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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Apr 30. 2024

영원의 숲 #3

"페페의 시간"




  도스토옙스키는 자신에게 무게추를 달아 신을 끌어오려고 한다.

 

  톨스토이에게는 고된 절망의 끝에서 마침내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려줄 신이 필요하지 않다.


  이미 신의 가슴속에 있으므로.


  신이 있기에, 또는 신에게 다가가기 위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의 표현대로, 사랑이 있는 곳에 신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페페도 있다.


  나는 페페를 톨스토이적인 우화의 캐릭터로 해석한다. 정직하게 울고, 웃고, 화내며, 기뻐할 줄 아는 선량한 바보.


  수도사의 옷을 입혀 영원의 숲에 초대한 것은, 이 바보야말로 현인이었음을 알리고자 하는 고전적인 장치다.


  그는 디오게네스처럼, 또는 붓다처럼, 자신의 등불을 들고 있는 자.


  스스로를 영원의 빛으로 밝힌다.


  사랑은 자가발전의 에너지이며, 우리가 소위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현상은 이 자가발전장치의 스위치가 켜진 것이다.


  스스로의 빛이 밝혀질 때, 그 근원적인 자연광은 어떤 보정어플보다도 자기 자신을 아름답게 드러나게 한다. 못나고 뒤틀린 청개구리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는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다. 그 자신에게서 뿜어져나오는 빛이 스스로를 그렇게 증거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이 작품이 되는 순간을 꿈꾸어 보았던가?


  태어나기 전에 그 꿈을 꾸었고, 그 꿈대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가며 심리학도 배우고, 좋다고 회자되는 이런저런 것들을 찾아 다니는 이유는, 우리가 삶의 대가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작품으로 사는 이, 그가 바로 삶의 대가다.


  그러나 어떤 좋은 것을 배워도, 특히 어떤 심리학을 배워도 삶의 대가로 좀처럼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은, 아직 심리학이 삶이 되지 못했던 까닭일 것이다.


  숲속의 미녀가 키스를 해주어서 왕자의 얼굴을 찾게 되면 그때 등불을 밝히겠다는 것이 아니다.


  청개구리들은 조건을 달지 말고 다만 불을 밝혀야 하리라.


  바보처럼 사랑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것을 정말로 사랑한다고.


  그것은 영원의 외침이었다.


  신의 가슴속에서 언제나 메아리치고 있는.


  선사들이 스쳐가는 갈대소리를 듣고도 깨닫곤 했던 것은 이런 연유였다. 그 소리를 정확하게 자신을 깨우는 영원의 메아리로 알아들은 것이다.


  심리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그리고 삶은 어떻게 작품이 되는가?


  바보의 정직함으로.


  사랑하고 있는 척, 사랑받고 있는 척하는 그 모든 일을 다 관두고,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으로만, 바로 그런 자신으로만 살고 싶다는 그 정직함으로.


  정직하게 울고, 웃고, 화내며, 기뻐하는 것은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내 자신의 일이다.


  내가 내 자신을 한번 좋아해보고자, 그렇게 내 자신을 좋은 것으로 한번 밝혀보고자 시간을 쓰게 될 때, 시간을 버렸다거나, 시간에 쫓긴다거나, 시간을 놓친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시간을 살았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페페의 시간.


  영원의 숲에는 페페의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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