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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22. 2020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작가님, 전화 드려도 될까요?]

     

 최근에 계약을 해지한 출판사에서 카톡이 왔다. 남자친구 김씨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는데, 그 여유는 순간, 출판사의 연락과 함께 ‘얼음!’이 되었다.

      

 “ 뭐지. 뭐야. 그때 다 끝났는데?”     


 나의 ‘상상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공장으로 말하자면 이솔의 최고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로, 24시간 연중무휴로 가동되며 장점으로는 쓸데없는 상황에도 비유와 상상을 덧붙여 글을 쓰게 하지만, 단점으로는 좋지 않은 낌새가 느껴지기 시작하자마자 수십 가지, 어떨 땐 수백 가지의 막장 결론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번엔 상상 공장이 가동되자, 내가 출판사와의 소송에 휘말려 변호사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었다.     


  최근 이런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남자친구 김씨와의 대화다. 김씨는 나와 아주 반대다. 그를 잘 관찰하다 보면, 그의 세상은 좋으면 좋은 것과 안 좋으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나뉘어 있는 듯하다. 그런 김씨에게 물었다.


 “너는 이럴 때 어떻게 해? 너도 불안하지 않아? 불안하면 어떻게 해?”

 그는 2단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1단계. 즉시 해결한다. 즉, 바로 그 연락에 답을 보내서 어떤 일로 연락을 한 건지 물어보라는 거다. 하지만 성격이 급한 내가 그러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렇게 했는데, 답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해?”     


 2단계. 지금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 다른 일에 집중한다. 이때 ‘다른 일’이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덧붙여 그는 이야기한다.

 “상상은 무서운 거야.”     


 그와 대화가 끝나자마자, ‘옳다구나, 이건 소재다.’하고 그와 나눈 대화를 메모하고 글감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30분 뒤, 연락이 왔다.

 [작가님 죄송합니다. 착오가 있었네요.]

출판사의 실수로 잘못 온 연락이었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걱정이 많다. 그래서 어떤 사건이나 고민에 대해 항상 빨리 답을 내리고 해결을 보려고 하는데, 그간의 경험으로 보아,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답을 내릴 수 있는 일보단 답을 내릴 수 없는 일이 훨씬 많았다. 그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나는 애매한 시간 동안 온갖 상상을 했고, 빠르게 불안과 걱정에 휩싸였다. 도마뱀의 꼬리만 보고 용을 상상하는 것처럼.      


 그리고 상상 공장이 가동되기 가장 쉬운 타이밍은 역시, 사람 문제, 특히 사랑에 빠졌을 때다. 사랑은 언제나 해결해야 할 수만 가지의 문제와 함께 왔으므로.  갑자기 사랑하는 이가 연락이 안 되면, 그의 교통사고와 더불어 온갖 막장 결말을 상상하기도 하고, 주말에 게으름을 피우는 그의 모습을 보며 쟤가 결혼해서도 저러면 어떡하지, 하루빨리 헤어져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사귄 지 백일도 안 됐을 때였다) 한 번은, 남자친구와 함께 토론모임에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각자가 꿈꾸는 미래에 관해 얘기하던 중, 그의 미래 얘기에 내가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한껏 서운해하다가(그와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였다) 너무 오래 서운해해서 차인 적도 있다.      


 이렇듯 성급한 걱정과 그 걱정이 만들어낸 막장 결말의 콜라보는 항상 ‘징징대다가 차임’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그때 김씨가 말해준 ‘걱정에 대한 2단계 솔루션’을 알았다면 나의 흑역사는 좀 줄어들지 않았을까? 나는 걱정을 하기 전에 나의 X들에게 징징대는 것이 아니라, 명확히 물어봤어야 했다. 물어보지 못할 상황이었다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하며 기다렸어야 했다. 빨래를 개고, 밥을 챙겨 먹으면서.      

 

 김씨와 이와 같은 대화를 나눈 건, 우리가 헤이리 마을에 갔을 때였다. 그곳엔 책으로 둘러싸인 이안수 작가님의 멋진 숙소가 있다.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 기회가 생겼는데, 김씨는 친절하게도 작가님께 나 대신 운을 떼주었다.

  “ 이 친구가 걱정이 많은 게 걱정이래요.”     

 아마도 그가 뜬금없이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출판사 연락 건과 더불어 사실, 최근에 나의 상상 공장 덕분에 우리의 연애가 난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라. 이에 작가님은 이렇게 말해주셨다.     

 걱정은 나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보살핌 같은 거예요.     

 이어, 걱정하기 시작하면, ‘아, 내가 나를 보살피기 시작했구나.’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지 제안하셨다. 그럼 자연스레 걱정하는 나 자신이 편해지기 시작한다고. 친절한 두 남자의 대화 속에서 생각했다. ‘상상 공장은 글 쓸 때만.’     


 이젠 ‘걱정이 많다고 걱정하지 말아야겠다’라는 다짐도 포기하고 대신, 새로운 걱정을 하는 나에게 고생이 많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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