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기다리던 여름 방학이었다. 꿀 같은 늦잠의 일주일이 지나자 예정된 수순이 다가왔다. 우리 남매의 무료한 여행. 목적지는 할머니의 과수원이었다. 부모님은 우리 남매가 방학 중 며칠을 할머니와 보내길 원했다. 우리는 오지 여행을 준비하듯 채비했다. 장난감과 인형을 모두 긁어모았다. 할머니의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았으므로, 부모님에게 비상식량으로 쓰일 간식을 넉넉히 부탁했다.
시내에서 떨어진 할머니의 과수원은 외딴 섬 같았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10년 넘게 혼자 지냈다. 가까운 이웃은 과수원의 너비만큼 떨어져 있었다. 우리의 놀이터나 친구 삼을 만한 또래는 없었다. 달력에서 하루하루를 지워나가는 게 우리의 중요한 일과였다. 밤에는 부엉이가 울었다. 부엉부엉 하는 소리가 우리 남매의 여름밤을 위협했다.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당신의 보물창고를 열어, 직접 담근 포도주 한 잔씩을 내주었다. 우리는 그 달달한 맛에 취해 잠이 들곤 했다.
그날도 지루함을 견뎌내려 방과 방 사이를 넘나들었다. 할머니의 사진첩에서 아버지의 어릴 적 모습을 찾아보기도 하고, 창고를 대신한 다락방에 숨은 보물이 있지는 않을까 한참을 뒤적였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은 시냇물처럼 졸졸졸 따라다녔다. 그게 귀찮아 떼어놓으려 해도 숨을 만한 장소는 뻔했다. 동생은 금세 곁에 와서는 ‘심심해’를 연발했다.
다락방을 뒤지는 것도 심드렁해진 우리는 점심을 먹고 마룻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할머니가 후식으로 건넨 사탕 하나를 천천히 녹여 먹으며 땀을 식혔다. 바람 한 점 없는 노곤한 날이었다. 햇살이 마루 깊숙이 스몄다. 나는 손을 뻗어 그 빛을 가렸다. 일식처럼 가려진 햇볕이 한 줌 주먹 안에 잡혔다. 손을 펴자 손가락 사이로 다시 빛이 쏟아졌다. 눈이 부셨고 그늘이 졌고 눈이 부셨다.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숨이 멎는 걸 느꼈다. 꿈인가? 꿈은 아니었다. 눈을 떴고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몇 차례 억지 기침을 하며 안간힘을 썼다.
켁!켁!켁!
그 때마다 목구멍으로 달콤한 침이 넘어갔다. 잠결에 입에 물고 있던 사탕을 삼켜버린 것이었다. 달달한 그것은 내가 잠든 사이 입안에서 조금씩 녹아내리다 목구멍으로 미끌어져 기도를 타고 넘어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사탕이란 걸 깨닫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입 안 가득 달콤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해서, 또 달콤한 그것이 잠들기 전 물고 있던 사탕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그 달콤한 사탕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라졌다는 사실 때문에, 이뤄질 수 없는 달콤한 꿈을 꾼 것 같아서, 나는 잠에서 완전히 깨고 난 후에도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동생은 세상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달콤한 사탕의 여운은 입 안에 가득한데 내게는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만이 온전했다. 뒤늦게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다. 눈물이 났다. 할머니가 놀라 뛰어나왔다. 나를 끌어안고 등을 다독였다. 할머니는 눈물의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내 눈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다. 나조차 쉬이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서러웠다. 내가 상실한 것은 녹다만 사탕 뿐인데, 내가 서글픈 건 사탕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서글픔이었다. 내 울음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다. 부엉이 울음 같았다. 포도주가 바닥난 주전자 같았다.
<남매의 여름밤>은 옥주와 동주가 할아버지 집에서 보낸 여름 방학 이야기다. 김소미 <씨네21> 기자는 이 영화의 20자평을 ‘나를 이루는 당신들을 물끄러미, 그리고 덩그러니’라고 썼다. 이보다 적확한 그리움은 없다. 옥주와 동주의 방학은 우리 남매들이 보낸 여름과 닮아 있다. 그곳으로 이끈 어른들의 이유는 다르지만 남매가 보낸 여름의 풍경은 비슷하다. 나는 2시간 가까이 ‘나를 이루는 당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옥주와 동주의 할아버지가 혼자 사는 집은 텃밭 정원이 있는 2층 양옥집이다. 동생 동주에게는 할아버지 집에서 보내는 여름 방학 여행이지만, 조숙한 옥주는 그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한 탓이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다. 심심한 남매의 날들이다. 며칠 지나 옥주와 동주의 고모까지 가세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남매 그리고 동주와 옥주 남매는 그렇게 한 집에서 방학을 보낸다. 이들이 한데 모여 보내는 여름은 계절의 온도만큼이나 따뜻하다. 이혼을 선언한 고모의 남편이 찾아와 잠시 소란스럽고, 옥주는 쌍꺼풀 수술비용을 마련하려 아빠가 파는 짝퉁 운동화를 몰래 훔쳐 거래하다 들통이 나기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생일 파티에 가족들이 모여 노래하고 케이크를 나누는 모습은 조촐할지언정 초라하지 않다. 그리고 그 요란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 마음 한켠에 ‘덩그러니’ 남을 일들이 생겨난다.
