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남겨진 것을 찾는다
나에겐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것이 하나 있다. 내 힘으로 할 수도 없고, 답도 없는 숙제. 그것만 바라본 요 며칠은 답답했다. 다른 사람에게 구구절절 설명하지 못하고 평생 혼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삶의 일부가 있다는 것이 나를 허무하게 만든다. 그래서 연휴 내내 몸도 마음도 가볍지 않았다.
그 숙제는 아빠와 나의 관계다. 어색한 우리 사이는 명절이 되면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는 어색하다. 서로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사랑의 표현이 다르다. 아빠는 대화 대신 선물이나 필요한 곳까지 태워다 주는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하지만 나는 그게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내 사랑의 언어는 대화다.
아빠는 설에 한 마디도 안 하고 거실에서 자기만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있다. 아빠는 영화를 고를 때처럼 일상에서도 일방적이다. 몇 개 없는 가족 외식을 떠올려보면 아빠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러 가거나, 가족 외식이 끝나기도 전에 아빠는 친구들과 2차를 하러 떠나거나, 그 둘 중에 해당되지 않으면 가족 외식 끝에는 아빠의 기분이 안 좋아져서 다툼으로 끝나거나 이 셋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 집은 가족 문화가 별로 없다. 가족 여행도 간 적이 드물고, 가족 행사는 아예 없고, 명절에 모여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엄마랑 나는 전을 부치는 동안 아빠는 친구들이랑 놀러 나갔고 동생들은 각자 방에서 유튜브를 봤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슬슬 속상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 집은 가족 문화가 없지? 지금은 독립하기 전이니까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 있지만 우리가 독립했을 때엔 지금이랑 다를 텐데. 명절에 집에 가도 별 볼 일 없으면 동생들이 우리 집에 찾아올까? 지금부터라도 우리 가족만의 문화가 무언가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집이 재혼가정이라서 더 걱정이 되었다. 피가 섞인 가족도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데. 피가 안 섞인 우리가 가족이 되려면 유대감을 쌓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 아닌가 싶었다.
엄마에게 카페에 가자고 했다. 따뜻한 커피와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 엄마 우리 집은 명절에 가족 문화 같은 것도 없고, 이건 다른 얘기지만 일방적인 아빠 때문에 나도 점점 서운해져.
그랬더니 엄마가 미래의 일을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집에 잠깐 들러도 좋고, 못 와도 좋고, 명절 다음에 와도 좋으니 그건 신경 쓰지 말아. 그리고 가족 문화를 갖는 것은 좋은 생각이야.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윷놀이를 사 갔다.
어색한 네 명이 거실에 모여 앉았다. 쭈뼛쭈뼛 윷을 잡아 쥔 막내 동생이 물었다. 이거 어떻게 던져? 그 말에 나는 막내 동생이 육 학년이나 되어서 윷을 못 던지는 게 이상했다. 너 윷놀이 처음 해? 그랬더니 막내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포인트에서 나는 또 속상했다. 아빠는 뭐 하고 살았길래 막내가 육 학년이 되고 윷놀이 한 번 같이 놀아준 적이 없나.
우리는 각자 만 원을 걸고 윷놀이를 했다. 아빠랑 막내가 한 편이 됐고 나는 엄마랑 한 편이 됐다. 무뚝뚝한 아빠는 게임에 빠질수록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이 나왔다. 막내는 윷을 던지면 윷이 잘 나왔다. 게임을 하는 내내 아빠와 막내 팀이 다 이겼다. 막내는 윷놀이의 역전승 재미에 푹 빠져서 즐거웠다고 했다. 게임으로 풀어진 대화의 장이 저녁까지 이어졌다. 아빠가 술을 안 먹고도 말을 많이 한 것은 그날이 처음이다. 아빠도 우리한테 대화를 걸고 싶은데 방법을 몰랐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답도 없는 숙제만 생각하던 때에는 절벽을 보고 선 기분이었다. 몇 백 미터 깊이로 갈라진 절벽의 틈을 보고 있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내 삶에 남겨진 것을 하나씩 발견하며 감사하게 된 순간, 나는 내 뒤에 펼쳐진 판판하고 너른 들판을 처음 보게 되었다. 내가 서있는 자리는 그대로인데 내가 서있는 방향에 따라서 절벽인지 들판으로 나뉘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내게 남겨진 것을 보라는 의미였다. 내게 남겨진 것을 생각하니 숨이 쉬어진다.
나는 상황이 바뀌길 원했기에 답이 없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답 찾기를 포기했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방향성이 더 중요하다. 올 해는 내 등 뒤에 있던 넓은 숲을 향해 몸을 돌리고 한 발 내딛는 시간이 될 거다. 내 뒤에 있는 절벽이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