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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30. 2023

싱글 인 마이 마인드

혼자라서 행복할 때, 둘이 되세요. (Feat. 싱글 인 서울)

좀 들뜨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설레는 소풍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날을 맞이한 아이 같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있을 나와의 데이트가 이렇게 설렐 일이겠냐만 속절없이 그렇게 설렜다.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러 간다는 설렘이 제일 컸다. 계획도 일찌감치 세워뒀다.

예고편이 나오자마자 29일이란 개봉 날짜를 기다렸다. 영화를 기다릴 때만 해도 같이 영화를 보러 갈 썸남이 있었는데 그 짧은 사이 그 썸남이 사라져서(ㅎㅎ) 혼자 영화를 보러 가야 했다.

그래도 어떤가! 영화 제목이 '싱글 인 서울'인데!


MBTI 'J' 답게 영화 보기 전에도 동선을 고려해서 볼 일 들을 순차적으로 마친 뒤 영화관에 영화 상영 15분 전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 제일 먼저 도착하는 것은 짜릿한 일이다. 우선 영화관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고 삼각김밥을 야무지게 먹더라도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수 있다. 보통 뒷자리에서 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은 비교적 앞자리에서 영화를 봤다. 근데 이것도 매력이 있었다. 앞쪽에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오롯이 영화 화면만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영화관에 마치 나 혼자 있는 듯한 느낌이 또 매우 만족스러웠다. 집에서 그냥 혼자 보면서 느끼는 안온함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영화를 보면서 마시는 약간의 알코올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어서 놓칠 수 없다. 적당히 한산한 영화관에서 맥주든 와인이든 알코올과 함께 또 적당한 안주와 함께 온전히 영화를 즐기는 시간은 기쁨 그 이상의 충만감을 준다. 오늘 나에게 선택받은 알코올은 화이트와인과 마트에서 우연히 발견한 모스카토, 스파클링 와인. 안주는 바비큐 오징어다. 통통한 오징어 살은 맛있었고, 목구멍을 부드럽게 넘어간 와인은 온몸을 느슨하게 해 주어 영화에 더 몰입하게 해 줬다. 광고가 마친 뒤 극장 안이 어두워지고 화면에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다. 나는 와인을 병 째 홀짝인다.


로맨스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라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감독님과 작가님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우선 영화의 내용은 차치하고 익숙한 듯 하지만 어쩐지 낯설기까지 한 화면 속 서울의 어여쁜 풍경들. 영화 대사에서도 나왔듯 마치 서울 같은 남자 이동욱의 비주얼은 영화를 보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만들었다. 일 할 땐 프로페셔널하게 하지만 연애에서만큼은 모태솔로도 울고 갈 엉망진창 센스로 직진하는 임수정의 사랑스러움. 그 매력은 또 어쩔 텐가.


글을 쓰는 작가, 책을 만들어내는 편집 가라는 몽글몽글한 설정에 (내가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평소 알고 가봤던 서울의 풍경을 갔는데도 또 가보고 싶게 만든 영상미. 그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였다. 사실 이동욱같이 존잘인 남자가, 못 해 솔로인 그 남자(대체 어떤 여자가 이동욱을 가만히 둘 수 있을 텐가)가 차이는 연애만 했다는 설정(사실 이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영화 같았다.). 그리고 물론 이전에 서로 알고 있던 관계라곤 하지만 너무 급속히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주인공 영호와 현진 두 남녀 간 썸의 개연성이 급작스러운 지점은 분명히 있지만. 난 이 영화가 줬던 메시지를 나름으로 해석했다.


혼자 사는 삶은 정말 혼자라서 괜찮은 지점이 꽤나... 아니 충분히 많다. 영화 속 영호가 말했듯 현대 사회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도 충분할 만한 모든 것을 갖췄다. 혼자 살기 최상의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난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이 어떤 결핍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좋았다. 글쎄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나중에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두 사람에게 서로에게 어떤 지점을 바라고 원해서 만남을 이어나가는 결핍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식상한 얘기는 그만하자고 하지만 식상한 게 왜 식상할 정도로 많이 얘기하게 되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혼자 있을 때 자유롭고 충분한 사람이 둘이 있어도 충분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식상한 이야기를 영화 속에서는 다시금 짚어주는 듯하다. 영호와 현진은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고 만족하며 살 줄 아는 사람들로 느껴졌다. 영호가 마주치게 되는 옛사랑과의 재회, 그 속의 갈등 그걸 해결해 나가는 상황 속에서의 교훈. 두 주인공은 나름 변화하고 성장해 갔다. 두 주인공의 성장은 인생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이미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충분히 살아내고 있는 두 어른이, 이미 자유로움을 느끼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두 어른이 만나서 서로 더 존중할 수 있는 삶을 꿈꿔본다는 것. 역시 관계를 만들 때도 사랑을 할 때도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고 스스로 자유로워야 된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된 영화였다. 영화 첫 시작즈음에 영호는 이렇게 말한다. '싱글이 답이다.' 싱글이 답이라는 건, 싱글로도 충분히 빛나는 사람들이 만나야 둘을 서로 빛내줄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그 고전적 의미를 내포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맥주 한 잔 할래?’ 이 말이 이렇게 설레는 말이었다니.


혼자 영화관을 들어가서 둘이 손을 잡고 나오는 로맨틱한 일은 현실에서 벌어지지 않았지만 나는 근래 했던 데이트 중 가장 만족스러운 나와의 데이트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도 기분이 좋아 빙긋이 미소 지었다. 근래 가장 기분 좋은 하루였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우니 나도 언제든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상태인 건가? 따뜻한 밤이다.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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