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지긋한 우울이 언제 끝나죠?
아빠는 평소엔 입이 무겁다. 술이 한 잔 들어가면 사람이 어찌나 계란찜처럼 유들 거리고 해맑게 잘 웃는지 모른다. 아빠가 술 없이도 웃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초등학생인 막내 눈에도 그게 보인다.
나는 아빠가 술 없이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웃어요.
막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빠를 쳐다본다. 아빠는 오랜 세월 힘들게만 살아서 센 척하는 게 몸에 배었다. “힘을 빼는 법을 몰라서 그래.”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아빠가 한 잔 기울이고 기분이 좋아져서 약속을 남발한다. 돈을 모아서 큰 집을 사고 내 방도 하나 해준다고 한다. “그러면 나 시집 안 가고 평생 엄마 아빠랑 살래! 내 동생들이 조카 나을 거니까. 조카 걱정은 말고!”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눈물을 왈칵 참았다. “너 그렇게 말하면 아빠 눈물 나. 언제든 네가 와서 머물 방 하나는 만들 거니까 시집은 가.”
아빠 소원은 내가 시집가는 거다. 어릴 적 아빠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내가 결혼을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렇다. 내가 연애를 못하면 아빠는 그렇게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자기 때문에 못하는 걸까 봐. 내가 전 남자 친구랑 헤어졌을 때 아빠는 잘했다고 했지만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아직 엄마 아빠 곁이 좋다. 밖에서 무시당하면서도 열심히 일 하는 두 분께 맛있는 거 사드리고 말동무도 하고 싶다.
엄마 아빠는 내가 독립하는 게 소원이다. 남들처럼 사회생활하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기 낳는 것을 바라고 있다. 평범해 보여도 제일 어렵고 힘든 과정들이다. 나도 내가 그런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은 있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우울하다고 병원 진단을 받았던 내가 조금씩 걸음을 떼어 지금 회사를 다니며 사회생활을 한다.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내가 우울증 약을 먹는 사람인지 모른다.
불과 몇 년 전으로 돌아가면 나는 사람이 무서워 고개를 들지 못해서 바닥만 보고 걷다가 어깨빵을 당하는 삶이었다. 주변 사람이 말을 걸면 동문서답을 하느라 대화에 끼지 못했다. 계절 감각도 없어서 겨울에 춥게 입고 여름에 덥게 입었다. 아빠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밤에 온갖 환청 때문에 잠에 못 들거나 잠에서 깼다.
그런 내가 사회생활을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내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 아주 어렴풋한 안개처럼 저 슬며시 보이는 것 같다. 우울에서 언제쯤 벗어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매일 질문했던 것이 폭력인지 몰랐다. 변화가 없어 보일 때. 오히려 나는 매일 우울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매일이 똑같아도 이제는 다그쳐 묻지 않는다. 오늘도 나는 우울을 통과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