. 무뚝뚝한 아버지와 다감했던 어머니. 동생과 나는 투로디와 루디의 자식들처럼 아버지를 두고 어머니가 먼저 떠날 것을 걱정하곤 했다. 건강하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년 후 어느 봄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병든 아버지를 우리 곁에 홀로 두지 않고, 당신 또한 병든 채 우리 곁에 누워 있지 않겠다던 바람처럼 병을 앓은 지 보름만에 수술 후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한 동안 그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슬픔을 견디려 애쓸수록 더 깊은 슬픔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얘기치 않은 죽음은 두 배의 상처를 남긴다. 루디는 트루디가 떠나고 나서야 루디의 말들을 떠올리고 루디의 꿈을 들여다본다. 내가 엄마의 죽음 후에 그러했듯.

“늘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후지산과 벚꽃을 그와 함께 꼭 한 번 보고 싶었다.”

루디는 트루디가 보고싶어 한 후지산을 보기 위해 일본으로 떠난다. 도쿄에서 일하는 막내 아들 칼의 집에 묵으며 루디는 생각한다. 트루디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루디는 어느 날 칼과 심하게 다투고 나서야 자신이 일 속에 숨어 살았다는 걸, 트루디를 이해한 적이 없다는 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트루디를 사랑하고 기만했다는 걸 안다.

"왜 두 분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그날 이후 루디는 코트 안에 트루디의 파란색 스웨터를 입고 도쿄의 거리를 거닌다. 벚꽃 아래를 걸을 때는 코트 앞섶을 연다.

“여보, 당신도 좀 구경해 봐.”


어느 날은 공원을 걷다 부토를 추는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트루디를 보고, 자신과 똑같은 슬픔을 본다. 부토 춤을 추는 소녀 유는 ‘죽은 이와 춤을 춘다’ 말한다. 일 년 전 어제 죽은 엄마와. 전화하는 걸 좋아하던 엄마를 떠올려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부토를 춘다.

“난 항상 엄마와 통화 중이에요. 엄만 내 속에 있죠.”

그때 유의 수화기는 가장 아름답고 덧없음의 상징, 밤새 피어나 며칠을 머무르다 사라지는 벚꽃 빛깔이다. 그녀가 부토를 출 때 벚꽃 잎은 붙잡을 수 없는 지난날처럼 흩날린다. 루디는 유의 가르침 대로 과거의 기억과 바람을 따라 부토를 추며 자신 안에 있는 트루디를 느낀다. 그리고 루디는 유와 같이 트루디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후지산을 향한다.

"내게 남은 그녀의 기억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료칸에서 심하게 앓은 날의 새벽,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후지산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루디는 부토 무용수의 하얀 분을 바른 후 트루디의 기모노를 입고 후지산이 보이는 호수에서 부토를 추다 생을 마감한다. 그 마지막 순간, 트루디는 루디를 마중하며 같이 부토를 춘다.


나는 트루디가 떠난 후 루디에게 남겨진 것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반쪽이 빈 침대,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실내화, 주인 없는 옷들, 도움 없이 몸을 숙여 스웨터를 입는 일. 그 모든 쓸쓸한 날들을 떠올리면 아버지를 떠나보낸 내 어머니의 날들을 되새긴다.

아버지가 떠난 집에 혼자 남아 있던 어머니, 어머니가 떠날 때까지 사라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영정 사진. 동생과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던 집을 서둘러 정리했다. 우리는 그 슬픔으로부터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다. 당신들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후회한다. 그 집에 남겨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취를 좀 더 오래 들여다보고 추억할 걸 하며.

지난 봄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아 넘기던 꽃 풍경이 아쉬워 여행을 다녀왔다. 벚꽃이 지고 복사꽃이 한창인 철이었다. 복숭아처럼 싱그러운 꽃을 보고 있으면 ‘무릉도원’이 어떤 풍경일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어 좋았다.

그날은 장적하고 봄비까지 내렸다. 연못 주위 마을 가득 뽀얀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자그마한 연못가를 거닐며 봄 애상에 젖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나가는 길가에도 복사꽃이 마중하고 배웅했다. 버스 창가에는 시샘하듯 봄비가 더 거세져 들이쳤다. 버스 라디오에서는 박인희의 ‘봄이 오는 길’이 흘러나왔다.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 온다네~’

산 너머 조붓한 오솔길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빗속에서 산 너머 오솔길을 걷는 연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 연인이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뒷모습일거라 생각하자 조붓하다는 말이 선명하다. 어머니는 병석의 아버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휴대폰에 저장하곤 했다. 병원을 자주 오가던 시절 아버지는 ‘왕애물’이었고,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는 시간이 길어지며 ‘애물’은 ‘봄이 오는 길’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기대는 마음이 커졌다. 어머니가 길게 자리를 비울 때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에 있냐고. 어머니 휴대폰에는 그 말보다 ‘봄이 오는 길’이 먼저 떴겠다. 병원으로 가는 어머니의 마음은 ‘봄이 오는 길’이었을까,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그때는 아닐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알지 못하겠다.


가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를 만났을 먼 땅을 생각한다. 그곳에도 봄이 올까? 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아버지의 이름이 ‘봄이 오는 길’이 되기 이전, 어머니가 내게 찾아달라고 한 노래 목록에는 박인희의 ‘봄이 오는 길’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한참이 지난 내 휴대폰의 어머니 문자를 뒤지다 알았다.

‘어차피 찾아오실 고운 손님이기에 곱게 단장하고 웃으며 반기려네.’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노랫말이 어머니의 목소리처럼 와 닿는다. 그때는 이 노랫말이 어머니의 마음인 걸 몰랐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떠났던 계절은 복사꽃이 활짝 피던 봄이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다시 만난 그곳 또한 봄꽃이 가득한 무릉도원이겠지. 어머니는 그 길을 걸어 아버지를 만나러 봄나들이를 떠난 것이겠지.





+ 페이드아웃, 여행이 끝났을 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우키요에 목판화 속 후지산에서 시작해 실제 후지산의 풍경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투루디와 루디는 이제 그림이 아닌 풍경을 여행하고 있을 것이다. 같이 부토 춤을 추면서. 유는 트루디의 아들 칼과 트루디를 화장하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말한다.

“이제 행복하실 거예요.”

그녀가 보여준 사진에는 트루디가 루디에게 요리해주던 양배추롤, 콜롤라덴 두 개가 나란히 누워 있다. 루디는 트루디의 영혼과 함께한 마지막 도쿄 여행으로 행복했을까?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그것은 사랑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다. 사랑은 둘에게만 속해 있는 것이고 둘 사이에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다. 그리 생각하니 먼저 떠난 아버지의 무뚝뚝한 사랑이 궁금하다. 내가 알던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걸 안다.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은 눈에 어른대지만, 사랑 후에 남은 것들은 마음 안에 살아 있다

어머니는 왜 그리 빨리 세상을 떠났을까? 아버지의 빈 자리가 쓸쓸했을까? 두 사람은 서둘러 만나고 싶었을까? 가끔은 막내아들 칼처럼 어머니가 너무 그리워 운다. 아름다운 여행을 할 때는 꽃을 좋아하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고 바란다. 내가 도착한 모든 곳이 어머니가 제일 가고 싶어하던 곳이었기를, 어머니의 그림자가 나를 따라 여행하고 있기를. 복사꽃 핀 봄이 오는 길목을 지날 때마다 나는 자꾸 묻곤 한다.

나에게도 어머니의 사랑이 유전할까?

이전 01화사랑의 도피, 여행 불안을 잠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