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할리
엄마가 말했다.
네 아빠, 여자 친구 생겼다.
엄마는 아빠가 요즘 그렇게 시간만 나면 놀러 나간다고 했다. 아빠는 멋있게 바이크 복장을 차려입고 가죽 바지에, 가죽 장갑에, 헬멧에 풀 착장을 하고 집을 나서려고 한다.
“저봐, 또 여자 친구랑 놀러 간다.”
아빠는 그 말에 씩 웃는다. 다녀올게! 한 마디 남기고 아빠는 떠났다.
“엄마! 아빠가 여자 친구 만나는 걸 냅둬?”
“할리 X이 나보다 좋다는데 어떡해.”
“그 X 이름이 할리야?”
나는 금발 머리의 섹시한 뒤태를 떠올리며 물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리. 할리 데이비슨.”
이쯤이면 눈치챈 사람이 더 많겠다. 아빠 여자 친구는 그 유명한 오토바이다.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비행기 타고 건너온 할리 데이비슨이란다. 나는 그냥 오토바인 줄 알았는데 어떤 종류는 내 연봉보다 비싸다. 아빠는 그 오토바이를 만난 순간부터 뜨겁게 사랑에 빠졌다.
아빠가 위험하게 보이는 바이크를 취미로 탄다고 하니 나는 걱정이 됐다. 나보다 더 난리가 난 것은 엄마였다. 오토바이 타다가 사고가 나면 얼마나 위험한지 아빠에게 매일 잔소리를 했다. 그거 팔라고, 팔라고 얼마나 말했는지 모른다.
아빠는 그 말에 꿈쩍도 안 했다.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쓸고 닦고 문지르고 타고 다시 쓸고 닦고 문지르고 커버를 덮어둔다.
나도 아빠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아빠가 바이크 옷을 풀착장 하면 인상부터 썼다. 아빠! 바이크 안 타면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겨울엔 춥잖아. 여름엔 덥잖아. 사고 나면 진짜 크게 다치고! 난 아빠가 바이크 탈 때마다 너무 걱정돼. 그 말에도 아빠는 조심할게 말하면서 마저 바이크 옷을 입었다.
아빠는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바이크 용품을 사곤 했다. 야금야금 여기저기서 모은 것이 벌써 진열장 한 곳을 가득 채운다. 할리 벨트, 카우보이 장화, 카우보이 모자, 미군 배낭, 승마 가죽 바지, 할리 데이빈슨 왕 패치를 단 바이크 가죽점퍼, 커스텀 헬멧 등…. 아빠는 바이크에 진심이다.
엄마랑 나는 주말마다 틈만 나면 바이크를 타고 떠나는 아빠를 보며 열심히 험담을 했다. 사고 나면 어떡하냐! 몸이 다칠까 봐 걱정이 된다! 추운데도 더운데도 기어이 나간다! 그렇게 자주 모녀의 은밀한 험담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엄마가 어느 날 빈티지 가게에서 할리 데이빈슨 벨트를 사 왔다. 엄마!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물었더니 엄마가 그랬다.
너네 아빠 이런 거 되게 좋아해.
갖고 싶어 했던 거야.
엄마도 어느 순간부터 아빠의 취미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말릴 수가 있냐고. 좋아하는 거 하게 해 줄래.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답답했다. 위험한 일을 계속하게 내버려 두냐는 생각에 속이 탔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젼을 보다가, 아빠가 왜 바이크를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도 아빠를 응원하게 되었다.
얼굴에 무서운 분장을 한 괴물이 나오자 아빠가 감탄을 했다. 너무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아빠 왜 괴물이 되고 싶어요? 내 말에 아빠가 그랬다.
사람들이 함부로 못 할 것 같아.
무섭잖아. 세고.
아빠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중학생 나이부터 사회에 뛰어들었다. 남들 가방 메고 학교 갈 때 아빠는 줄자를 들고 양장점에 출근했다. 양장점, 호텔 요리사, 해외 취업, 운송업을 거쳐서 아빠는 지금 계란을 배달한다. 영업과 운송을 같이 하는 일이라 서비스직이면서 힘도 써야 한다.
그 과정 동안 아빠가 평생 싸워야 했던 것은 사람들의 ‘무시’였다. 나이가 어릴 땐 어려서 무시당하고, 나이가 드니 가방 끈이 짧아서 무시당하고, 장년이 되니 직업이 서비스직이고 운송직이니 사람들이 쉽게 무시를 한다.
아빠는 그 억울함과 보상을 바이크로 푸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멋있다고 인정해주는 바이크 말이다. 그래서 아빠는 주말마다 그렇게 나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왔다.
대학도 나오고 기술직에서 일하게 된 내 모습과 아빠의 인생이 대비되면서 싸한 슬픔이 저며 들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아빠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아빠의 희생이 지금의 내 환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취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아빠에게는 또 다른 학대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번 아빠 생신 선물로 오토바이 헬멧을 사드렸다. 조심히! 안전히! 운전해야 또 다음 선물이 기다린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