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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Apr 25. 2024

깨달음에 관한 불편한 진실, 어쩌면 위로 #2

"마음에 대한 태도"




  마음은 그림자놀이다.


  이것은 마음이 무슨 우리가 소외시킨 정반대편의 대극을 보여준다는 식의 게임로직 같은 얘기가 아니다.


  선(禪)에서는 아무 것도 숨겨져 있지 않고 아무 것도 감추어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모종의 심리학적/영적 지도를 따라 머리로 퍼즐을 끼워 맞추어야만, 그러한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었던 마법사에게 특별히 그 신비한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 마음이 아니다.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우리의 눈앞에 이미 다 드러나있다.


  내가 팔을 드니 눈앞의 그림자도 똑같이 팔을 드는 것이며, 마음이라고 하는 그림자의 환영은 결국 나를 비추고 있는 거울인 셈이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다면 이것은 마음을 대하는 가장 성숙한 태도 중의 하나다.


  그리고 이 태도가 내 삶의 모든 양상을 결정한다.


  다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에 대한 태도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대하는 태도 또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등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국면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마음을 작은 아이와 같은 것으로 보려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세상 사람들도 잠정적으로 다 자기보다 작은 아이로 보고 있다. 자기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다 자기를 성가시게 하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같아서 자기가 늘 다독이고 해결해주어야만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마음을 작은 아이처럼 보는 이는 결국 자기가 마음과, 사람들과, 이 세상을 다 품고 수용하려 하는 태도를 발달시키게 된다. 그러면서 자기가 아주 성숙한 사람이 된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이것이 바로 대표적인 '깨달은 척'의 태도다.


  누가 이런 일을 하는가?


  아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아주 큰 보호와 수용을 바라던 아이가 이와 같은 일을 펼치게 된다.


  자기가 그러한 아이라서, 마음도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아이로 보이고, 세상 사람들도 다 동일한 성질의 아이로 보이는 것이다.


  소꿉놀이에서 아이가 부모연기를 하며 인형을 자기 아이처럼 돌보는 모습과도 같다.


  자기가 성숙해져서 마음이 이제는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돌봐야 할 작은 아이처럼 보이게 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커지면 그림자도 커지듯이, 자기가 성숙하면 원래 마음은 더 크게 보인다. 마음이 작아보이는 것은 자기가 지금 작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성숙함에 대한 아주 큰 발견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분명히 그런 발견을 한 선구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인간이 스스로의 성숙한 본성을 회복하는 방법을 마음에서 발견했다.


  자기 자신의 크기와 마음의 크기가 동일하며 늘 상통한다는 것을 이해한 이들은 이제 아주 멋진 방법론을 고안해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큰 것으로 대하는 태도를 발달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의 온전한 크기가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성숙함을 회복한 이는 이제 늘 거울에 자신을 이리저리 비추어가며 자신이 더 잘 보이게 될 각도를 재단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자신을 큰 것으로 알아봐 줄 남의 시선이 아니라, 마음을 큰 것으로 알아볼 줄 아는 자신의 시선에 입각해서 자신의 크기가 결정된다니!


  이 천재적인 발상은 대표적으로 붓다에게서 아주 정교하게 기획되었다.


  깨달음이라는 이름으로.


  깨달아야 한다면 마음의 크기를 깨닫고, 그러한 마음에 비친 나의 크기를 깨닫는다. 그러면 그림자와 나는 원래 둘이 아니었으며, 깨달아야 했던 것도 실은 없다.


  그냥 나다!


  나라는 사실에 벅찰 뿐이다.


  나를 알게 된 감사가 흐른다.


  나에게 감사한다.


  이것은 스스로를 볼 수 없는 눈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이며, 스스로를 만날 수 없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만나는 방식이다.


  스스로를 향한 사랑의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아마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마음의 대가들은 그래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어려운 길을 권유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쉬운 길을 탐색하고, 발견하여, 결국 그 길을 안내하려 한다.


  더 쉽게 말해보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보다, 마음을 연인으로 대하는 일이 압도적으로 쉽다.


  그리고 이것이 마음에 대한 정말로 무척이나 성숙한 태도다.


  성숙한 이는 부모자식의 역할놀이를 멈춘다. 또는 이성과 유사부모자식 관계를 맺으며 그것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자기가 장발장을 품듯이 다 품어주어야 한다고, 그래도 자기가 품지 않으면 대체 누가 품겠냐고 하는 것은 상대를 얕보고 있는 것이다. 자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주 작은 존재처럼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깨달은 척하는 자기도취에서 비롯한 전형적인 하대의 태도다.


  우리가 연애에 실패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연인을 분명 이렇게 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당신은 나한테 정말 잘해주고 다정하지만 너무 갑갑하고 숨이 막혀, 이렇게 나에게 헌신하는 당신 곁에 머무는 것이 불편한 내가 되게 못나고 이상한 사람인 것 같아 그게 더 힘들어, 아마도 이런 식의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아직은 늦지 않았다. 희망이 있다.


  마음은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우리의 그 모진 하대의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바로 여기 우리의 눈앞에 그대로 있다.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을 똑 닮은 모습의 당신의 연인이.


  당신이 울면 마음도 울고, 당신이 웃으면 마음도 웃는다.


  이제는 정말로 당신에게서 당신의 세계가 시작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림자들에 휘둘리고 있던 것이 아니다. 당신은 그림자가 무서웠기에 그림자를 작은 것으로 만들어 휘두르려 했던 것이다. 그럴수록 당신은 점점 더 작은 존재가 되어갔고, 당신의 세계는 갑갑한 감옥이 되었다. 그 좁디 좁은 다락방을 성스러운 신전처럼 수호하는 일만이 당신 인생에 남은 유일한 과업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이고, 낯선 것이라 그것은 당신의 연인이다.


  우리에게 제일 낯선 것은 우리에게 제일 가까이 있는 것.


  바로 그것을 귀한 것으로 알아보며 인간의 세계는 재생한다.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들로 가득 차 간다.


  자신의 세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간을 꿈꾸어볼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연인처럼 알아가고 만나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꿈은 그렇게 꾸어졌다.


  마음에 대한 가장 성숙한 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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