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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Jan 04. 2024

겪어봐야 알지 (2)

번호가 두 개인데 거짓말을 했다?  

의문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핸드폰 번호가 두 개인데 하나는 오픈을 하지 않는다.

핸드폰 번호도 오랜 시간 알려주지 않았다. 

내가 묻지 않았으므로. 그 역시 내 번호를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때 연락을 주고받고 (카톡으로) 꽤나 시간이 지났을 무렵에 불현듯 번호가 궁금해져 번호를 묻고서는 이런 질문을 했다. 

"근데 왜 내 번호 안 물어봤어요?" 

이런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연락이 되는지 안 되는지가 중요하지. 핸드폰 번호가 굳이 중요한가요?" 

일반적이지 않은 답변이다 싶었으나 영업하는 사람이라 그런가?라고 흘려 생각했다. 


번호가 두 개인 것을 알게 되었던 과정이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시그널이었다. 

그렇게 알게 된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던 날, 지금 아는 형과 술 한 잔 하고 있으니 돌아가는 길에 연락을 하겠다고 했고 대략 한두 시간 뒤쯤 그가 전화를 해왔다. 내가 모르는 번호였다. 


"어? 이거 번호가 다르네요?"라는 내 말에

"아! 잠시만요. 지금 아까 그 형이랑 핸드폰이 바뀐 것 같아요." 

황급히 전화를 끊은 그는 얼마 간 뒤에 나에게 알려줬던 번호로 전화를 해왔다. 

그땐 그렇게 넘어가서 꽤나 길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통화를 마쳤다.


문득, 근데 내 번호를 그 사이에 외운 건가? 어떻게 아는 형 핸드폰으로 내게 전화를 걸 수 있다는 거지? 

생각하면서 그가 나한테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거짓말. 거짓말을 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개의치 않는 마음이었다. 왜냐면 우린 별다른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감정이나 싫어하는 감정이나 그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똑같은 마음 작용이다.

그것처럼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던 면들이 장점으로 다가오고 좋다고 느끼는 것이나 그런 면들이 이상하게 느껴지거나 싫다는 감정으로 바뀌는 것도 한순간이다. 장단점이 바뀌는 찰나는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도 빠르다. 그게 사람 마음이다. 그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이고 그 행동을 하는 그 사람일 뿐인데 그걸 보는 내 시선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번호가 두 개예요?"라는 내 물음에 그는 카톡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날 끝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번뜩 스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지만 내 예감과는 다르길 바랐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태연히 이렇게 연락을 보내왔다. 

"네 번호 두 개예요. 아니 세 개예요."

또 물었다. 

"어제 내가 전화했었는데 못 봤어요? 카톡은요?"

"봤어요..."

보고도 연락을 안 했다는 말에 게임 끝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 예상이 맞겠구나 확신했던 것 같다. 

그날은 둘이 만나기로 약속을 한 그 당일이었으므로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진실을 파? 아니면 여기서 스탑? 고민하던 중. 그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만나면 하려고 했던 이야기가 많았는데... 어떻게 하루 전에 이런 일이.(이런 일이 뭔데? 내가 갑자기 번호가 두 개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얘기한 일?라고 생각함.) 인생이 드라마틱하네요.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얼굴 보고 제가 다 설명할게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아 그리고 미안해요. 진심으로. 이렇게 사과부터 하는 게 먼저였는데."

이게 대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었으나 나는 굉장히 차분해져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여전히 우리는 뭘 규정한 사이가 아니었다. 내 마음이 확 쏠려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순 없지만 그 쏠렸던 마음이 다시 이성을 찾아가고 있었다. 찜찜한 것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아서 그의 말대로 우린 만나기로 했다. 


마시기로 했던 와인 한잔을 이런 분위기와 이런 얘기를 하면서 마실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날이 날인지 그날은 비도 왔다. 딱 밖에 나가기 싫은 궂은날, 나가서 들어야 할 말들이 예상이 되는 그런 상황이라니. 비 오는 날 어쨌든 우리 둘은 만났다. 약간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앞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보는데 뭐랄까 내 마음이 묘하게 편안했다면 이상할까. 아무튼 이상한 감정이었다.)


"얘기해 봐요."

눈에 힘이 들어갔던 그는 이내 작심한 듯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저... 21살에 결혼했고요.."

역시라는 생각이 스침과 동시에 21살에 결혼했다는 말보다 그 이후의 말이 더 임팩트 있었다. 

아니! 이런 걸 예상한 건 아니었다고.

그 와중에 와인은 맛있고 떡볶이도 맛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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