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살림 #12

"감동이 가득한 삶"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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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살림을 영어로 표현하면 'awefulness'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외감이라는 뜻을 가진 'awe'를 강조한 표현이다.


경외감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오는 커다란 감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음살림은 감동으로 가득찬 삶의 방식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런데 이 감동이란 것은 억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웃음의 속성과 같다. 웃겨야 웃을 수 있고, 감동적이어야 감동할 수 있다.


감동은 언제나 관계성 위에서 일어나는 만남의 결과다. 상호적인 것이며, 어느 한편에서 임의로 의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쉬이 감동받지 못하는 이유는 감동을 의도하고 있어서다.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주고, 품어주며, 돌봐주려고 한다. 그런 자신이 감동스럽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 자신이 감동을 얻는 일에 있어 능동적인 주체라는 착각을 제공한다. 자신만 잘하면 감동은 얻어진다고 가정된다. 그렇게 감동의 소재는 우리 자신의 통제 속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그것보다 커진 것이다. 그러니 알아주고, 품어주며, 돌봐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외감이라고 하는 커다란 감동은, 우리가 우리 자신보다 큰 것을 만났을 때 경험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제일 큰 것으로 서서 감동을 통제하는 주인공이 되려고 하는 한, 경외감은 경험되기 어려워진다.


남는 것은 자기가 이 세상 모든 것보다 큰 주인공이라는 환상에서 비롯한 쾌락뿐이다.


쾌락에 도취되어 있으면 원래 감동이 없어진다.


쾌락이 감동으로 착각된다.


그 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는 자유다.


쾌락은 자유를 감소시키고, 감동은 자유를 증진시킨다.


쾌락에 도취되어 자유가 감소된 현상을 중독이라고 부른다.


감동에는 중독이 없다.


숨쉬는 일에 중독이 없는 것과 같다.


우리는 호흡하면서 우리 내외부의 것들을 알아주고, 품어주며, 돌봐주고 있지 않다. 그 반대로 호흡을 통해 오히려 우리가 살려지고 있다.


호흡은 살림의 기본이다.


그런 즉, 알아주고, 품어주며, 돌봐주는 일을 다 그만 둔 채, 더는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 속에 넣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호흡 속에 넣고 있으면 불현듯 삶의 감동이 일어난다.


우리가 가장 큰 척을 하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크게 살려지는 까닭이다. 정확히는 우리가 그것들을 살려지게 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망상의 렌즈를 치운 우리의 눈에 원래의 크기로 다시 보이게 된 것이다.


마음에 대해서는 다를까?


마음을 알아주고, 품어주며, 돌봐주려고 하는 한, 마음은 감동스럽지 않다.


고작해야 쾌락의 대상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에 중독된다. 자기가 마음에 대한 주인공의 입장인 것처럼 착각되지만, 실은 마음에 매여 자유가 감소할 뿐이다.


마음이 정말 커다란 것일 때, 그러한 원래의 크기로 드러날 때, 우리는 마음을 묶은 그 억지에서 풀려나 자유로워진다.


애완용 줄로 묶은 것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줄이 끊기고, 쥬라기공원의 테마곡과 함께 우리는 앞다리를 번쩍 들고 일어서 포효하는 브라키오사우루스를 목격한다.


그게 경외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이 실은 다 이렇다.


알고 보면 다 엄청난 소리들이다.


그 소리들이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우리도 그렇지 않냐고, 우리 자신의 크기를 알린다.


감동이란, 그것의 크기가 이것의 크기와 공명하는 현상이다.


이렇게만 우리는 커다란 존재다.


마음살림은 결국 우리 자신의 살림이다.


우리 자신이 살아난 감동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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