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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Dec 02. 2023

겪어봐야 알지 (1)

그래도 모르는 게 사람이야

사람에 대해서 깊이 아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몇 십 년째 함께 하는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는데 몇 번 아니 몇 년 동안 관계를 쌓아왔다고 그 사람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건 애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알고 지낸 지 한참이 지난 사이라도 그동안 미처 본 적이 없었던 모습을 보는 경우도 사실 심심치 않다. 나는 다각도 다방면으로 그 사람에 대해 이해한다고 생각하더라도 결국은 내가 이해한 정도로만 상대방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 전체를 이런 사람이라 판단할 순 없다. 내가 본 상대의 모습이 그 사람의 어떤 일부분의 모습일 순 있지만 그걸로 전체를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건 참 오만한 생각이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거의 99.9%는 내가 보는 것이 내가 듣는 것이 내가 느낀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사람에 대한 판단과 생각도 예외는 아니다. 난 저 사람에 대해서 100% 알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로 다가온다면 사람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놀라거나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할 일은 없을 텐데 많은 순간 그걸 잊고 산다. 뒤통수를 세게 맞고 내가 참 순진하다는 걸 안 일이 있었다. 


우연찮게 알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도 또래고 일하는 지역도 가까워서 어쩌다 보니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 근데 그 연락이 거의 매일 이어지다 보니 첨엔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이 지금 나랑 썸을 타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끔 만나서 맥주 한 잔을 하기도 하고 꾸준한 연락을 주고받기를 꽤나 했을 무렵. 그래도 연애 경험이 없는 편은 아니니 연애에 있어서 대략 흐름이라는 게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근데 당시 그 사람과의 흐름은 내 데이터에 없던 흐름이었다. 이성적으로 다가오는 게 맞는데 뭔가 명확하지 않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 밀당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어떤 그 지점. 매일 연락을 하고 문득문득 플러팅을 하는데 만나면 또 뭔가 선을 지키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이게 어장관리인가 그냥 심심풀이일까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의문스러운 지점들도 많이 있었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심각한 건 굳이 원치 않았으므로 충분히 물어보거나 알아볼 수도 있었음에도 의문 가는 지점에 대해서 물어보려고도, 관계에 대해서 정의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2달 가까이 흘렀다. 이제는 좀 정립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먼저 상대를 당겨봤다. 평소 내 스타일로 생각하면 아마 이런 애매모호한 관계는 애당초 바이바이였을 텐데 뭐 이 관계는 이상하게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상대의 묘하게 적극적이지 않았던 태도에 더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먼저 만나자고 해서 만나게 된 날, 꽤나 많은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보단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훨씬 많이 했다. 삶 속에서 상처라고 할 수 있는 부분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상외로 이런 이야기에 거리낌이 없네 생각했고 그 모습이 솔직해 보였다. 나도 현재 내 상황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얘기를 하게 됐고 그날의 대화가 우리 둘에겐 분기점이 됐다. 나도 그 사람도 이제 이 관계에 대해서 정립을 해야 되겠다 생각하게 된 날이었다.  


그날 헤어지면서 2일 뒤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평소처럼 하루를 잘 보내고 있는데 우리 둘의 관계를 정립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찜찜했던 부분을 확인해 봐야 되겠다는 내 무의식이 발동됐다. 그동안 묻어 뒀던 것들을 확인해야 되겠다는 촉이 날 이끌었다. 친구와 공연을 보고 평소 연락하지 않던 시간에 전화를 했는데 그 전화를 건 일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는 시작일 줄은 그땐 또 몰랐다. 그 사람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나는 이렇게 카톡을 남겼다. 

'번호가 두 개예요?'

그리고 그날 카톡에 답장이 내내 오지 않았다. 애써 신경 쓰지 않았던 이상한 지점, 어색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나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거다.  

의문이 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그 촉을 무시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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