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생각하며
"이 반찬은 안 주셔도 돼요. 감사합니다."
체질식을 시작한 이후에 식당에 가면 거의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저 말을 한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 무침, 더덕무침, 감자조림, 무말랭이가 맛있는 줄 알지만 이젠 체질식에 맞춰 음식을 가려먹고 있다. 처음엔 음식을 받은 후에 시간이 좀 지난 뒤 반납 했더니 밑반찬이나 국이 고스란히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것을 목격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내가 망설인 그 시간이 이 밑반찬이 음식으로써의 가치가 있게 되느냐 아니면 쓰레기가 되느냐를 결정짓는 모양이었다. 그릇째로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광경이 슬로모션이 걸린 듯 느릿하게 눈앞에서 펼쳐졌다.
아무렴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이미 손님 상으로 나간 그 밑반찬은 이미 사람을 손을 탄 밑반찬. 손대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으며 대화를 하는 중에든 입을 벌리는 중에든 반찬으로 침이 튀었을 수도 있다. 나도 누군가의 손을 거친 밑반찬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한 번 누군가의 테이블에 올랐던 반찬을 다른 테이블에 그대로 냈다간 손님들의 항의와 비난을 받을 건 불 보듯 뻔한 일일테다.
음식이 음식물 쓰레기가 되는 장면을 목격한 이후론 나는 나만의 환경 실천을 늘 하고 있다.
일명 '안 먹는다 말할 용기'
밑반찬이 내 테이블에 올려지기 전에 미리 파악을 한 뒤에 정중히 노땡큐 한다. 중요한 건 스피드다. 반찬을 놓고 서빙하시는 분이 사라지시기 전에 내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이땐 빠른 스캔이 중요한데 내가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않아야 하는 것들을 명확히 판별해 내고 주저하지 않고 바로 말을 내뱉는 것이 핵심이다.
"백김치만 주시고 나머지는 밑반찬은 안 주셔도 돼요."
"요건 제가 안 먹어서 빼주셔도 돼요."
스캔을 통해서도 주 식재료를 모르겠다 싶은 게 있다면 차분히 묻는다.
"이건 혹시 뭘로 만들었나요?"
처음엔 이렇게 말하면 음식을 주시는 분이 기분 나빠하시지 않을까 약간 눈치 보는 마음도 있었다. 또 편식하는 사람으로 비칠 것 같아서 머쓱하기도 했다. 근데 가볍게 생각해 보니 편식을 하는 게 맞았다. 그게 사실이었다. 체질식을 한다지만 그분들 입장에서는 편식을 하는 손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그냥 내 상황을 인정(?)하고 나니 머쓱하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정중히 노땡큐를 했을 때 많지 않은 경우지만 권유를 받을 때도 있다.
'이거 OO으로 만든 거라 맛있는데 드셔보세요. 먹어보시지~'
그럼 '식단 조절 하고 있어서요.'라고 간단한 부연 설명을 덧붙인다.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했던 내 생각이 기우였다는 건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됐다. 노땡큐의 의사를 밝혔을 때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시면서도 전혀 거리낌 없이 요청을 받아주신다. 사실 이게 첨에 쭈뼛 거리는 마음만 걷어낸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석이조의 일이란 걸 금세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음식을 남기지 않아서 좋고 식당 사장님 입장에서는 밑반찬도 아낄 수 있겠다 음식물 쓰레기도 나오지 않겠다 정말 서로 윈윈이다.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환경을 살리는 실천이니 대국민 운동으로 같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말 한마디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가 먹을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알고, 깨끗이 먹고, 못 먹겠다 싶은 것은 미리 사양하기
한 달에 많게는 5번 이상 가는 단골 식당이 있다. 그곳은 나만의 식당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늘 혼자 조용히 가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곳이다. 번화가에 위치한 곳이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도 언젠가부터 사장님이 나를 알아봐 주시더니 이젠 말하지 않아도 딱 내가 먹는 것만 챙겨서 내어 주신다. 난 편안한 마음으로 앉아서 음식을 싹싹 맛있게 비운다. 나오는 모든 것들을 싹 비우고(밑반찬 포함) 깨끗하게 빈 그릇을 한 후 일어나면 밥만 먹었는데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이런저런 무거움을 덜어내고 내가 먹을 만큼만, 안 먹는 것은 안 먹는다 말하고 나면 음식물 쓰레기를 줄였다는 생각이 든다. 또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덜 미안한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런 생각 충분히 할 수 있지만 그 나 하나가 모여야 우리가 바뀔 수 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농사를 짓는 경험을 하면서 식재료, 음식을 대하는 내 마음가짐이 참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러 내 입으로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을 거치고 노고를 거쳐야 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쌀 한 톨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배춧잎 한 장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거쳤을 수많은 순간들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다.
농사를 짓고 식재료를 생산을 해내는 것도 일인데 또 요리는 어떤가. 씻고 다듬고 갖은양념을 하고 굽거나 끓이고 삶고 지지고 볶는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맛있는 음식이 완성된다.
음식을 남기고 쉽게 버린다는 건 시간과 노력을 버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거기에 투여되는 경제적인 비용은 말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