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주헌 Dec 30. 2022

나의 2022년 되돌아보기

나의 2022년은 굶직한 사건들만 꼽아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커리어의 뜻깊은 성취와 당혹스러웠던 반전 (+0.5)

2. 안정적인 행복한 연애 (+2)

3. 망한 투자, 위태로운 자산 관리 (-2)

4. 끝내 올해도 극복하지 못한 게으름 (-1)


하나씩 되짚어보자면,


1. 커리어의 뜻깊은 성취와 당혹스러웠던 반전 (+0.5)

  올해는 직장인 개발자로서 내 연구개발 커리어에 뜻깊은 성취가 있었던 해다. 입사 이래로 꾸준히 개발해오던 기술들을 모아 특허를 여러건 출원했고, 논문도 작성해 투고하여 사내 학술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성과를 얻었다. 나는 개발자가 남길 수 있는 유의미한 자산이 특허와 논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는 올해가 내 개발자 커리어 중 가장 성과가 높았던 해였다. 지적재산 활동 뿐 아니라 현업의 시급한 문제들도 도맡아서 해결했다. 개인적으로 만족감이 높았고, 이러한 성취들이 인사고과 평가에 반영되길 바랐다. 하지만 평가자의 생각은 달랐나보다. 아니면 생각은 같았는데 내가 모르는 어떠한 부조리가 존재했거나. 평가 결과는 내 예상을 한참 밑돌게 나왔다. 

  나 혼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아 함께 일해 온 팀원들과 대화를 했다. 이 결과가 나는 이해가 안가지만 내 생각이 틀린 것일 수도 있으니, 옆에서 함께 일한 팀원으로서의 생각은 어떠한 지 물어보았다. 결과적으로 팀원들도 깜짝 놀라며 의아해했다. 이후 나는 평가자에게 정식으로 면담을 요청해 이의를 제기했지만, 터무니없는 대답을 들어야했다. "OO님의 성과와 높은 기여도를 인정하지만 평가는 올려줄 수 없어요."

Fxxk! 나는 정량적인 실적을 제시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답정너라니. 그 이후로 나는 대화를 포기했다. 뒷얘기로 추측한 배경은 특정 인원의 진급을 위해 고평가를 선 배분했고, 더불어 평가자가 구성원의 실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 정도다. 

  평가 결과를 확인한 순간부터 체념하기까지의 과정은 참으로 괴로웠다. 내가 이룩한 성과가 정당한 보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상당했다. 내 성과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었나 스스로 평가절하하기도 하고, 나 혼자만의 만족이었었나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때론 평가자를 흠씬 욕하기도 하고, 대기업의 수직적 인사평가 문화와 부조리에 질겁하기도 했다. 상황이 마무리되고 고통의 시간이 모두 흘러간 뒤, 지금은 이직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있다.

  당시엔 괴로웠지만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일련의 사건들은 평이하게 흘러가던 내 회사 생활에 새로운 자극을 세게 놓아준 것이다. 운전으로 치자면 엑셀에 발 올려놓고 무심하게 직진만 하던 상황에서, 급커브라는 새로운 미션이 등장해 정신 바짝 차리고 핸들을 다잡게 된 것이다. 한 대 세게 맞고 이직을 계획하려보니, 안정적인 회사 생활 속에서 그간 놓쳐왔던 것들이 보였다. 그래, 하마터면 안주할 뻔 했다.

  기쁨과 슬픔이 요동치는 시간이었지만 내가 이루어낸 성취 자체는 분명히 실재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었으니 +0.5점을 줬다.


2. 안정적인 행복한 연애 (+2)

  2022년이라는 빈 통을 채운다면,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도 사랑으로 꾹꾹 눌러담은 해였다. 내 옆의 소중한 연인과 함께. 정열적으로 불타오르는 뜨거운 사랑은 아니지만,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주고 생각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따뜻한 체온같은 사랑으로 담았다.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주는 사람. 

  새로운 가족같은 사람과 함께, 오롯한 일년을 함께 보냈다. 그래서 +2점을 줬다.


3. 망한 투자, 위태로운 자산 관리 (-2)

  제목 그대로다. 망했다. 다른 일들은 그래도 계획이라도 잡히는데 이것만큼은 아직도 모르겠다. 이제 발을 빼기엔 이미 너무 깊게 들여놓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건드렸다가는 더 깊게 들어갈까봐 방치 중이다. 묻어두고 나머지에 집중하는 게 맞을까? 사실은 묻어두는 것도 쉽지 않다. 말로는 묻어둔다 해도 너무 너무 아픈 손가락이라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어떻게든 생각을 해보자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상황을 관찰해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 지금 당장의 건은 해결이 쉽지 않더라도, 앞으로는 같은 문제를 또 일으켜서는 안된다. 

  당장 집 밖에 나앉거나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파서.. -2점을 줬다.


4. 끝내 올해도 극복하지 못한 게으름 (-1)

  다른 사람들은 내가 부지런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가 태생적으로 게으르다는 것을 안다. 가끔씩 굶직한 이벤트를 벌여 왁자지껄하게 해치우기 때문에, 그렇게 눈에 띄는 큰 사건ㅡ예를 들면 대회 참가나 공연 활동 등ㅡ으로 나를 보아온 사람들은 내가 갓생 사는 부지런쟁이인 줄 안다. 하지만 하릴없는 집안에서의 내 모습은 그저.. 잉여인간. 그런데 또 성격이 게으름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스스로의 게으름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성격이다. 하지만 그렇게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늦잠을 자고, 자기계발을 미루고, 집안일을 쌓아두고, 운동을 잊는다. 아니, 그렇게 괴로우면 얼른 일들을 시작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나면 되는 것 아닌가? 맞다. 그걸 머리로 알면서도 이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 그것이 바로 MBTI P 88%의 위엄을 자랑하는 나라는 인간이다.

  이 습성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게 해왔고, 올해도 그랬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게으름에서 벗어난다는 이 목표가 나에게는 인간 본성을 바꾸는 것만큼 쉽지 않은 일임을 나는 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목표를 이룬다면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뀐다는 것 또한 안다. 그렇기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이걸 이루는 시점에 나는 진정으로 한단계 더 성장한 사람이 될 것이다. 절대 잊지 말자. 끊임없이 되새기자. 내년에도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포기만큼은 하지 말자. 이건 내 인생의 과업이다.

  내 평생 숙제와 같은 문제로, 꾸준값으로 -1점을 줬다.



정리

  적어놓고 보니 2022년 지표는 마이너스다. +2.5에 -3으로, 도합 -0.5다. 하지만 이 수치가지고 일희일비할 건 아니다. 단지 숫자로 계산해놓고 보니 흥미롭다는 정도의 재미 요소와 더불어, 올해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이 나에게 얼만큼 영향을 끼쳤는지 다시 되돌아보는 데에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해주는 정도다. 


  올해는 나에게 29살, 아홉수인 해였다. 흔히 아홉수에는 악재가 찾아온다고 하는데, 그렇게 자기위안 하고 싶지는 않다. -0.5라는 이 수치를 올해 운수가 안좋았다며 단순하게 넘겨버리고 싶지는 않다. 이 수치는 명확히 존재하는 내 실패의 경험치다.


  나는 이 마이너스 경험치를 아프도록 현실적이게 받아들이고, 내 삶에 반영해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0.5를 서른이 되는 내년의 더 큰 도약을 위한 디딤돌로 삼겠다. 깊게 밟은만큼 추진력은 더 강해지는 법이니까. -0.5면 너무 깊지도 않고 딱 적당하다. 


  내년엔 모든 항목에서 +를 얻으리!

매거진의 이전글 소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