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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종이인형 Jun 30. 2024

아이에게 키워지는 부모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신비롭고 가슴벅찬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존재를 오롯이 키워낸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간이 생존을 위한 독립을 하는데 시간이 가장 오래걸리는 존재라고 하죠.  


같이 일하는 동료의 와이프가 아기를 낳았다고 해서

요즘 동료들과 아기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게되었습니다.

임신했을 때와 갓 출산했을 때의 생각이 새록새록납니다. 


음식 이름만 들어도 올라오던 심한 입덧으로 

몸무게가 10kg정도 빠져서,,,

만삭이 되었는데도 원래 몸무게보다도 1~2kg만 늘었던. 


예정일인데 아이가 나올 기미가 없는 것 같다고 

아기가 내려올 수 있도록 많이 걸어야 한다며

이마트에서 가서 먹고 싶은 거 잔뜩 쇼핑하고 왔더니

양수가 터져서 바로 병원 갔어야 했었던. 


라마즈 호흡법을 배울 때는 왜 배우는 지 몰랐는데,

출산하는 순간이 오니, 

그 호흡법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는.


무통주사는 2번 정도밖에 안된다고 해서 

제일 아플 때 맞으려고 있는 힘껏 고통을 참고 있다가 

한 번 맞았는데, 약 3초(?) 정도만 안 아파서 속으로 절망했었던. 


내 배에서 저렇게 (생각보다) 큰 존재가 나왔다는 것도 신기하고

낳자마자 과호흡으로 오한이 와서 약간 무서웠던.


그보다 더 무서웠던 건 아이를 조리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왔던 순간이었지요


너무 약하고 조그마한 이 존재를 도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 지 몰라서

쩔쩔맸었습니다. 


키우고 시간이 흐르고나니 그렇게 무서워할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아 물론, 아기 목욕은 여전히 무섭습니다. ㅠ_ㅠ

 목을 받춰줘야 하는데,  꽉 쥐면 왠지 부서질 것 같고, 

 아니면 목이 뒤로 넘어갈 것 같고

 그러고보니,, 손톱깎는 것도 여전히 무섭네요. ㅠㅠ

 종잇장같은 아기의 손톱은 정말 손을 어떻게 대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전히 아기가 무서운 건 있네요 ㅎㅎㅎ

아니, 너무 소중해서 무섭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그맣고 귀엽고 예쁜 존재인데, 

그 때는 초보엄마여서 처음 접하는 어려운 상황들이 

그저 정신없고 두렵고 힘들다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곰곰히 되돌아보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찰나들이 있습니다.


뱃속에서 하나의 세포에서 1cm정도 커서 발을 꼬물거리던 아이의 태초(?)모습

엄마만이 알 수 있는 꼬르륵 하는 것 같은 아이의 태동

숨이 헉 하고 멈출정도로 저에게 존재를 알리던 뱃속 아이의 힘찬 발차기

새로운 세상이 신기한 듯 갓 태어난 아이의 초롱초롱한 눈빛 

아이가 처음으로 촛점을 맞추면서 저와 눈을 마주쳤던 순간, 

마치 나를 보고 웃어주는 것 같은 아이의 배내짓

젖병을 쪼그만 두 손으로 잡고 땀흘리며 먹던 아이의 얼굴

(전 지금도 아빠라고 얘기한 거라고 주장하는) 빠빠빠! 

그때는 분명히 내 귀에는 노랑으로 똑똑히 들렸는데  동영상에는 "노난"으로 녹화되어있는 아이의 말하는 세상 귀여운 모습

말도 빨랐는데, 글도 스스로 그렸던 아이의 삐뚤빼뚤 "꿀벌주사" 글씨 

가위질을 처음 할 수 있게 된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마치 천동설에서 지동설을 알게 된 것 처럼 놀라웠던 그 때 느낌


내가 낳은, 내가 지켜야 하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

셀 수 없는 작고 큰 소중한 순간들이 겹겹이 쌓인,

그 존재가 지금은 오히려 절 지켜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제일 처음 느꼈던 순간은, 

아마도 좌석버스에서 안전밸트를 매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필수로 자리잡았지만,

몇 년전에만 해도 필수가 아니었고,

왠지 밸트를 매년 쿨하지 못할 것만 같은, 그 느낌이 지배적인 시대였기 때문이죠. 


버스 안에서 아무도 안 매는 밸트를 주섬주섬 찾아서 매면서 들었던 생각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나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이의 독립까지는 한참 멀었고, 

나는. 그 아이를 지켜야 하고 지키고 싶었으니까요. 


결국은 시간이 자꾸 흐르다보면 제가 아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저를 어른으로 키워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왜 유명한 영화-As good as It gets- 대사에도 있잖아요

(물론 그 대사는 남녀간의 사랑입니다만, 사람사이에서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넌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person.


제 아이가 저를 그렇게 만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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