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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감 Dec 27. 2021

아빠의 여자 친구를 만나다

그녀의 이름은 할리

엄마가 말했다.

네 아빠, 여자 친구 생겼다.


엄마는 아빠가 요즘 그렇게 시간만 나면 놀러 나간다고 했다. 아빠는 멋있게 바이크 복장을 차려입고 가죽 바지에, 가죽 장갑에, 헬멧에 풀 착장을 하고 집을 나서려고 한다.


“저봐, 또 여자 친구랑 놀러 간다.”

아빠는 그 말에 씩 웃는다. 다녀올게! 한 마디 남기고 아빠는 떠났다.

“엄마! 아빠가 여자 친구 만나는 걸 냅둬?”

“할리 X이 나보다 좋다는데 어떡해.”

“그 X 이름이 할리야?”

나는 금발 머리의 섹시한 뒤태를 떠올리며 물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리. 할리 데이비슨.”


이쯤이면 눈치챈 사람이 더 많겠다. 아빠 여자 친구는 그 유명한 오토바이다. 외국에 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비행기 타고 건너온 할리 데이비슨이란다. 나는 그냥 오토바인 줄 알았는데 어떤 종류는 내 연봉보다 비싸다. 아빠는 그 오토바이를 만난 순간부터 뜨겁게 사랑에 빠졌다.


아빠가 위험하게 보이는 바이크를 취미로 탄다고 하니 나는 걱정이 됐다. 나보다 더 난리가 난 것은 엄마였다. 오토바이 타다가 사고가 나면 얼마나 위험한지 아빠에게 매일 잔소리를 했다. 그거 팔라고, 팔라고 얼마나 말했는지 모른다.


아빠는 그 말에 꿈쩍도 안 했다. 주말마다 오토바이를 쓸고 닦고 문지르고 타고 다시 쓸고 닦고 문지르고 커버를 덮어둔다.

우리 아빠

나도 아빠에게 얼마나 잔소리를 했는지 모른다. 아빠가 바이크 옷을 풀착장 하면 인상부터 썼다. 아빠! 바이크 안 타면 안 돼요? 너무 위험해요. 겨울엔 춥잖아. 여름엔 덥잖아. 사고 나면 진짜 크게 다치고! 난 아빠가 바이크 탈 때마다 너무 걱정돼. 그 말에도 아빠는 조심할게 말하면서 마저 바이크 옷을 입었다.


아빠는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바이크 용품을 사곤 했다. 야금야금 여기저기서 모은 것이 벌써 진열장 한 곳을 가득 채운다. 할리 벨트, 카우보이 장화, 카우보이 모자, 미군 배낭, 승마 가죽 바지, 할리 데이빈슨 왕 패치를 단 바이크 가죽점퍼, 커스텀 헬멧 등…. 아빠는 바이크에 진심이다.


엄마랑 나는 주말마다 틈만 나면 바이크를 타고 떠나는 아빠를 보며 열심히 험담을 했다. 사고 나면 어떡하냐! 몸이 다칠까 봐 걱정이 된다! 추운데도 더운데도 기어이 나간다! 그렇게 자주 모녀의 은밀한 험담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엄마가 어느 날 빈티지 가게에서 할리 데이빈슨 벨트를 사 왔다. 엄마!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렇게 물었더니 엄마가 그랬다.


너네 아빠 이런 거 되게 좋아해.
갖고 싶어 했던 거야.


엄마도 어느 순간부터 아빠의 취미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말릴 수가 있냐고. 좋아하는  하게  줄래. 그렇게 말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답답했다. 위험한 일을 계속하게 내버려 두냐는 생각속이 탔다.


그러던 어느  텔레비젼을 보다가, 아빠가  바이크를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유를 알고 나도 아빠를 응원하게 되었다.


얼굴에 무서운 분장을 한 괴물이 나오자 아빠가 감탄을 했다. 너무 멋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어. 아빠 왜 괴물이 되고 싶어요? 내 말에 아빠가 그랬다.


사람들이 함부로 못 할 것 같아.
무섭잖아. 세고.


아빠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중학생 나이부터 사회에 뛰어들었다. 남들 가방 메고 학교 갈 때 아빠는 줄자를 들고 양장점에 출근했다. 양장점, 호텔 요리사, 해외 취업, 운송업을 거쳐서 아빠는 지금 계란을 배달한다. 영업과 운송을 같이 하는 일이라 서비스직이면서 힘도 써야 한다.



그 과정 동안 아빠가 평생 싸워야 했던 것은 사람들의 ‘무시’였다. 나이가 어릴 땐 어려서 무시당하고, 나이가 드니 가방 끈이 짧아서 무시당하고, 장년이 되니 직업이 서비스직이고 운송직이니 사람들이 쉽게 무시를 한다.


아빠는  억울함과 보상을 바이크로 푸는 것이었다. 보는 사람마다 멋있다고 인정해주는 바이크 말이다. 그래서 아빠는 주말마다 그렇게 나가서 스트레스를 풀고 왔다.


대학도 나오고 기술직에서 일하게 된 내 모습과 아빠의 인생이 대비되면서 싸한 슬픔이 저며 들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이 아빠에겐 당연하지 않았다. 아빠의 희생이 지금의 내 환경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빠의 취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빠의 마음을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이 아빠에게는  다른 학대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이번 아빠 생신 선물로 오토바이 헬멧을 사드렸다. 조심히! 안전히! 운전해야 또 다음 선물이 기다린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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