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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CA May 28. 2023

미국 석사 1년 후기: 공부편

어느덧 첫 개강 이후 3 쿼터를 보냈다. 달수로 치면 작년 9월부터 8달 정도를 지낸 것인데, 벌써 1학년이 끝났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느껴 글로 써보고자 한다. 미래의 내가 보고 지금 느낀 생각들을 다시 되살려볼 수 있도록. 그리고 나처럼 (늦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거나, 이제 막 뭔가를 제대로 시작하려는 누구에게라도 조금의 공감이나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배움의 모양은 다양하다

나에게 배움은 그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주어진 과제를 하고, 시험을 잘 보는 것이 전부였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일을 배운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업무를 완수해 가며 이뤄내는 무엇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유학을 와서 보니 주변에서 스스로 배울 거리를 선택하고, 배울 방법을 찾아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친구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박사생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주체적인 배움의 길을 가고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친구들을 보면, 방학 때마다 온갖 인턴, 대회, 활동에 참가하면서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길을 만들어온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나도 자극받아 좀 더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가는 배움을 실천하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바랐던 만큼은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에도 시간과 능력이 모자랐기 때문일 것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아마 지금까지의 몸에 밴 태도를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았던 때문이 큰 것 같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새로운 길로만 가면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배움의 길은 다양하고, 나름의 길을 찾아가는 멋진 친구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의 힘은 강하다

사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저학년 때까지의 공부는 '쌓아놓은 깊이'랄 게 극복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석사로 유학을 와서 보니, 정말 이 분야에서 학부 때부터 많은 수업을 듣고 경험을 이미 갖추고 온 친구들을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예컨대 어떤 개념 X를 배우는데, A는 정말 해당 분야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고, B는 비록 X라는 개념을 엄밀히 접한 적은 없더라도 관련된 내용들을 많이 접하고, 그 원리는 모르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돌려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면, A의 X에 대한 이해도는 B의 X에 대한 이해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대학원에서 배우는 개념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그 이전에 선행되는 다른 개념들의 토대 위에 세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당 분야에 오랜 시간 내공을 쌓고 많은 경험을 가진 사람일수록 더 잘 나아갈 수 있다. 



첫 단추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처음 뭔가를 배운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예컨대, 머신러닝을 처음 배울 때에는 간단한 트리모형 하나 이해하고 체득하는데 정말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번 첫 단추를 꿰고, 그 분야에서의 개념들과 용어들, 그리고 사고방식에 익숙해지고 나면 더 어려운 개념도 비교적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것 같다. 예컨대, 트리모델로 머신러닝의 큰 틀을 익히고 나니, 뉴럴넷이라는 더 복잡한 모델을 배울 때에도 비교적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즐겁다면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앞으로 나아갈 길이 정말 멀고 아득해 보이기만 하고,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보잘것없어서 힘이 빠질 때도 많다. 정말 노력해도 안될 때가 있고, 이미 쌓여있는 시간의 깊이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며 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사실 어느 누구든, 어떤 분야에서든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어려움일 것이다. 지금은 아득히 저 앞에 있어 보이는 그들도 처음에는 이 단계를 거쳤을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이 어려움에 맞설 용기가 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내가 이 어려움을 잘 뚫고 나가 이겨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은 정말 자신감에 차있다가도, 어떤 날은 도저히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선적으로 내가 많이 모자라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모자란 부분을 이겨내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힘들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즐겁다면,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느새 나에게도 깊이가 생기고 잘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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