할아버지의 생일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음악소리가 옥주의 잠을 깨운다. 옥주는 음악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다 거실에 할아버지가 홀로 있다는 걸 알아챈다. 계단에 앉아 할아버지를 몰래 지켜보던 옥주는, 남겨진 계단의 숫자만큼 할아버지와 자신 사이에 놓인 세월을 본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듣고 있는 *노래에 소중한 무엇이 담겨 있다 막연히 짐작한다. 그런 장면은 어른이 되어서도 유독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길을 걷다 어디선가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 어렴풋하던 할아버지의 고독을 비로소 체감한다. 나이를 먹어야 알 수 있는 것들, 뒤늦게 오는 이해들, 그때서야 비로소 그것들은 기억이 아닌 추억이 된다.
옥주의 고모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다.
“갓난아기일 때 할머니가 나를 안고 횡단보도를 막 뛰어갔어. 진짜 생생했거든. 어렸을 땐 그게 내 기억인 줄 알았어. 근데 생각해봐라? 포대기에 싸인 내가 보이는 거면 그건 기억이 아니라 꿈인 거잖아.”
까맣게 잊고 있던 기묘한 추억은 그렇게 가끔 고모의 꿈에 나온다. 옥주는 고모의 꿈에 할머니가 나오는 게 신기하다. 하지만 고모는 그것이 신기함이 아닌 옥주의 그리움이라는 걸 안다. 나이를 먹어서 선명해지는 감정들, 뒤늦어서 알게 되는 기쁨과 슬픔들이다.
옥주의 아버지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늦잠을 자고 있던 동주를 흔들어 깨운다.
“너 학교 안 가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깬 동주는 시계를 보고는 깜작 놀라 세면대로 달려간다. 그리고 잠시 후 크게 웃으며 아버지 곁으로 돌아온다.
“아이, 방학이잖아. 잘 자고 있었는데.”
아버지의 짓궂은 장난은 실은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의 아버지에게 했던 실없는 행동이다. 유별날 것 없는 그런 평범한 일상은 이상하게도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 있다.
“그땐 그게 얼마나 세상 무너지는 일인지.”
학교를 가지 않는 게 세상 무너지는 일이었던 날들 속 남매의 여름방학. 어른들은 알 수 없는 그 시절의 세상은, 또는 고모의 꿈처럼 어른이 되어야 풀리는 수수께끼는, 남매의 가슴 속에 추억의 자리를 만든다.
<남매의 여름밤>은 후반부에 이르러 좀 더 큰 사건이 일어난다. 지병이 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옥주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꿈을 꾼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가 다녀가는 꿈, 할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가족이 한데 모여 밥을 먹으며 행복해 하는 꿈이다. 옥주가 잠에서 깼을 때, 동주는 옥주가 잠든 동안 엄마가 다녀갔다 말한다. ‘깨우지 말라’는 말과 함께. 옥주가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엄마는 꿈처럼 다녀갔다. 옥주는 더 이상 엄마가 꿈에 나오는 게, 할머니가 고모의 꿈속에 나오는 게 신기하지 않다. 고모의 말처럼 그냥 엄마가 보고 싶은 거라는 걸 그제야 안다.
아버지와 옥주와 동주는 장례를 끝내고 할아버지가 없는 할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온다. 옥주는 쉽사리 집안으로 발을 들이지 못한다. 그 빈자리에 몽글몽글한 잔상이 물방울처럼 터질 것만 같아서. 그리고 저녁을 먹다 뒤늦게 밀려든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린다. 옥주는 그것이 엄마를 만나지 못한 데서 오는 그리움인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픈 것인지, 아니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상실감은 너무도 선명해서 옥주는 자신의 방에서 밤새 울다 잠이 든다.
