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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Mar 10. 2024

안 먹는다 말할 '용기'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생각하며

"이 반찬은 안 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체질식을 시작한 이후에 식당에 가면 거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저 말을 한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 무침, 더덕무침, 감자조림, 무말랭이가 맛있는 줄 알지만 이젠 체질식에 맞춰 음식을 가려먹고 있다. 처음엔 음식을 받은 후에 시간이 좀 지난 뒤 반납 했더니 밑반찬이나 국이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내가 망설인 그 시간이 이 밑반찬이 음식으로써의 가치가 있게 되느냐 아니면 쓰레기가 되느냐를 결정짓는 모양이었다. 그릇째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광경이 슬로모션이 걸린 듯 느릿하게 눈앞에서 펼쳐졌다. 

아무렴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이미 손님 상으로 나간 그 밑반찬은 이미 사람을 손을 탄 밑반찬. 손대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으며 대화를 하는 중에든 입을 벌리는 중에든 반찬으로 침이 튀었을 수도 있다. 나도 누군가의 손을 거친 밑반찬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한 번 누군가의 테이블에 올랐던 반찬을 다른 테이블에 그대로 냈다간 손님들의 항의와 비난을 받을 건 불 보듯 뻔한 일일테다. 


음식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론 나는 나만의 환경 실천을 늘 하고 있다. 

일명 '안 먹는다 말할 용기' 

밑반찬이 내 테이블에 올려지기 전에 미리 파악을 한 뒤에 정중히 노땡큐 한다. 중요한 건 스피드다. 반찬을 놓고 서빙하시는 분이 사라지시기 전에 내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이땐 빠른 스캔이 중요한데 내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않아야 하는 것들을 명확히 판별해 내고 주저하지 않고 바로 말을 내뱉는 것이 핵심이다. 


"백김치만 주시고 나머지는 밑반찬은 안 주셔도 돼요."

"요건 제가 안 먹어서 빼주셔도 돼요."


스캔을 통해서도 주 식재료를 모르겠다 싶은 게 있다면 차분히 묻는다.


"이건 혹시 뭘로 만들었나요?"


처음엔 이렇게 말하면 음식을 주시는 분이 기분 나빠하시지 않을까 약간 눈치 보는 마음도 있었다. 또 편식하는 사람으로 비칠 것 같아서 머쓱하기도 했다. 근데 가볍게 생각해 보니 편식을 하는 게 맞았다. 그게 사실이었다. 체질식을 한다지만 그분들 입장에서는 편식을 하는 손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그냥 내 상황을 인정(?)하고 나니 머쓱하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정중히 노땡큐를 했을 때 많지 않은 경우지만 권유를 받을 때도 있다.

'이거 OO으로 만든 거라 맛있는데 드셔보세요. 먹어보시지~'

그럼 '식단 조절 하고 있어서요.'라고 간단한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했던 내 생각이 기우였다는 건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됐다. 노땡큐의 의사를 밝혔을 때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시면서도 전혀 거리낌 없이 요청을 받아주신다. 사실 이게 첨에 쭈뼛 거리는 마음만 걷어낸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석이조의 일이란 걸 금세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음식을 남기지 않아서 좋고 식당 사장님 입장에서는 밑반찬도 아낄 있겠다 음식물 쓰레기도 나오지 않겠다 정말 서로 윈윈이다. 모든 것들이 결국은 환경을 살리는 실천이니 대국민 운동으로 같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말 한마디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알고, 깨끗이 먹고, 못 먹겠다 싶은 것은 미리 사양하기 


한 달에 많게는 5번 이상 가는 단골 식당이 있다. 그곳은 나만의 식당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늘 혼자 조용히 가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곳이다. 번화가에 위치한 곳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도 언젠가부터 사장님이 나를 알아봐 주시더니 이젠 말하지 않아도 딱 내가 먹는 것만 챙겨서 내어 주신다. 난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음식을 싹싹 맛있게 비운다. 나오는 모든 것들을 싹 비우고(밑반찬 포함) 깨끗하게 빈 그릇을 한 후 일어나면 밥만 먹었는데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런저런 무거움을 덜어내고 내가 먹을 만큼만, 안 먹는 것은 안 먹는다 말하고 나면 음식물 쓰레기를 줄였다는 생각이 든다. 또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런 생각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그 나 하나가 모여야 우리가 바뀔 수 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농사를 짓는 경험을 하면서 식재료, 음식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참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러 내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을 거치고 노고를 거쳐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쌀 한 톨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배춧잎 한 장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거쳤을 수많은 순간들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다. 

농사를 짓고 식재료를 생산을 해내는 것도 일인데 또 요리는 어떤가. 씻고 다듬고 갖은양념을 하고 굽거나 끓이고 삶고 지지고 볶는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맛있는 음식이 완성된다. 

음식을 남기고 쉽게 버린다는 건 시간과 노력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거기에 투여되는 경제적인 비용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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