영화는 다음 날 아침 잠든 옥주를 비추고, 거실에 걸린 할아버지의 결혼사진을 보여주고, 아빠와 고모가 이야기를 나누던 2층 테라스를 거쳐 집안 곳곳을 천천히 굽어 살펴본다. 이제 집을 떠나는 할아버지의 시선일 테다. 그때 흐르는 영화음악은 할아버지가 생일날 거실에 혼자 들었던 *김추자의 노래 <미련>이다.
‘기약한 날 우린 없는데 지나간 날 그리워하네, 먼훗날에 돌아오라며 변함없이 다정하리라’
추억은 가슴에 남고 기억은 머리에 남는다. 모든 기억이 추억이 될 수 없듯, 기억되지 않는 추억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일 테다. 그럼 머리에 남은 기억 가운데 어떤 것들이 가슴으로 옮겨가 추억이 될까? 살아가다보면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날이 있다. 그리고 그 날들은 큰 사건이 아닌 소소한 장면으로 추억이 된다. 옥주는 방학이 끝나갈 때 즈음의 어느 날 동생 동주에게 사과한다.
“저번에 누나가 때려서 미안해.”
“우리가 싸운 적이 있었나? 잘 기억이 안 나네. 괜찮아. 간디도 옛날에 조폭이었데.”
또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 동주는 누나의 사과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한다면 상처나거나 상처낸 마음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던 어떤 날의 다른 일로 기억할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의 늦잠을 깨웠던 그날 아침처럼 어떤 다행한 일이 있었다고. 하지만 정작 기억나지 않는 본래의 일들, 우리가 기억하는 건 바다가 아니라 바다의 짠맛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 짠맛으로 인해 우리는 그곳이 바다였다는 걸 오래도록 잊지 않을 수 있다. 떠올려 힘이 되는 작은 추억들, 그것은 마치 긴 인생에 있어 여름방학처럼 느껴진다.
+ 페이드아웃, 여행이 끝났을 때
나의 할머니는 나에게 방학이란 게 사라진 스물여덟 살의 가을날 돌아가셨다. 엄마의 전화를 받고 고향 집으로 내려가며, 나는 자두맛 사탕을 삼켜버린 어린시절의 여름방학을 떠올렸다. 할머니는 이미 과수원을 벗어나 읍내에서 살았다. 2층의 양옥은 아니었지만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홀로였다. 그 집에서 할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치르는 사흘 내내 눈물이 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좋아했던 찬송가를 부를 때도.
그 죽음을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입관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을 잡아보고 싶다 아버지에게 말했다. 주검이 된 할머니의 손은 거칠고 차가웠다. 살아서 지낸 삶의 거친 흔적이 손가락 마디마디 남아 있었고, 이제는 그 삶이 끝났으므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안간힘을 썼고 간신히 눈물이 흘렀다. 비로소 죽음이 실감 났다.
우리가 기억하는 유년의 여행은 대부분 방학으로부터 비롯한다. 심지어 방학이 아닐 때조차 방학으로 기억되곤 한다. 어른이 되면 다시 갖지 못할 해방과 자유, 방학은 스무 살 이전의 아이들에게만 주어진 삶의 유예기간이며, 생의 자양분이 만들어지는 특별한 여행의 시간이라 그럴 것이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많은 것들이 그날들로부터 시작될 거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지나야만 알 수 있다. 찬란한 기쁨과 환희, 힘들어 벗어나고 싶은 고통,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무료한 하루의 작은 장면들 속, 무엇이 미래의 나에게 가닿을지 그때의 나는 알 수가 없다.
할머니의 외로운 시간을 같이 견뎌내는 것, 그건 우리 남매에게 주어진 방학숙제였다. 그날 계단에서 할아버지를 지켜보던 옥주처럼 인생은 점점 외로워지다는 걸,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는 걸, 어른이 된 이제는 안다. 그리고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달콤한 날들이 숨 막힐 수 있다는 걸, 정작 숨 막히는 공포는 무심하게 찾아오기도 한다는 걸,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외로움 때문에 잠을 설치기도 한다는 것을.
어떤 여행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의 예습 같다. 지금은 할머니와 보낸 과수원의 날들이 그립다. 뜨거웠던 여름 방학도, 무료하고 지루하던 시간도, 그 달콤한 추억들은 지금껏 내 안에서 녹아내리지 못한 채 삶의 어떤 순간이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그 여름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덩그러니’ 남겨진다. 어떤 날에는 환한 대낮에도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슬픔과 아픔 그리고 내가 느꼈던 지난날의 그 모든 감정을 잊지 말라 간곡히 부탁하는 듯하다.
*할아버지가 들었던 노래는 장현이 부른 ‘*미련’이다. 영화 마지막에는 김추자가 부른 ‘미련’이 나온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엘리오의 아버지가 엘리오에게 했던 대사를 응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